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욕망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물, '킹덤'

by 작가 전우형

조선땅에 좀비가 창궐하기까지


둔탁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고삐를 한껏 당기며 말을 타고 달리고 있다. 그 뒤를 한 남자가 말없이 뒤따른다. 캄캄한 어둠을 딛고 그 두 사람은 도읍 한양에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발길을 서두른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금군별장을 위시한 일단의 무리가 맹렬히 뒤쫓고 있다.


멀리 한대의 마차가 모습을 드러낸다. 출발할 때는 분명 두 사람이었는데, 오직 한 사람만이 말에 타고 터덜터덜 다가오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의원의 복귀 소식만을 기다렸던 지율헌 식구들의 이목은 반가움도 잠시, 마차에 실린 거무죽죽한 관짝으로 향한다. 스승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장례준비를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청운의 꿈을 품고 스승을 따라 한양으로 떠났던 어린 제자가 짐승에게 물어뜯긴 잔혹한 모습으로 차가운 관짝에 누워 있는 모습에 지율헌 식구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대체 한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의녀 서비는 침중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길 뿐인 이승희 의원의 뒤를 쫓아가며 영문을 묻고 또 묻지만 이미 굳어버린 의원의 입은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열 수 없을 것 같았다.


두 남자가 지율헌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어떠한 생명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죽음의 냄새만이 가득한 그곳. 한바탕 크나큰 혈겁이 벌어졌음을 암시하듯, 피딱지와 살점이 곳곳에 들러붙어 있고, 창, 칼, 도끼, 낫과 같은 온갖 날카로운 것들이 잔뜩 설치되어 있었다. 마치 여전히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를 세상과 영원히 격리시키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두 사내, 비운의 세자 이창과 호위무사 무영은 나무판자로 겹겹이 막아둔 지율헌의 입구를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안쪽의 상황은 더욱 목불인견이다. 마치 가운데에 사람들을 모아 두고 이리저리 밀어대며 고문이라도 한 것처럼 원형으로 둘러친 죽창의 창끝은 일제히 마당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라붙은 혈흔과 살점들을 보면 분명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것에 꿰뚫려 꼬챙이 신세가 되었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시체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정리가 끝난 폐가라는 말인가? 안쪽을 더 살펴보다가 마룻바닥이 꺼지며 우연히 아래쪽을 확인하고 마는 두 사람. 그늘진 마룻바닥 아래에는 수십구의 시체가 숨겨져 있었다.


동래부사 조범팔은 부임을 축하하는 연회 자리에서 대규모 살인사건 소식을 보고받는다. 당대 제일의 세도가문이자 중전과 더불어 영의정 자리를 차지하고 왕 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외척 가문, 해원 조 씨의 후광에 힘입어 동래부사로 낙점된 한량스러운 범팔은 거적때기에 덮여 길게 늘어선 시신들을 보고 아연실색한다. '영신'이라는 자가 이번 살겁의 원흉으로 지목되는데. 마침 관내로 바로 그 '영신'이라는 자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뛰어들어와 날뛰기 시작한다. "이 자들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어린 제자, 단이가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심난해진 마음을 다잡고 약초 캐기에 여념이 없던 서비. 지율헌으로 돌아오던 그녀에게 평소와는 다른 하얀 연기가 눈에 띈다. 구워삶을 나무뿌리조차 씨가 말라버렸을 정도의 기근에 보기 힘든 연기였다. '저렇게 연기를 피울 정도로 요리할만한 것이 없을 터인데?' 아무래도 생경한 광경에 겨울 추위 때문인지 모를 으슬으슬한 느낌마저 밀려든다. 그렇게 돌아온 지율헌 내에는 환자들이 뜨끈한 국물과 함께 뼈를 한껏 발골해내며 고기를 뜯고 있었다.


"이 겨울에 사슴이 아직 남아있다고요?" 영신이라는 작자가 사슴 한 마리를 잡아왔다는 말을 믿어보려는 서비. 하지만 의녀는 젖 물린 아내를 가리키며 재차 고깃국을 청하는 환자를 위해 다시금 국을 한 사발 뜨려는 찰나, 섬뜩한 무언가를 보고야 만다. 흡사 물에 빠져 불어 터진 사람의 손가락과도 유사한 그것을. 섬뜩한 예감의 근거를 확인하기 위해 서비는 영신의 멱살을 잡고 소리친다. 하지만 당당할 정도로 담담한 영신의 말. 말. 말. "지금껏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아남아 왔을 것 같소? 나라에서 그들에게 쌀 한 소쿠리 내어줬을 것 같소? 그들을 배고픔에서 구해준 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굶어 죽어간 이웃들의 뼈와 살이었소!"


분노가 치밀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던 서비에게 다급한 비명소리와 함께 이상한 신음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해서일까? 아니면 단순히 인육을 탐한 탓일까? 하나둘씩 거품을 물고 쓰러져가던 사람들은 곧 사지가 뒤틀린 채로 죽음을 맞이하고, 급변하는 사태를 의녀들도 어찌하지 못한다.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구해야 할 이승희 의원조차 지금의 사태에 의아함을 금치 못한다. '병증이 변했다... 한양에서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단이는 병자에게 물렸지만 그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을 뿐이었어. 그런데 이건 대체...?' 분명 숨이 멎었을 환자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산 사람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광경.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먹는 것과,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먹는 것. 어느 것이 지옥에 더 가까웠을지 모르나, 선선한 지옥도는 지율헌을 처참한 비명과 살육의 광장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해 질 녘의 관청 안에 울려 퍼지는 외롭고도 처절한 몸부림. "해가 지기 전에 이들을 모두 불태워야 합니다!" 하지만 미친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결국 서서히 해는 서산을 넘어가고, 장내에는 자욱한 어둠이 찾아온다. 웅성거리던 군중의 외마디 외침이 들린다. "어! 저기 뭔가 움직이는 것 같은데?" 누워있던 시신들의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굳은 몸을 풀듯 천천히 일어나는 망자들의 시체. 그렇게 지율헌에서 시작된 사극판 좀비들과의 쫓고 쫓기는 사투는 동래를 시작으로 경상 땅을 지나 조선 전체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과연 이 역병의 쓰나미를 인간의 노력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킹덤'의 주요 스토리라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물, '킹덤'의 스토리는 크게 2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 비운의 세자 '창'이 해원 조 씨에게 빼앗긴 왕국을 되찾는 과정

힘을 잃어버린 왕은 해원 조 씨의 꼭두각시에 불과했고 결국 죽은 후에도 생사초에 부활해 좀비가 되어 외척들에게 이용당해야만 했다. 세자 창은 첩실의 자손으로, 곧 태어날지 모를 원자에게 언제 세자의 자리를 빼앗길지 모르는 위태로운 운명이다. 그러던 차에 어느 순간부터 꼭두각시 왕이 얼굴조차 내비치지 않는다. 오로지 살아있는 왕의 모습을 확인한 사람은 영의정 조학주와 그의 딸인 중전, 단 두 사람뿐. 궁성 곳곳이 뒤숭숭하고 왕의 생사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고, 세자 이창 또한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세자의 문안인사조차 드릴 수 없게 하는 중전과 영의정. 결국 세자 이창은 아바마마를 뵈러 '강녕전'에 몰래 잠입하지만 그 안에서 짐승 같은 으르렁거림과 악취, 피비린내를 풍기는 수상한 그림자를 목격한다. 결국 왕의 얼굴은 확인하지 못한 채 돌아 나온 이창은 몰래 왕의 병상일지를 입수해 확인해보지만, 그곳에는 '백약이 무효하다'는 것을 끝으로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달랑 호위무사 한 명만을 대동한 채 궁을 빠져나와 마지막으로 임금을 치료했던 이승희 의원을 찾아 부산 동래에 위치한 지율헌으로 천리길을 떠나게 되는 장면이 실질적인 스토리의 시작이다. 그에게는 왕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외부에서 알아내는 것만이 조정을 좌지우지하며 꼭두각시 왕 위에 군림한 해원 조 씨로부터 잃어버린 왕국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두 번째, 좀비로 뒤덮인 조선이라는 나라를 인간들의 노력으로 되찾는 과정

좀비들은 두 가지 면에서 치명적이다. 첫 번째는 머리를 잘리지 않는 한 죽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적을 물어뜯어 아군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킹덤'에 등장하는 사극판 좀비들은 하얀 천옷을 입어서인지 핏자국이 더욱 도드라지고 선명한 느낌을 준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좀비들이 광기에 휩싸여 달려드는 장면에 어지간한 사람은 몸과 마음이 공포로 굳어버리고 만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좀비들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베고 또 베어도 어떻게든 달려와 이빨 자국을 남긴다. 쓰러진 동료와 가족이 눈알을 뒤집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멀쩡하던 사람도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여실히 확인시켜주는 좀비들. 협상 불가에 '닥돌'의 기세로 달려드는 좀비들을 물리칠 방법이 과연 있긴 한 걸까? 그런 좀비들의 약점을 파악하고 나름의 전략과 전술로 대응해나가는 인간들의 기지와 희생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두 갈래로 나뉜 스토리의 큰 줄기들은 나라를 되찾는 과정의 연장선에 있다. 그래서 제목 또한 '킹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킹덤'의 관전 포인트


인간과 좀비, 어느 쪽이 더 잔혹하고 비인간적일까?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역병으로 좀비가 된 자들과, 좀비를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하는 자들. 이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 중 어느 쪽이 더 위험하고 '비인간적'일까? 킹덤의 주인공인 세자 '창'은 눈앞에 달려드는 한국판 좀비들과도 싸워야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욕망의 노예가 된 '인간'들과도 처절한 싸움을 이어나가야만 한다. 죽은 왕을 좀비로 되살려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 하는 아빠와, 유산된 사실을 숨긴 채 갓 나은 산모의 아기를 빼앗아 원자로 삼으려 하는 딸. 이 파렴치한 부녀 중 어느 쪽이 더 좀비를 닮았을까?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두 부녀는 굉장히 닮아있고, 주위의 인간이라는 인간은 남김없이 먹어치울 뿐인 좀비들의 식성과도 닮아있다. 욕망의 덫에 걸리면 그들 또한 욕망만을 좇는 노예가 될 뿐이라는 점에서, 물어뜯기는 즉시 똑같은 좀비가 되어버리는 '역병'의 성격과도 유사하다.


좀비보다 더 추악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며

마음은 이미 역병에 걸린 해원 조 씨 일가. 겉으로만 사람을 물고 뜯지 않을 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그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은, 과도한 경쟁과 이기주의에 물든 현대인들의 추악한 내면을 되돌아보게 한다. "아버님, 저는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시즌 막바지에 등장하는, 중전이 광기에 물든 눈으로 달려드는 좀비들을 바라보며 창백한 읊조림을 내뱉던 장면은,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아무도 갖지 못하게 하겠다는 그들의 비틀린 내면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버지마저 살해하고 말았던 그녀의 말로는 욕망의 끝이 과연 어디를 향하는지를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잔잔한 중저음의 묵직한 배경음 속에 묻어나는 섬뜩한 공포

킹덤의 배경음악은 시종일관 조용하고 묵직하다. 잔잔한 배경음들은 사소한 효과음 하나하나를 극대화함으로써 매장면의 생생함을 더할 뿐 아니라, 마치 고양잇과 맹수들이 하악 질 할 때와 같은 좀비들의 울부짖음을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그것들의 공포가 귀를 날카롭게 후벼 파도록 내버려 둔다. 침묵으로 가득 찬 공간을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울부짖음이 갑작스럽게 채우고 들어올 때 누구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짜릿한 전류가 흐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며...


조선 땅에 좀비가 창궐하게 된 것은 결국 인간의 악한 마음과 욕망 때문이다. 좀비물에 철학적인 물음을 담는다는 것이 엉뚱해 보일 수 있지만, 이미 사람이 사람을 물어뜯는 일들은 사회에서 늘 발생해왔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이빨 자국이나 좀비들이 아닐 뿐, 내가 갖지 못한 것이라면 남도 가질 수 없도록 모두 망가트려버리고 말겠다는 사갈과 같은 마음은 이미 사회 저변에서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를 공포에 물들이고 있다. '킹덤'에 등장하는 좀비보다 더한 인간의 잔혹성과 욕망의 폐해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 단순히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이상의 울림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킹덤'에 대한 짧은 소개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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