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속도

조급해지면 보이지 않는다

by 작가 전우형

속도가 빠른 생각은 불안을 더욱 증폭시킨다.


불안은 안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에서 비롯된다. 불안을 느낄 때 힘들고 짜증나고 불편하다.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을 때가 많다. 뿌리치려 해도 불안은 신발 밑창의 껌딱지처럼 질기기만 하다. 이런 경우 흔한 반응은 불안을 '의지'로 억누르는 것이다. '나는 불안하지 않아.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불안은 느낌일 뿐이야. 실체가 없어. 실제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잖아. 내 불안은 내가 만들어낸 허구일 뿐이야. 괜찮아. 괜찮아...' 불안을 의지로 억누르기 위해 불안에 더욱 골몰하고 집중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불안은 위험을 알려주는 신호다. 위험의 실존여부와 별개로 불안은 현재 상황을 내가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불안을 의지로 억누르는 것은 비를 피하기 위해 빨리 뛰는 것과 같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닥치는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뛰어도 비가 내리면 맞을 수 밖에 없다. 비를 피하고 싶다면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된다. 잠시 시간을 번 후에 '비를 피하려면 뭐가 필요할까?'를 차분히 생각해보면 건너편에 편의점이 보이고, 작은 우산을 하나 사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은 막연하고 명확하지 않다.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라는 말처럼 생각은 순식간에 나타나고 사라진다. 이와 더불어 불안은 생각을 증폭시키고 현재 상황에 대한 분석을 마구잡이로 쏟아낸다. '생각의 홍수'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고속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바로 옆을 스치는 표지판을 바라보는 상태와 같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들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버리고, 희미할정도로 상이 뒤섞여 알아보기 어렵다.

20200725_183527.jpg 불안의 실체는 생각의 속도가 빠를수록 흐릿하고 불명확해진다. 특히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욱 그렇다.


생각은 휘발성이 강하다. 스쳐지나간 생각을 떠올려보려고 해도 안개에 뒤덮인 것처럼 희미하다. 불안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강해 병목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생각의 홍수가 '마비'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극심한 불안이 종종 '공황'을 유발하는 것처럼 아무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없게 된다. 실타래는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하는데, 조급함과 두려움에 압도되다 보니 실을 마구잡이로 당기게 되고, 엉킨 실타래는 풀리기는 커녕 돌덩이처럼 단단해져버린다.


생각은 오히려 불안을 더욱 헝클어트린다. 머릿 속이 오히려 복잡해지고 불안은 뜻하지 않게 증폭된다. 조급함은 이러한 상황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극도의 짜증이 치솟고 스트레스가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가득 찬 감정주머니는 언제나 출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잘못 걸리는 사람은 감정의 오물을 뒤집어쓰는 재앙같은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불안할 때는 불안 자체보다는 '불안의 원인'을 차분하게 탐색해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의 원인을 찾을 수 없을 때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불안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하나씩 써보는 것이다.




생각의 속도를 늦추는 방법 : 쓰기


농무기 서해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안개가 잔뜩 끼어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할 일은 '안전속력'으로 감속하는 것이다. 속력을 낮추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회피나 정지 등 최소한의 대응은 할 수 있게 된다. 불안이 증폭된 상황은 짙은 안개로 앞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우선 생각의 속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생각의 속도를 낮추고 안개를 걷어낼 수 있는 방법은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이다.


쓰는 속도는 생각이나 말에 비해 현저히 느리다. 그래서 쓰기모드로 전환하면 생각의 속도는 자연스럽게 제어된다. 빠르게 달릴 때 눈앞의 것들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오기 때문에 모든 주의력은 전방에 집중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속도를 늦추면 주위를 살필 수 있는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다. 증폭된 불안으로 정신없이 울려대던 감정의 경보음을 끄고 조금 더 이성적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문자의 명확성과 유지력은 생각의 모호함과 휘발성을 극복해주는 좋은 방법이다. 생각의 형상화 과정은 보이지 않던 생각을 눈에 보이는 문장으로 바꿔줌으로써 불안을 한 단계 낮춰준다. 어두운 방에 불을 '탁'하고 켜는 것과 같다.


불안으로 힘들 때는 생각의 홍수를 노트에 한 글자씩 풀어써보는 것이 좋다. 일단 쓰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한편으로는 담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더불에 불안의 현실성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커다란 불행을 걱정해야 할 정도인지, 단순히 몇 가지 조치만 취하면 될 정도인지 구분할 수 있다. '전자'라면 치열하게 대책을 고민해야 하겠지만, '후자'라면 차분한 마음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불안을 느끼는 수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별것 아닌 일에도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고 생각의 속도가 빠르면 필요이상으로 과도한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따라서 '후자'만 가지치기할 수 있으면 정말 심각한 문제나 고난도의 도전과제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다. 에너지가 집중된 레이저 광선은 두꺼운 철판도 두부 자르듯 잘라낼 수 있다.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않을 수 있다면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확신도 커진다.




불안에서 거리두기


쓰기의 이점은 불안으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둘 수 있게 해준다. 가까울수록 속도의 영향이 크며 전반적인 상황 파악은 어려워진다. 상황에서 오히려 멀어질 때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KTX 안에서도 멀리 있는 산의 모습은 명확히 볼 수 있다. 장기에서 훈수 둘 때처럼 당사자의 입장에서 관망자 또는 제 3자의 입장이 될 때 상황을 더욱 폭 넓게 볼 수 있다. 때로는 당사자에게 보이지 않는 좋은 방법을 발견할 수도 있다. 불안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거리두기 전략이 필요하다. 쓰기의 형상화 과정은 거리두기의 좋은 방법이다.


쓰기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거울과 같은 도구가 필요하다. 쓰는 행위는 생각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생각을 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생각을 보는 상태로 전환시켜준다. 약간의 거리는 한 층 더 침착하게 해 준다. 불안과 침착은 양갈래의 물줄기와 같아서, 불안 쪽으로 기울어질수록 에너지의 양이 더 많아지고, 침착 쪽으로 기울어지면 불안으로 흐를 에너지의 양은 줄어든다. 생각이 불안을 더 자극하는 쪽으로 흐르지 않도록 쓰기를 통해 물줄기를 침착으로 돌려줄 필요가 있다. 생각의 속도를 늦출 뿐 아니라, 불안의 관리를 용이하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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