포기와 수용은 한 끗 차이라더니

요즘 내 마음이 딱 그런 것 같다.

by 작가 전우형

"겉절이 맛있대. 수육이랑 같이 먹었다던데?"

"그 아줌마 자기한테 문자도 해?"

"그럼. 가끔씩 카페가 열렸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 남편한테 문자 보내지 말라고 해"

"..."


"나중에 텃밭에서 과일나무 기를까? 자기 과일 좋아하잖아"

"과일나무 수정되려면 스무 그루는 길러야 된데."

"많지 않더라도 작은 마당 같은데 길러보면 좋지 않을까? 자기가 먹으려고 소규모로 재배하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렇긴 한데. 보통 다른 사람들이 가꾸던 밭을 인수하지"

"..."


나는 조용히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정리하고 집을 나섰다. 어쩌란 말인가 싶다. 애써 만든 단골손님도 쫓아낼 기세고, 겉절이 나눠드렸더니 감사하다고, 맛있다고 보내준 문자에 가시를 잔뜩 세우고 날 선 반응을 보인다. 질투도 관심이 있어서 하는 거라며 처음엔 이해해보려 했지만, 매번 저렇게 날을 세우니 옆에 있는 내가 긁혀 상처 받는 느낌이다. 윗집 언니가 귤을 가져다줬다길래 맛있어하는 아내를 보며 나중에 우리도 작은 과일밭 같은 거 가꿔볼까 말을 건넸더니 그런 걸로는 안된다는 반응. 그냥 미래의 좋은 일들을 떠올려보고 싶었을 뿐인데. 현실적인 건지, 냉소적인 건지, 비관적인 건지. 아님 내가 그런 말을 왜 꺼내는지 정말 모르는 건지. 요즘 많이 힘든가? 답답해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대화의 단절은 이런 식으로 찾아온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에 상처도 많이 받았겠지만, 요즘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 자리에서 머물러봐야 좋은 말이 나올 것 같지 않아 마음 정리도 할 겸 조용히 할 것만 하고 집을 나서려 했다. 그 사이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아내는 현관으로 따라나서며 얼굴 보고 인사도 하지 않고 가냐며 웃으며 말을 건넨다. 내가 어떤 기분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매일같이 쓰는 글에 대해선 별반 말도 없다가도, 카페에 손님은 왔는지 커피는 많이 팔렸는지는 수시로 묻고, 박사과정에 지원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불안했던 학원강사 일도 같이 일하는 사람이 기분 나쁘게 한다며 곧 그만둘 기세여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장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반색하며 그날 저녁에 언제 어떻게 할 건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얘기를 꺼내기가 무서울 정도로. 차라리 신경 쓰이는 기색이라도 내비쳤으면 마음이 조금은 나았을 텐데. 사람에게 상처 받고 병들었던 내가 다시 그들 사이로 들어가야 하는 공포심과, 다시 꿈꾸던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드디어 이 사람이 정신을 차리려고 그러나 하는 반응에, 앞으로의 내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고민 속에 내가 사회생활에서 죽다 살아 나온 사람이란 건 고민할 겨를이 없어졌다. 나는 또다시 답이 정해진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그저 솔직한 거라고, 내가 편안한 거라고 좋은 쪽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내가 뭘 원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담한 태도에 가끔 울분이 솟구칠 때가 있다. 당장 내가 하려는 일은 돈이 되지 않을 수 있고, 뭔가를 쌓아나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몇 번 이야기했지만 아내가 보기에는 마뜩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그 시간을 버틸 마음적 여유나 자신이 없을 수도. 생계는 현실이니까. 올해까지는 이전 직장에서 월급을 받았지만 이제 연말이면 그것도 끝난다. 월급이 끊어진 이후 과연 나는 어떤 상황에 놓이고,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미리 그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보지 않을 수 없다. 부정적 예측에 대한 근거는 일상의 반응에서 차고 넘친다.


어떤 남편이 되어야 집에서 환영받을 수 있을까? 결혼생활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건,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남편은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건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고 배려하는가와 별반 관련이 없다. 그저 상황이 어려워지면 좋은 사람도 나쁘게 보이고 없던 갈등도 생기는 것일 뿐. 생계는 '현실'이고 여기에 대한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고 있는 짐을 가급적 빨리 내려놓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가족은 사랑하는 존재인 동시에 부담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그들을 부양해야 할 책임에서 한 순간도 자유롭지 못하다. 나 혼자서라면 하루에 라면 하나로도 살며 버틸 수 있지만 당장 가족들에게 그런 생활을 강요할 수도 없다. 내게 필요한 건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버티려면 다른 누군가는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나는 아내에게 그런 희생과 인내를 강요할 용기가 없다. 그런 마음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집에서 두발 뻗고 잘 자신도 없다. 결국 나는 긴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과연 딱지가 아물었을까? 내 속사정을 나도 알 수가 없다. 솔직히 다시 직장을 구하고 누군가와 부대껴야 하는 게 두렵다. 겨우 덮어둔 상처들이 다시 헤집어질까 불안하고, 내가 그런 상황을 버틸 만큼 회복되었을지 확신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새로운 직장은 가급적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 혼자 일하는 곳을 찾아볼 예정이다. 눈에 들어오는 곳이 한 군데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경력과는 무관한 곳이라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시간이 꽤 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경력을 살리자면 배를 타거나 조선소 특수선 분야, 인수평가팀, 혹은 군무원, 해경 등을 알아보아야 하지만, 땅을 밟으며 퇴근 후 가족을 보는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작가의 삶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무언가와 병행하는 것으로 결론 내리려 한다. 다만 글쓰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분명히 줄어들겠지. 이런 작은 변화가 삶의 종착점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게 마음의 무게를 더는 방법이 아닐까. 포기와 수용은 한 끗 차이라더니. 요즘 내 마음이 딱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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