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공짜는 없다

by 작가 전우형

비교


비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비교는 무의식과 본능의 영역에 닿아 있어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도 있다. 주위 사람과 비교하는 행위는 위험을 회피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화재 사이렌이 울릴 때 일제히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을 보면 다른 사람들도 일단 그들을 따라 달리고 볼 것이다. 심지어 사이렌의 의미를 모르거나 화재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처요령을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인간은 스스로의 나약함을 오래 전부터 깨달았다. 혼자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주위 사람을 면밀히 살피는 본능을 발달시켰다. 옆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나와 어떤 것이 다른지 파악하는 능력이었다. 정확한 위기사실을 알지 못하더라도 일단 옆사람의 적극적인 행동을 따라하는 패턴이 DNA에 심어진 것이다.


불안과 비교의 긴밀한 상호작용은 비교의 뿌리에서 비롯된다. 비교의 원인은 '불안'이다. 불안은 인간의 '오감(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을 촉진시킨다. 자극된 불안은 오감을 극대화시킬 뿐 아니라 '직감'을 활성화시켜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예측을 불러일으킨다. '사무실 사람들이 나를 따돌리는 것 같은데?' '나 없는데서 험담을 늘어놓는 것 같은데?' '왠지 나한테만 뭔가 숨기는 것 같은데?' 불안에서 의심이 파생되고 의심은 타인, 환경, 관계, 대화 등을 더욱 유심히 탐색하게 한다. 관심은 우리의 감각세포들을 일정 방위로 집중시켜 탐색하도록 하고, 종종 그 집요한 탐색은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잡아내기도 한다. 때때로 이런 발견들은 과도한 불안에서 야기되었던 '비합리적 의심'을 뒷받침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비교는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비교의 대상이 이제는 단순히 옆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기준이 되어버렸고, 그 사회적 기준이 일상의 많은 부분에 광범위하게 관여하게 됨으로써 비교의 순기능을 역기능으로 변질시켜버렸다. 화재가 난 건물에서 이유도 모른 채 옆사람을 따라 달려 나가는 것은 어쩌면 나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였을지 모르지만, 목적도 의미도 모른 채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이유로 따라가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 풍조가 만연된 것이 더 많은 비교를 만들고 불안을 자극한다.


'학벌'에 대한 비교로 인해 대학을 가지 않고 일찌감치 기술자로 일하는 사람들이 은연중에 무시당한다. '고졸'이 주홍글씨처럼 여겨지기도 하며, 30대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언제 결혼할 거니?"가 되어버렸다.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자녀를 둔 부모의 목소리가 커지고 '일반적인' 대학에 진학한 부모는 자녀가 어떤 대학에 입학했는지에 대해 잘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결혼 후 며느리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라는 질문인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비교의 대상일 필요가 없는 것들까지 과도하게 비교하게 되면서, 문제없이 잘 지내는 사람들마저 마치 무언가 잘못하고 있거나 사회적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으로 여겨지거나,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성 불안' 상태로 우리를 몰고 가고 있다. 이로 인한 각종 스트레스와 갈등은 '덤'이다.




'비교' 벡터를 보상하기 위한 마음의 태도


1. 나만의 기준 확립하기


가급적 비교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비교는 본능의 영역에 가깝고, 어떤 비교들은 성장과정에서 '학습'되기도 해서(예를 들면 성적이나 석차와 같은), 비교를 생각의 테두리로부터 완전히 밀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비교가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다. 비교가 자극하는 시기, 질투, 열등감 등은 현재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의외의 에너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느 정도는 '분노'스러운 이런 에너지를 바탕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거둔 성공만큼 행복했을지는 의문이다.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언급되었던 머스테인의 사연처럼, 희대의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와 자신의 그룹 '메가데스'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커다란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이인자'로 여겨 불행 속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


가장 안 좋은 비교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친구는 비슷한 나이에 빌딩 두 채를 소유했고, 이종사촌은 강남에 40평 아파트를, 그것도 '자가'로 보유하고 있으며, 옆집 아무개네 집은 남편이 의사에 아내는 약사, 자녀들은 국제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한 사실들과 나, 우리 가족, 자녀의 상황을 비교하며 '나는 그동안 뭐했지?'라고 그동안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지속적인 불만족의 상태에 빠지는 식이다. 이런 비교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이 은행에 몇 억을 현금으로 보유해야 하고, 몇 평대의 자가를 보유해야 하며, 얼마 정도 되는 자동차를 보유해야 하고, 일 년에 해외여행 몇 번 정도는 다녀올 수 있어야 한다고 어딘가에 통계치로 나와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자료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어야 한다. 이런 기준을 빗대어 나는 중산층에도 끼지 못한다며 실망하는 식의 비교는 하지 않아야 한다. 잘못되거나 불필요한 비교는 끊임없이 불안을 자극하고 불편한 마음을 유발한다. 심지어 가족들과 평온한 일상을 잘 일궈가며 아무런 문제 없이 살고 있음에도 자꾸만 자신의 포지션을 밑바닥 인생으로 끌고 가는 악순환에 빠진다.


각자의 인생에는 각자의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 내 상태를 굳이 평가하고 싶다면 나와 맞지도 않는 사회적 기준이 아니라 내가 정한 기준에 빗대어 현재의 위치를 평가하는 것이 좋다. 우리 아파트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이 유명 외제차를 줄줄이 보유했다고 해도 내가 쪼그라들거나 자기 비하에 빠질 이유가 없다. 이런 식의 비교는 끝도 없고 가치도 없다. 물론 열등감을 자극해서 더 열심히 돈을 모으거나 치열하게 일할 동기를 만들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무엇을 위해? 와 같은 최소한의 목적조차도 갖추지 못한 채로 누군가와 상대비교를 통해 어떤 좌표가 찍어진다면 그곳에 도달한 이후에 허무해질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후회로 힘들어질 수 있다.




2.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생각


공짜는 없다. '강철의 연금술사'에서처럼 잃어버린 동생을 만나려면 팔 하나쯤 내놓아야 하는 '등가교환의 법칙'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이루려면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대가나 노력, 시간, 자유, 책임 등이 존재한다. '누구는 강남에 30평 아파트가 있다더라' '다들 독립하고 결혼해서 잘만 사는데 너는 혼자 왜 그러고 사니?' '남들은 척척 취업도 잘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던데 내 인생은 왜 이런 걸까?' 비교하고 부러워할 수는 있다. 하지만 비교로 인한 소외감이나 상실감, 열등감, 자책 등을 줄이려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심적, 물적 자원도 있지만, 무언가를 가짐으로써 소비해야만 하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권력이나 재산, 혹은 높은 직급과 같은 것들이다.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이들을 부러워한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때때로 회사나 조직, 크게는 나라에서 인사권을 가진 사람은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심지어 '불로소득'과 같이 별다른 노력 없이 공짜로 얻은 재산도 마찬가지다.


자유에 책임과 의무가 뒤따르는 것처럼, 높은 직위에 오르거나 부유함의 금자탑을 쌓은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걱정하며 지낸다. 나의 경험담을 언급하자면, 20대 초반에 내가 초임장교로 임관했을 때 함장님이 그렇게 부럽고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분은 모든 준비가 끝나면 잠깐 나타나 모두의 경례를 받고 브리핑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몇 가지 지시사항을 내린 후 유유히 사라졌다. 하지만 다른 장교들은 브리핑을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지시사항들을 다시 정리해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하고 또 실제로 집행하느라 머리털이 다 빠질 것 같았다. 말만 하면 되는 함장님은 그때의 내가 보기에 너무나 편해 보였다. 속된 말로 '놀고먹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내가 점점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가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근무지보다 훨씬 더 작은 부대의 지휘관이 되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감옥에 갇힌 느낌을 받았다. 언제, 어디에 있어도 24시간 내가 지휘하는 부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부대원들은 잘 복귀했나? 퇴근 후에 어딘가를 다치거나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을까? 갑작스럽게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당직자들은 순찰을 잘 돌고 있을까? 배 어딘가에 침수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맡겨진 일만 하면 되었던 과거에 비해, 책임의 범위가 넓어지고 크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자리에 앉으니 고려사항도 많고 골치 아픈 일들이 곳곳에서 쏟아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 무거운 무게에 신음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가진 사람들이 갖는 고민의 본질이기 때문이었다. 그때서야 과거 함장님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함장님은 그 잠깐의 브리핑을 듣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른 보고를 받으며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만 했고, 그 결정은 언제나 무겁고 고민스러웠다는 것을 말이다.



3. 빛과 그림자


지킬 것이 없는 사람에 비해 지킬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은 또 다른 괴로움에 신음할 수밖에 없다. 우스갯소리로 요즘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도 들린다. 세입자들로부터 꾸준히 고정수입이 들어오는 건물주가 제일 편해 보이고 좋아 보인다는 말이다. 하지만 건물주들 역시 나름의 고민이 있다. 건물주는 그 건물의 운명과 늘 함께한다. 안전, 시설관리, 세입자들과의 갈등, 요구사항 해결, 건물 노후도, 자연재해나 화재의 위험, 부동산의 등락 등 건물이 없다면 하지 않았을 수많은 고민들을 그들은 늘 하고 살아야 한다. 24시간 내내 그러한 고민들을 껴안은 채 살아야 하는 것이 그들이 건물주로서 누리는 혜택의 '대가'다.


옛 국가의 왕들은 식사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언제나 정적의 독살을 염려해야 했고 암습을 두려워해야 했다. 그들은 남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힘은 가졌을지언정, 정작 자신은 밥 한 그릇도 안심하고 먹을 수 없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빛과 그림자'처럼 모든 것들에는 어두운 면, 괴로운 면, 힘든 면, 부정적인 면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어둑어둑한 부분은 정작 그 자리에 직접 서보기 전까지는 잘 모른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을 보며 관객들은 그 멋진 장면에 감탄한다. 남들의 주목을 받고 무대에서 유일하게 그 사람만 빛이 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빛으로 인해 눈부심을 감수해야 한다. 실수를 해서도 안된다. 작은 실수도 크게 부각되기에 살얼음판을 걷듯 고도의 집중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핵심인물을 연기해야 하므로 대본의 양도 많고 연습량도 많다. 그런 '그림자'들을 그 자리에 직접 서보지 못한 사람은 특별한 관심을 갖고 찾아보기 전에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과도한 비교로부터 벗어나려면 그들 역시 나름의 그림자로 힘들어한다는 사실, 고민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무겁다는 사실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4. 고민도 비용이다.


비교 대상이 많아질수록 '불안'이 자극될 순간은 많아진다. 하지만 편하게 생각하려고 하면 많은 것들이 편해질 수 있다.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나름의 고민이 있다. 돈으로 수치화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어떤 것들은 값을 매길 수 없기에 가격표에서 빠져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시간, 행복, 작은 즐거움, 우정, 사랑, 노력 그리고 정서적 자원'과 같은 것들이다.


정서적 자원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 의지도 체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끔 의지는 한계가 없다는 착각에 빠져 강요하고 재촉하고 비난한다. 정신과전문의 하지현 교수는 강연에서 '고민도 비용이다'라는 말을 했다. 고민도 비용이라는 말은, 고민이 길어질수록 다른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투자할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됨을 의미한다.


뭔가를 하고 싶거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몸이 움직여지지 않거나 마음이 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퇴근 후 저녁에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보며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은 하지만 도저히 손이 움직이지 않을 때가 바로 그런 상태다. 개운하게 자고 일어난 아침시간에 설거지를 할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거나 체력이 방전되었는가 하면 또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하기 싫을 뿐 아니라 그 짓눌린 감정을 극복하고 그것들을 해내려면 몇 배로 더 힘이 들거나 짜증이 난다. 하기 싫은 일을 하려면 심적 자원이 몇 배로 더 필요하다. 무언가에 대해 늘 고민하고 생각하고 걱정해야 한다면 그것만큼 마음의 허기를 유발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 무게는 가진 것이 많을수록 늘어나는 법이다.


불안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려면 '쓸데없는' 비교를 내려놓으면 된다. 자신의 기준을 세우고 내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내가 가진 자원들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남들 따라, 남들이 뛰니까 나도 뛰는 것은 불난 건물에서 탈출할 때나 필요한 것이다. 언제나 남들을 바라보며 조급해하기보다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바라본다면 '과도한 비교'라는 벡터를 보상할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생각의 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