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를 남보다 못하거나 무가치하게 낮추어 평가하는 마음'이다. 열등감의 반의어는 '스스로 남보다 뛰어나다고 여기는 생각이나 느낌'이라는 뜻을 가진 '우월감'이다. 두 단어 모두 정의 내린 문장 속에 '남보다'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열등감이든 우월감이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만들어지는 감정들인 탓이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열등감을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는 동기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가꾸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목적을 향해 노력하며, 이처럼 열등감을 극복하는 과정이 곧 개인의 인생을 형성한다고 했다.
아들러는 열등감 자체는 중요한 동기로 작용하는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열등 콤플렉스가 될 때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열등 콤플렉스란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에 사로잡혀버리는 상태를 말한다. 학벌, 외모, 집안 형편, 신장, 성격 등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집착하여 자신감이 저하되고, 모든 실패의 원인을 그것으로 돌리는 사고방식에 빠져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자 친구가 없는 이유가 자신의 외모가 보잘것없거나 키가 작아서라고 생각하는 사람, 마음을 터놓고 말할 친구 한 명 없는 것이 내성적인 자신의 성격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꿈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 가난한 집안 형편 탓이라고 단정 짓는 사람, 면접에서 탈락한 이유가 출신학교가 보잘것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등이 열등 콤플렉스에 해당된다.
열등 콤플렉스가 좋지 않은 이유는 과거에 이미 완성된 것에 집착하느라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 결과 미래를 변화시키기 위한 발전적인 노력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변화시킬 수 없는 것에 집착하느라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것조차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미 성장기를 지난 성인이 작은 키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나 부유하지 못한 가정환경을 탓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어떤 것들은 시기가 지나면 바꿀 수 없고, 또 어떤 것들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기도 하다. 가정환경은 그런 것 중의 하나다. 열등 콤플렉스는 바로 그런 것들과 주로 연결된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열등 콤플렉스 자체가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 자체에 관심을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열등 콤플렉스가 생기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신의 노력 부족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핑계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이면에는 실패를 곧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한 것으로 직렬연결시키는 그릇된 사고방식도 존재한다.
열등 콤플렉스는 해결할 수 없는 결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기에 불안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로 고민하는 한 만성 불안의 상태에 계속해서 머물게 된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기준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외모에 대한 열등 콤플렉스가 존재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나를 볼 때 부족한 외모에 집중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오해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반응하거나, 상대가 나의 결점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며 홀로 피해의식에 젖어들거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가벼운 농담에도 예민한 곳을 찔린 듯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스스로 자신의 결점에 집중한 탓에 불안을 자극하고, 결점을 숨기기 위해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다 보니 상대방은 오히려 적대감이나 거리감을 느끼고 만다. 당연하게도 두 사람 사이는 시작하기도 전에 어색해져버리고 만다.
물론 이런 열등 콤플렉스들이 아무 이유 없이 형성되지는 않는다. 열등 콤플렉스에도 나름의 근거와 이유가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커다란 감정의 변화를 느꼈던 사건들은 남다른 의미부여가 되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 시절 담임선생님이 이번 중간고사에서 꼴찌를 했다며 공개적으로 자신을 면박 주었거나, 대학에서 자신의 출신고를 들먹이며 집요하게 자신을 무시하는 악질 선배를 만났다면 학력이나 학벌에 대한 열등 콤플렉스가 자리 잡을 충분한 근거가 된다. 때때로 오래 사귄 여자 친구가 이별을 통보하며 "내가 운동화만 좋아했을 것 같아? 그동안 너 때문에 그 흔한 힐 한번 못 신어봤어"라고 말한다면 이 또한 작은 키에 대한 열등 콤플렉스가 심어질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가슴 아픈 사건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트라우마는 엘리베이터 화재로 인해 에스컬레이터만 타고 다니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처럼 PTSD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사건과 유사한 자극(장소, 상황, 사람 등)을 만났을 때 극심한 불안으로 '마비'나 호흡곤란 등의 신체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어찌 보면 특수한 케이스에 불과하다. 트라우마는 그보다 훨씬 더 간접적이고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 나에게 크게 화를 냈던 상황에서 극도의 두려움이나 충격을 받았다면, 이런 트라우마는 끊임없이 상대방의 기분이나 눈치를 살피는 방향으로, 타인이 나에게 화를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방향으로 선택과 노력의 방향을 비튼다. 가랑비에 옷 젖듯 이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게 되고 착한 사람을 연기하게 되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 하기보다 타인과의 관계가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데 노력의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을 만나는데 피로감을 느낀다. 눈치 보는 삶에 지쳐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답답한 마음을 표현할만한 사람 한 명 없어 더 외로워지기도 한다.
'열등 콤플렉스' 벡터를 보상하는 방법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서 벗어난다.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 우리의 발목을 움켜잡고 놓아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뼈아픈 사건의 충격이 그 이후의 삶에 크고 작은 '여진'을 일으키는 탓이다. 어떤 사건은 너무나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 '절대, 다시는' 같은 경험을 하지 않겠다는 '강박'을 마음속에 심는다. '다시는 누군가에게 차이지 않겠어'라는 강박을 가진 사람은 만나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살피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어쩌다 약속시간에 늦었을 뿐인데 사랑이 식었다고 여기거나 자신을 소중히 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전화통화라도 되지 않는 날에는 마음속에 경종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한다.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했던 아픈 기억이 상기되며,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상대방을 지쳐버리게 하거나, 오해를 거듭해 서로의 사이가 서먹해지면 상대로부터 이별통보를 받지 않기 위해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꺼낸다. 스스로 이별을 선택하지 않으면 상대로부터 버림받고 말 것이라는 '강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관계를 끝장내어버린 것은 마음속에 존재하는 '강박'이었을 수 있다.
상처는 물론 아프다. 심한 상처는 생명을 위태롭게 하거나 흉터가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동차에 아무런 스크레치도 남지 않기를 바란다면 주차장 한구석, 남들에게 문콕조차 당하지 않을 곳을 골라 차를 박아두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차를 구입한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피하려 하다 보면 삶의 반경이 점점 좁아져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옴짝달싹 못하게 되어버린다. 교통사고 한 번 당했다고 해서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성급하게 보행신호만 보고 달려 나가기 전에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드는 오토바이가 있는지 살펴보는 방향으로 같은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 '모든 차는 신호를 무시해. 모든 오토바이는 위험해. 도로 위는 죽기 직전의 사람들이 달려드는 망자의 땅 같은 곳이야.' 이러 메아리들이 존재할 수 있지만, '절대, 한 번도, 다시는, 모든'과 같은 단어가 붙는 대부분의 생각들은 강박으로 인한 만성 불안의 상태를 만드는 비합리적 신념의 일종이다. 사방에 통행금지 딱지가 붙은 상태로는 어떤 방향으로도 갈 수 없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바꿀 수 없는 것, 또는 간단히, 쉽게, 단시간 내에 급변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 만성 불안과 짜증 상태로 우리를 몰고 간다. 특히 현재의 상황은 결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갑자기 흙수저가 금수저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일은 '황금빛 내 인생'에서와 같이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드라마를 통한 대리만족과 현실에 대한 불만족을 접목시켜서는 안 된다. 현실은 현실적이기에 무겁다. 현실은 산들바람을 타고 태평양을 횡단하지 못한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에 수많은 탐험가들은 무모한 탐험에 뛰어들다 목숨이나 재산을 잃어야만 했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커다란 사업 성공, 거액의 투자유치, 주가급등, 부동산 대박 등을 통해 벼락부자가 되기를 꿈꾸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꿈은 담배연기처럼 몸에 해롭다. 작은 성공이라도 그런 류의 성공은 차라리 경험하지 않는 것이 낫다. 흔치 않은 성공에 한 번 중독되면 다음에도 같은 행운이 또 일어날 것 같다. 담배연기로 몽롱해져 현실감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중독으로부터 헤어 나오기도 어렵다. 자칫하면 폐 하나쯤은 고스란히 내어주어야 한다. 현실과의 괴리감이 클수록 추락은 더욱 고통스럽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차근차근 계단을 쌓아나가는 일이지 열기구를 타고 높이 솟아오르는 것이 아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의 대표적인 예는 '성격'이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강연에서 '지능과 성격은 20살이 지나면 상수'라고 했다. 이혼사유에도 흔히 등장하듯이 '성격차이'는 쉽게 극복되지 못하는 것 같다. 정말 그들의 이혼이 '성격' 때문이었는지는 두고 볼 문제지만 그만큼 성격이 관계를 어렵게 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대변하는 장면이다.
성격이나 지능과 같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형질을 '기질'이라고 한다. 기질은 우리가 수용해야 할 자신의 일부일 뿐, 기계의 부품처럼 갈아 끼우거나 교체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기질자체를 문제시하는 한 해소되지 못하는 열망과 고민의 여파로 인해, 열등감이 열등 콤플렉스로 이어질 조건이 갖추어지기 쉽다. 열등감 자체보다는, 극복할 수단이나 방법을 갖추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수준의 지능을 갖춘 내가 옆집 아무개처럼 매일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만 하면서 수학과 물리를 A학점을 받기를 원해서는 안된다. 그런 바람은 독약이다. 그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며 '나는 왜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을까? 역시 나는 머리가 나빠서 안되나 봐.'와 같이 자기 연민이나 자기 비하에 빠지는 것은 좋지 않다. 오히려 그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참고서적이나 공부법을 찾아보는 것이 낫다.
활발한 성격에 친구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A를 보며 부러움을 가지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원인을 내성적인 자신의 성격으로 돌리는 것은 좋지 않다.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가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 상대방이 어떻게 해석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고민하느라 상대방에게 말을 걸 타이밍을 놓치거나, 생각 속에 있는 것을 실제로 행동에 옮길 확률이 낮은 나의 기질은 평생 나를 따라다닌다. 갑자기 내가 외향적이거나 관계에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편안하게 말을 거는 일 따위는 생기지 않는다. 앞사람의 가방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도 혹시 이걸 말해주면 상대가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고민하는 자신을 탓해봐야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러다 그 사람과의 거리가 2m 이상 멀어져 입을 다물어버리게 된다 해도 그런 자신을 탓할 필요가 없다. 그냥 나는 그런가 보다 하면 그만이다. 이런 나를 잘못되었거나 나쁘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답을 정해두지 않는다.
정답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도록 정확히 쓰고, 맞는 번호를 정확히 기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십수 년을 경쟁하며 살다 보니 우리는 모든 상황에 정답을 정해두는 것에 익숙해졌다. 삶의 궤적에도 정답이 있어서 거기서 벗어나면 오답을 선택한 것처럼 잘못되거나 어딘가 부족한 인생을 사는 느낌이 든다. 과감하게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늘의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는 말을 듣다 보니 그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이고, 대범하고, 새로운 시도를 밥 먹듯 하지 않으면 왠지 삶이 정체된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의 말은 누군가에게는 진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허무맹랑한 소음에 불과하다. 그들의 방식은 나에게는 맞지 않는다.' 설사 어떤 분야에서는 그것이 진리에 가깝다 하더라도, 실제로 객관적인 데이터나 연구를 통해 증명된 더 좋은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를 부정하기 이전에 그들을 부정해볼 필요가 있다.
열등감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만들어진다. 비교는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인해 열등감이 열등 콤플렉스로 발전되거나, 만성적인 불만족의 상태로 나를 몰아넣고 있다면, 차라리 비교를 악질적인 성추행범으로 여기고 기피하거나 사고방식의 영역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낫다. '비교'는 현대사회 안에 이미 만연해 있어서, 은연중에 비교하거나 비교당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비교우위를 따지며 우리를 평가하도록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으며, 그 결과를 성적, 인사고과, 취업, 진급, 연봉, 성과급, 공시지가 등으로 고스란히 체감하게 된다. 그러니 '실크로드는 없다. 방법은 각자에게 다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비교는 죄악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수도 있다. 물에 빠졌을 때는 일단 뭍으로 빠져나오고 봐야 한다. 그 안에서 몸에 힘을 빼고 정확한 영법을 구사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