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1 EPL 순위표 중간점검

치열한 선두권 다툼과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박싱데이'

by 작가 전우형

프리미어리그는 20개 팀이 19개의 상대팀과 각각 두 번씩 경기를 치른다. 매년 8월경 시작되는 리그 경기는 다음 해 5월까지 이어지고, 마지막 38라운드는 승패 조작을 예방하기 위해 20개 팀이 같은 날 같은 시각 동시에 경기를 치르게 된다.


프리미어리그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문화로 '박싱데이(Boxing day)'가 있다. '박싱데이'는 크리스마스 다음날부터 약 1~2주간 거의 매일 리그 경기가 열리는, 축구팬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축제기간이다. 경기일정이 매우 촘촘하게 채워지기에 각각의 구단과 선수들에게는 살인적인 일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보는 사람들은 다음 경기를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볼거리, 즐길거리도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손흥민 선수가 소속되어 있는 토트넘 구단을 기준으로 박싱데이 일정을 살펴보면, 12.28.(월) 울버햄튼전, 12.31.(목) 풀럼전, 1. 2.(토) 리즈 유나이티드전까지 2일에서 3일 간격으로 리그 경기가 연달아 잡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영국 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풀럼전은 취소되었고, 결과적으로 토트넘은 박싱데이 기간 중 2 경기만 소화하면 되었지만, 이 박싱데이 기간을 두고 EPL 감독들의 고민이 큰 것이 사실이다.


박싱데이 기간은 단순히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화려하게 장식해줄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사실상 기나긴 리그의 중간결산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중요한 기간이다. 박싱데이 기간의 선두가 리그 최종 우승으로 이어진다는 공식이 정설처럼 굳어져있을 정도로, 이 기간을 성공적으로 보내지 못하면 리그 우승도 멀어진다. 빡빡한 일정 탓에 선수들의 체력관리나 부상 위험도 높아져 두터운 선수층을 구축하지 못한 구단의 경우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경기 간 간격이 짧은 탓에 로테이션이 필수이기 때문에 당장 전력으로 쓸 수 있는 후보선수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가 박싱데이를 버텨내기 위한 중요한 역량이 되기도 한다. 당장의 승점을 위해 에이스 선수를 무리하게 출전시키며 혹사시켰다가는 오히려 득보다 실이 클 수도 있기 때문에 경기 스쿼드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감독의 미간에는 주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17라운드까지 진행된 프리미어리그 순위표를 보면 2019-20 시즌이나 2018-19 시즌과 같이 절대적 강자의 단독 질주는 보이지 않는다. 속된 말로 다 같이 비슷한 수준으로 죽을 쑤고 있다고 보면 된다. 2018-19 시즌은 '맨체스터 시티'가 32승 2무 4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탓에 리버풀은 다른 시즌이었다면 충분히 우승했을 30승 고지를 넘어섰음에도 승점 1점의 근소한 차이로 2위에 머물러야만 했다. 리버풀 팬들로서는 상당히 아쉬운 한 해였을 것이다. 하지만 2019-20 시즌은 리버풀이 거의 전승 무패에 가까운 고공행진을 하며 리그 우승을 진작에 결정지으며 무관에 머물렀던 지난 시즌의 한을 털어버렸던 한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승 확정 이후 리그 막바지에 연이어 무승부와 패배를 기록하는 등 흥미로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당시 위르겐 클롭 감독이 경기 중 고개를 갸우뚱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당시 리버풀 선수들의 모습은 목표를 잃어버린 수능 후 고3 수험생들같이 어딘지 모르게 나사가 하나 풀리고 맥이 빠져 보였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을 내려놓는 것이 아닌 이상, 클롭 감독으로서는 석연치 않은 마무리에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음 시즌을 염두에 두고 선수들의 멘탈리티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그런 우려는 단지 노파심을 넘어 올 시즌 리버풀의 부진 아닌 부진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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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렇게 우승의 윤곽이 뚜렷했던 지난 시즌들과는 달리 이번 시즌은 중반부를 지나고 있는 현재까지도 순위표의 변동이 매우 잦은 혼란스러운 형국이다. 최근 가장 인상적인 성적을 보여주는 팀은 역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다. 맨유는 시즌 초반의 부진을 딛고 파죽의 10경기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다. 쟁쟁한 강팀들이 리그 10위권 바깥에 줄지어 머물며 생경한 리그 풍경을 보여주던 초반의 분위기와는 달리, (세부내용은 아래 글 참조, https://brunch.co.kr/@highting1/101)

어느새 리버풀과 승점 동률 2위까지 치고 올라온 것을 보면 퍼거슨 감독 시절의 맨유만큼 압도적인 기량에는 못 미친다 하더라도 여전한 강팀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얼마 전까지 경질설까지 돌며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을 솔샤르 감독의 입장에서는 숨통이 트였던 12월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맨유가 이처럼 약진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경기를 잘 풀어가서라기보다는 선두권 팀들 중 어느 누구도 확실한 강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7라운드를 치르는 동안 맨유와 레스터만이 10승 문턱을 겨우 넘어섰을 정도로 리그 내에는 절대강자가 없는 상황이다. 리그 선두인 리버풀조차 승점 33점을 획득하는데 그쳤다. 초반 매서운 기세를 보여주던 토트넘이 최근 4경기 무승으로 주춤하는 사이 선두에서 8위까지 곤두박질치기도 했고, 토요일 리즈전을 3:0으로 승리한 것 만으로 다시 리그 4위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순위 간 승점차가 매우 촘촘하다. 실제로 현재 10위권 순위표를 보면 승점 33점에서 26점으로 1위와 10위의 승점차가 단 7점에 불과할 정도로 흐름을 잘 타면 얼마든지 선두권에 진입할 수 있는 상태다. 한마디로 안심할 수 있는 팀은 아무도 없다. 현재의 흐름대로라면 리그 종반에 이르기까지 어떤 팀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시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손흥민 선수의 토트넘 통산 100호 골 소식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새해 첫 경기였던 리즈 유나이티드 전에 선발 출전한 손흥민 선수는 전반 42분경 최근 영혼의 단짝으로 불리는 해리 케인의 패스를 받아 가볍게 방향을 돌리는 감각적인 골로 팀 승리를 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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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니어 포스트 아래쪽의 좁은 공간을 파고든 날카로운 슛은 골키퍼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음에도 막아낼 수 없었던 클래스 높은 슛이었다. 전반 26분경 베르흐바인 선수의 재치 있는 동작이 만든 페널티킥 기회를 해리 케인 선수가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키며 1:0 리드를 만들었고, 전반 종료 직전 터진 손흥민 선수의 골을 통해 토트넘은 2:0까지 앞서 나갔다. 후반 시작 직후 손흥민 선수는 코너킥을 통해 알더베이럴트 선수의 헤딩골을 도와 1 도움까지 기록했다. 이로써 손흥민 선수는 토트넘 이적 후 통산 100호 골을 터트렸을 뿐 아니라 12골 5 도움으로 리그 득점왕 경쟁 2위로 다시 올라섰다. 선두 살라 선수와의 차이는 단 1골로 매우 근소하다. 공격포인트(득점+도움 수)로는 총 17포인트로 1위 해리 케인(10골 11도움), 최근 맨유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브루노 페르난데스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전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손흥민 선수의 리그 12골 중에는 페널티킥 골이 단 한골도 없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토트넘 통산 100골 중에서도 페널티킥은 단 1골뿐이라는 점. 토트넘의 페널티킥은 사실상 해리 케인 선수가 모두 전담하고 있다. 리그 득점왕 경쟁 중인 살라(13골 중 5골), 바디(11골 중 6골), 브루노 페르난데스(11골 중 5골) 선수 모두 팀 내에서 페널티킥 득점을 도맡아 하고 있어 5~6골을 페널티킥으로 얻어내었다. 어찌 보면 손흥민 선수는 그런 점에서 득점왕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대부분의 팀이라면 리그 득점왕에 조금 더 가까운 선수에게 페널티킥을 몰아주겠지만, 애석하게도 토트넘의 최전방 스트라이커는 해리 케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도 높은 필드골로만 16경기에서 12골을 넣고 리그 득점 순위 2위까지 올라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손흥민 선수의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할만한 충분한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아님에도 12골을 터트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팀의 공격 옵션을 더욱 다양하게 할 뿐 아니라, 상대팀의 수비를 분산시키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여주듯 실제로 프리미어리그 유수의 레전드 선수들이 입을 모아 손흥민 선수를 추켜세우고 있기도 하다.


여타의 선수들이었다면 현시점에서 자신에게 페널티킥 기회를 몰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며 팀 내 갈등이 발생하기에 충분한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적어도 호날두 선수와 같이 욕심으로 똘똘 뭉친 선수들이라면 충분히 그런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다. 그에 반해 페널티킥을 해리 케인에게 전담시키는 것에 대해 손흥민 선수와 케인 선수 사이의 불화는 없어 보인다. 손흥민 선수는 다른 선수의 득점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며, 실제로 인터뷰에서도 꾸준히 자신에게는 팀의 승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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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선수의 강점은 겸손과 이타성을 통해 더욱 빛이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리 케인 선수도 아마 그런 손흥민 선수에게 좋은 기회가 생기면 패스를 선물해주고 싶지 않을까? 축구는 팀플레이가 주축이기 때문에 선수들 사이의 유대감이 팀 전력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팀 분위기가 저하되면 어떤 팀도 최고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서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 해도 출전시간이나 선발 경쟁, 혹은 프리킥이나 페널티킥 찬스 등을 두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결과에 불복하고, 다른 선수들과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킨다면 개인적인 퍼포먼스는 인정하더라도, 팀에 그가 꼭 필요한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면서도 팀 승리를 가장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손흥민 선수는 많은 축구팀 감독들에게 있어 매력적인 선수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인터뷰에서 보여주는 무리뉴 감독의 신임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세계 유수의 빅클럽들로부터 손흥민 선수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의 몸값이 점점 치솟아 오르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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