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낯섦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는 '불안'

by 작가 전우형

1. '낯섦'


초면인 사람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가는 버스 안. 가벼운 긴장감이 맴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약속 장소는 잘 정리되어 있을까? 그가 싫어하진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맴돌며 이런저런 예측값을 내놓는다. 시간은 순식간에 흐르고 버스는 어느덧 약속 장소에 도착했지만 생각은 전혀 정리되지 못한다. 배낭여행을 떠난 첫날 밤. 생애 최초로 기내에서 1박을 하며 새로운 감정을 느낀다. 어떤 일들이 생길지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 계획을 세운 것이 어그러질까 봐 겁이 나기도 한다. 나름대로 인터넷 서치를 통해 조사를 해왔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것은 예상을 벗어나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인해 좀처럼 잠에 이르지 못한다. 결국 뜬 눈으로 이국의 땅을 밟는다.


'낯설다'는 말은 '익숙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낯선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거나 혹은 충분히 준비되지 못해 상황을 의도대로 완벽하게 통제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기억에도 없고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은 예측에서 벗어난 문제를 야기시키고, 그런 문제들을 우리는 잘 대처해낼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 장소, 상황 혹은 문제나 과업이 될 수도 있는 이런 '낯선'상황들은 그 '미지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안전하지 못한' 느낌에 빠트릴 수밖에 없다.


안전(安) 하지 못함(不). 한자 그대로 '불안(不安)'을 느끼는 것이다. 불안은 '낯선'상황을 인지하고 '너 지금 안전하지 못해. 조심해야 돼!'라는 신호를 주는 감정이다. 불안을 느낀 우리는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할 수 있게 되고, 다소 예민할 정도로 감각을 끌어올려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게 된다. 하지만 어떤 불안도 그 사건이 실제로 벌어지기 전까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결국 일정 수준의 불안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달빛조차 어두운 그믐밤. 가로등도 없는 골목길을 지날 때 사람들은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평소에 늘 지나던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 따라 낯선 느낌이 든다. 낯선 느낌이 불안을 자극하고, 불안은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운다. 레이더의 출력을 높여 더 많은 범위를 탐색하게 하고, Threshold 레벨을 낮춰 작은 신호도 놓치지 않게 한다. 예민해진 탓에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되지만 그 반작용으로 무시해도 될 사소한 신호도 걸러낼 수 없게 된다. 길 고양이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천둥같이 들리고 바람에 낙엽이 쓸리는 소리에도 뒤를 돌아보게 된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도 기이한 불안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어둠'은 익숙한 환경도 낯선 곳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으레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불을 켠다. 아이들 역시 어두운 곳에 가면 불을 켜라고 특별히 가르쳐주지 않아도 불부터 켠다. 방에서 나올 때는 불을 끄라고 강조해도 실천되지 않는 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현상이다. 이것만으로도 불안이 우리에게 하는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불안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둠으로 가려진 공간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하도록 움직이는 '동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둠을 피하려는 주된 이유는 상황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이것은 안전을 확보하고 싶은 욕구와도 연결된다. 상황에 대한 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져도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고, 이런 느낌은 상황에 대한 통제감을 높여준다. 공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알 수 있을 때 공을 피하든, 잡아 던지든, 쳐내든 간에 제대로 반응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공의 궤적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 있거나 혹은 날아드는 공에 대한 경각심이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런 대비 없이 두부에 충격을 받아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 자신의 생사가 자신의 손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불안의 목표는 명확하다. '안전하지 못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행동을 촉진하고, 이것을 달리 말하면 상황에 대한 통제감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행동들로 이어진다. 그래서 아이들은 불을 켜라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두컴컴하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위치를 찾아 전등부터 켠다. 스위치에 손이 닿지 않는 아이는 타인에게 조력을 청해 전등을 켜달라고 하거나 만약 적절한 조력자가 없다면 방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불안에 대한 인간의 반응 단계를 알 수 있다. 첫 번째 반응은 이 장에서는 '어둠'으로 대표된 어떤 불안요소를 제거하려는 노력이다. 그 노력이 전등을 켤 수 있는 스위치를 찾는 것이 된다. 두 번째 반응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평가'다. 일단 스스로 불안요소를 제거해보려 하다가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서면 조력자를 찾아 나선다. 조력을 청할 사람이 없거나 어떤 방식으로도 불안요소를 제거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 세 번째 반응으로 넘어간다. 바로 방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회피'다.


회피는 불안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새로운 사람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 모를 때 사람을 만나는 상황 자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반응인 '평가'에서 세 번째 반응인 '회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평가결과를 왜곡하거나 잘못 판단하는 일이 잦은 것이 문제가 된다. 자존심 때문에 아무에게도 조력을 청하지 않거나, 불안을 주는 상황을 과대평가해 어떤 시도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또는 자기 평가가 과도하게 낮아서 불안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무리하게 단정 짓기도 한다. 불안을 파악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불안의 '현실성'에 대한 평가다. 불안의 현실성을 평가할 수 있으려면 주어진 상황이 정말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 것인지에 대해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합리와 이성을 다시 장착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감정의 소용돌이를 벗어나려면 그 감정과 적절한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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