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선수는 경기가 끝나기 전에 필드를 벗어나면 안 되는 걸까?
한국시간 기준으로 오늘(12월 17일 목요일) 새벽 5시에 열렸던 토트넘과 리버풀의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 경기. 양 팀의 승점은 동일했고 골득실에서 앞선 토트넘이 1위를 지키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경기 결과는 양 팀의 향후 리그 우승 경쟁에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 수 없었다. 토트넘은 이번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선두 다툼에서 더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었고, 전년도 디팬딩 챔피언인 리버풀은 이번 경기에서 승리해야만 리그 선두자리를 탈환할 수 있었다. 20개 팀이 각각의 팀과 2번씩, 총 38라운드를 소화해야 하기에 13라운드는 리그 전체를 보면 1/3 지점에 불과하지만, 이번 경기와 같이 첨예한 선두 다툼을 하는 팀 간의 경기는 승리하는 팀의 경우 승점 3점을 가져가는 동시에 경쟁상대로부터 승점 3점을 빼앗아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리그 우승 레이스의 윤곽을 결정짓는데 핵심적인 경기이기도 했다.
이번 선두 다툼의 승자는 아쉽게도 리버풀이었다. 리버풀은 오늘 경기를 통해 리그 2위에서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선제 득점은 리버풀의 간판 스트라이커 모하메드 살라가 가져갔다. 전반에 수차례 좋은 선방을 보여주었던 토트넘의 요리스 골키퍼도 수비수의 발에 맞고 굴절되어 골대 한쪽 구석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볼의 궤적을 물끄러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골키퍼는 순간적으로 공격수의 자세를 보고 몸을 날리는데, 굴절되어 들어오는 슛은 운 좋게 골키퍼 쪽으로 오지 않는 한 대부분 반응하지 못한다. 리버풀은 선취점을 획득하며 1대 0으로 리드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리버풀의 1점 차 리드는 오래가지 못했다. 불과 10분도 지나지 않아 손흥민 선수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깔끔한 마무리였다. 리버풀의 베테랑 골키퍼 알리송이 몸을 날려봤지만 왼쪽 니어 포스트로 낮게 깔려 들어가는 손흥민 선수의 슛을 막을 수는 없었다. 손흥민 선수의 리그 11번째 골이었으며 토트넘 이적 후 통산 99번째 골이었다. 이 골로 기나긴 리그 레이스의 분수령이 될 중요한 경기의 흐름을 원점으로 돌렸을 뿐 아니라, 득점왕 경쟁에서도 다시 에버턴의 도미닉 칼버트 르윈,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 선수와 함께 공동선두로 올라서게 되었다.
1대 1 동점 상황에서 시작된 후반전. 토트넘의 후반 기세는 제법 매서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베르흐바인 선수의 골키퍼와 1대 1 찬스, 코너킥 상황에서의 해리 케인의 헤더 골 찬스까지 중요한 득점 기회를 모두 점수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특히 손흥민 선수의 감각적인 백헤딩 패스로 만들어진 베르흐바인 선수의 골키퍼와 1대 1 찬스를 놓친 것은 너무나 아쉬웠다. 이런 단독 찬스를 성공시키는 것은 공격수로서의 최소한의 미덕과도 같은데 이 황금 같은 찬스를 놓치고 말았다. 베르흐바인 선수는 골키퍼의 움직임까지 최종적으로 확인하며 침착하게 빈 공간으로 슛을 찔러 넣었지만 안타깝게도 슛은 오른쪽 포스트바를 맞고 튀어나왔다. 바운드된 볼은 수비수의 발에 걸려 멀리 걷어내어 졌다. 아마도 후반전을 이처럼 주도하고도 역전골을 성공시키지 못했던 것이 토트넘이 결국 패배한 주요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몇 차례의 공방이 더 오간 후반 87분, 토트넘의 조제 무리뉴 감독은 손흥민 선수를 델리 알리 선수와 교체시키며 빼준다. 하지만 손흥민 선수가 교체 아웃된 후 3분도 지나지 않아 토트넘은 리버풀에게 득점을 내어주며 2대 1로 패하고 말았다. 로버트슨의 코너킥에 이어진 피르미누의 헤더 골이었다. 분명 피르미누 선수의 돌아들어가는 움직임도 좋았고, 정확한 헤딩 임팩트로 왼쪽 니어 포스트 상단을 제대로 노린 것이 득점의 원동력이긴 했지만(솔직히 송곳처럼 날카로웠던 헤더이긴 했다.), 이번 패배를 두고 토트넘 팬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공통적인 내용은 '손흥민 선수를 경기 끝날 때까지 빼지 마라, 손흥민 선수가 나가고 곧바로 실점한 게 대체 몇 번째냐?!' 대략 이런 원망들이었다.
아마도 팬들이 지난 리그 5라운드 경기, 웨스트햄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반에만 3점을 따내며 승세를 굳혔던 토트넘이 후반 80분, 손흥민 선수가 교체되어 나간 후 15분 동안 웨스트햄에 3골을 내어주며 다 이긴 경기를 놓쳤던 바로 그 경기다. 그 당시에도 손흥민 선수를 너무 이른 시간에 벤치로 불러들였던 것이 아니냐며 무리뉴 감독의 용병술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기도 했었다. 물론, 축구경기는 팀플레이로 이루어지고, 그렇기에 손흥민 선수 한 명의 교체가 팀의 실점으로 이어진다는 식의 분석은 합리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 다만 추측되는 요인이 있다면 최근 손흥민 선수의 폼과 속도를 들 수 있다.
2020-21 시즌 득점왕 경쟁에서 선두로 올라있는 손흥민 선수의 폼은 단지 리그 13경기에서 11골을 넣었다는 사실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이다. 11골이 모두 필드골이며, 페널티킥 골이 단 한골도 없다. 더불어 마무리 수준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날카로워졌다. 올해 손흥민 선수의 골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 모두가 그것에 공감할 것이다. 수비수를 맞고 굴절되거나 데굴데굴 굴러들어간 골도 없다. 완벽한 공간 침투로 찬스를 만들어낸 후 상대팀이 멍하게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침착하고 날카로운 슛으로 골키퍼를 꿰뚫고 들어간 골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마무리의 '질'이 다르다. 데이터 역시 그것을 증명한다. 현재 EPL 득점 공동 선두인 3명의 선수를 비교해봐도 비교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 모하메드 살라, 슈팅 32회, 유효슈팅 24회, 득점 11점
- 도미닉 칼버트 르윈, 슈팅 27회, 유효슈팅 18회, 득점 11점
- 손흥민, 슈팅 19회, 유효슈팅 15회, 득점 11점
손흥민 선수의 마무리가 얼마나 정확한지 보여주는 지표 2가지는 '골 전환율(Goal Conversion)'과 '슛 정확도(Shoop Accuracy)'인데, 골 전환율은 '전체 슈팅 수 대비 득점 비율'로, 손흥민 선수의 골 전환율은 57.8%에 달한다. 쉽게 말해 2번 슛 하면 최소 1골은 넣는다는 것이고, 과장 좀 보태면 3번 차면 2번은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함께 득점왕 경쟁 중인 최정상급 공격수 살라(34.3%), 칼버트 르윈(40.7%)에 비해서도 1.5~2배가량 높은 압도적인 수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지표는 슈팅 정확도인데, 이것은 '전체 슈팅 수 대비 유효슈팅 비율'로 손흥민 선수의 슈팅 정확도는 78.9%에 달한다. 유효슈팅은 골키퍼가 막지 못했다면 득점으로 연결될 수 있는 슈팅으로, 골문 안쪽을 향한 슈팅을 말한다. 축구를 잘 모르는 분들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겠다. 그렇다면 프로 축구선수가, 그것도 공격수가 골대 바깥으로 차는 슈팅도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데이터가 보여주듯 실제로 유효슈팅 비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될 것 같은 똥볼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물론, 골키퍼나 수비수가 없다면 모든 축구선수가 골대 안쪽을 노릴 수 있을 것이나(때로는 그렇지 못한 선수들도 있겠지만) 공은 둥글고 인간의 발은 뾰족하다. 원하는 대로 볼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은 프로 중의 프로선수들이라 해도 쉽지 않고, 수비수가 몸싸움을 걸어오며 슛의 정확도를 떨어트리거나 편안하게 슛을 할만한 시간이나 각도를 내어주지 않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잠깐의 틈을 만들어 빠르게 드리블하며 내달리거나, 순간적으로 찔러들어오는 패스를 받으며 빠른 템포로 슛 동작을 가져가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정확도까지 완벽하게 챙길 수 있는 선수는 흔치 않다. 당연하게도 차분하고 정확한 슛을 하려고 템포를 늦추거나 더 좋은 시점을 노리다가는 십중팔구 수비수의 블록에 걸리거나 슛을 아예 하지 못하고 만다.
이런 요소들이 손흥민 선수급 마무리 능력을 보여주는 선수가 세계 유수의 리그에서도 흔치 않은 이유다. 그러니 속된 말로 손흥민 선수에게 제대로 된 찬스가 이어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상대팀으로서는 말 그대로 '재앙'이다. 그냥 점수를 내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머지는 골키퍼가 신의 가호를 받아 막아내길 바라는 수밖에. 골키퍼나 수비수의 입장에서 그만큼 짜증 나고 분통 터지는 상황도 없다.
거기다 손흥민 선수의 스프린트 속도는 정말, 욕 나오게 빠르다. 라인 브레이커도 이런 라인 브레이커가 없다. 프로선수들은 오프사이드 트랩을 쓰기 때문에 후방 수비수들은 서로 라인을 맞추려 애쓴다. 그런데 오프사이드 트랩은 그만큼 약점도 있는 것이, 손흥민 선수 정도로 스프린트가 빠른 선수에게 잘못 뚫리면 그대로 골키퍼와 1대 1 찬스를 내어주어야만 한다. 상대팀 수비수들은 손흥민 선수의 움직임을 졸졸 따라다니며 그가 필드에 존재하는 한 90분 내내 그를 전담 마크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뛰어들어가는 손흥민 선수를 뒤에서 따라잡을만한 스피드를 갖춘 수비수들이 흔치 않고, 뒤에서 쫓는 형상에서는 퇴장이나 경고 위험 때문에 태클로 저지하기도 어렵다.
수비수 입장에서는 언제나 손흥민 선수를 예의 주시하다가 그가 뛰어들어갈 채비를 갖추는 즉시 같이 뛰어들어가기 시작해야 그나마 최소한의 수비라도 '시도'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래나 저래나 상대팀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그의 최근 득점력을 감안하면, 상대팀 감독으로서는 최소 1~2명의 전담 마크맨을 손흥민 선수에게 붙이는 전략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상대팀의 공격 참여 숫자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손흥민 선수가 상대 진영을 휘젓고 다니는 것은 단순히 토트넘의 득점력을 높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상대팀의 공격력을 약화시키는 부가적 기능도 수행하게 된다. 뒤집어보면, 손흥민 선수가 필드를 벗어나는 것이 상대팀으로서는 얼마나 숨통 트이는 상황이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를 마크하며 하프라인을 넘어오지 못했을 일부 수비자원들을 상대 진영으로 부담 없이 밀어 넣을 수 있게 되며, 때에 따라서는 사소해 보이는 이런 차이가 승패의 향방을 갈라놓기도 하는 것이다.
축구는 팀플레이며 '숫자 싸움'이다. 필드의 공간을 얼마나 장악하고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볼을 배급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경기의 성패가 갈리는 스포츠로, 수비수보다 공격 숫자가 1명만 더 많아도 공격 작업이 대단히 수월해지며, EPL급의 최정상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라면 그 미세한 틈을 얼마든지 크게 벌려 득점을 꽂아 넣을 수 있다. 손흥민 선수가 벤치로 복귀한 후 벌어졌던 실점들이 반드시 이런 흐름의 결과로 귀결되었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되겠지만, 아마도 나를 비롯한 축구팬들은 이와 유사한 분석을 하고 있을 것이고, 자꾸만 응원하는 팀이 어이없이 막판에 무너지는 장면을 보았을 때, 손흥민 선수가 빠진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손흥민 선수로써는 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팀 내에서 키플레이어로써의 그의 입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더 자주 일어날수록 더욱 굳건해질 수밖에 없다. 손흥민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토트넘은 2020-21 시즌 유력한 리그 우승후보로 손꼽히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 첼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소위 이름만 들어도 아는 빅클럽의 지휘봉을 잡으며 우승으로 이끌어왔던 조제 무리뉴 감독 체제 2년 차다. 통상 2년 차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무리뉴 감독의 전적을 보면 올해 희망적인 미래를 점칠만한 충분한 근거가 된다. 감독의 굳건한 신임을 받으며 토트넘에서 아직 들어보지 못했던 트로피를 꼭 들어볼 수 있기를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