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의 1:4 충격패. 프리미어리그 23R 경기 리뷰

믿었던 알리송 골키퍼의 X-man 데뷔전

by 작가 전우형

간만의 웃픈 예능이었던 프리미어리그 23R 리버풀 vs 맨체스터 시티 경기


2월 8일 새벽에 열렸던 프리미어리그 23R 리버풀 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에서 알리송 골키퍼는 인생 최악의 날을 경험하고 있었다. 빌드업 과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연달아 범했고 그 실수들은 고스란히 실점으로 이어졌다. 1:1이었던 스코어는 불과 십여분 사이에 4:1까지 벌어졌고, 참담하게도 그 장소는 리버풀의 홈구장인 '안필드'였다. 홈팬들이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게 위안이었다면 위안이었을까.



알리송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던게지


멘탈이 흔들렸다. 축구선수들에게 멘붕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깨어지는 것으로 찾아온다. 그래서 평소였다면 롱패스로 멀리 걷어내고 말았을 상황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느라 주춤거린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피지컬과 기술로 중무장한 프로선수들은 강하게 압박해오기 시작한다.


공간감각이 뛰어난 축구선수들은 경기장 위에 있으면서도 마치 바둑판을 위에서 내려다보듯 경기장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고 한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야 경기장에서 볼을 차면, 당장 눈앞에 있는 선수들의 위치도 파악하지 못한 채 어디로 패스할지 몰라 혼란스러워 하지만, 프로 축구선수들이 마치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처럼 플레이할 수 있는 것은 공을 달고 달리는 와중에도 틈틈이 다른 선수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절정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라면 당연하게도 나에게 공이 오면 어디로 그것을 뿌려줄지를 이미 계산하고 있고 그것은 골키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문제의 시작은 후반 72분경의 아슬아슬한 플레이였다


문제의 조짐은 72분경 최초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빌드업 과정에서 패스를 받은 알리송 골키퍼가 상대팀 공격수에게 볼을 빼앗길뻔한 아슬아슬한 상황이 나왔다. 다행히 센터백 파비뉴가 공을 멀리 걷어내며 실점의 위기에서 벗어나는가 했지만 위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연이어 터지고 있었다. 이어진 수비 과정에서 알리송은 수비수로부터 건네받은 볼을 애매하게 클리어링하게 되고, 그 볼은 패널티박스 바로 바깥에 포진해 있던 맨체스터 시티의 필 포든에게 연결되면서 실점의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다. 골키퍼의 롱패스를 예상한 리버풀 선수들은 공격을 전개할 생각에 상대팀 진영을 향하고 있었고 자연히 리버풀 수비수들 역시 전진 배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수비 공백을 틈타 필포든이 빠르게 패널티박스로 침투하면서 골문 앞에서 기다리던 귄도안에게 연결시켰고 귄도안은 전반전의 실책을 완전히 씻어낼 두 번째 득점에 성공했다.


72분경, 약 30초 사이에 벌어진 두 번의 치명적인 실책은 알리송의 멘탈을 완전히 뒤흔들어 버렸던 것이 분명했다. '의심암귀'가 찾아온 것이다. 운동선수들은 같은 동작을 수천, 수만 번 반복하며 자신의 어떤 감각과 신체동작을 연결시킨다. 이런 과정을 '각인'이라고 한다. 몸에 각인된 동작은 어지간하면 오류를 일으키지 않고, 필요한 때가 되면 무의식적으로 발휘되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공을 보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감각과 동작의 강력한 연결 회로가 끊어질 때가 있다. 그 순간이 바로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실수가 연달아 일어나는 순간이다.


분명 수비수와 골키퍼의 빌드업은 평소 훈련에서도, 그리고 실제 경기에서도 수없이 해왔던 과정일 것이다. 상대 공격수의 체력을 소모시키고 공격라인을 깊숙이 끌어당김으로써 상대 후방의 숫자를 줄이고 공간을 만들어내는 빌드업 방식은 전술적으로도 용이해 어느 팀이나 즐겨 쓰는 방식이다. 그리고 상대의 전방 압박을 대비한 훈련도 수비수와 골키퍼들이 늘 해오던 훈련의 일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것들이 갑자기 삐그덕거리는 것을 느낄 때, '덜컥' 하고 자신에 대한 의심이 찾아온다. 분명 '이런 감각으로 차면 이렇게 공을 보낼 수 있었는데', 그 메커니즘에 '의심'과 '생각'이 끼어드는 것이다. 그 부조화가 동작의 미세한 구멍을 만들고, 다음 실수로 이어지고 만다. 그것이 최전방 공격수라면 슛이 엉뚱한 방향을 향해 득점 찬스를 놓치고 말지만, 골문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골키퍼에게 나타나면 되돌릴 수 없는 실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때때로 실점은 득점 찬스를 놓친 것에 비해 더 많이 비난받고 무거운 책임이 물어진다. 그것은 그동안 리버풀의 골문을 굳건히 지켜왔던 알리송이라고 해도 피해 갈 수 없는 무거운 '정신적 압박'이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렇게 다시 킥오프 휘슬이 울리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75분경 알리송은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부족한 자신감은 프로선수라 해도 몸이 굳어지게 만들고, 그 약간의 경직이 볼을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지 못하게 만든다. 이번에는 수비수의 패스를 받아 페널티라인 선상에 있는 상대팀 공격수에게 그대로 볼을 헌납하고 만다. 누가 봐도 그 모습은 '지금 나한테 공 보내지 마. 뺏길 것 같아'라고 하는 두려움에 잔뜩 움츠러든 채로 허둥지둥하다가 아무 곳으로나 내가 아닌 다른 곳으로 공을 차 버리는 꼴이었다. 한마디로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같은 실수와 같은 패턴. 그렇게 불과 3분 사이에 1:1이었던 스코어는 3:1까지 벌어지고 만다. 기세가 오른 맨체스터 시티는 약 5분 뒤인 82분경, 필 포든의 벼락같은 슈팅으로 또 한골을 추가하며 리버풀의 추격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맨체스터 시티는 후반 72분에서 82분, 상대팀의 불안에 힘입어 약 10분 사이에 3골을 몰아쳤고 그렇게 4:1로 경기는 종료되어버렸다. 패배의 원인이 그동안 팀의 신뢰를 듬뿍 받아왔던 알리송 골키퍼에게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경기 후 평점도 3점대로 양 팀을 통틀어 최하의 평점을 받고 말았다. 경기 중 머리를 부여잡는 모습에서 그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어이없는 실수가 자신에 대한 믿음을 일순간 무너트려버렸다. 분명 첫 번째 패스미스가 나왔던 상황은 알리송 골키퍼가 충분한 여유를 갖고 클리어링을 해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상황에서 알리송은 상대 공격수에게 애매한 패스를 헌납해버렸고, 그것이 역습의 기점이 되어 결국 실점하고 말았다. 오늘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스스로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골키퍼가 치명적인 실수로 흔들릴 때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쳐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맨체스터 시티 공격수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리버풀 후방 깊숙한 곳에서부터 강하게 전방 압박을 해왔다. 그 결과 알리송은 빌드업 과정 중 또다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아마도 알리송에게 이번 경기는 평생에 남을 최악의 경기로 손꼽히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대팀의 '불운'은 우리 팀의 '행운'


사실 이 경기는 맨체스터 시티에게도 쉽지 않은 경기였다. 리그 초반의 부진을 씻어내며 상승세로 갈아탄 맨체스터 시티는 리그 1위에 올라 있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뒤를 바짝 쫓고 있어 승점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대팀은 전년도 '디팬딩 챔피언' 리버풀이었다. 작년에 비해 경기력이 부진하고 부상자도 속출한 리버풀이었지만 그래도 리버풀은 여전히 리버풀이었다. 게다가 맨체스터 시티 역시 팀의 중원을 책임지던 케빈 데 브라이너가 부상으로 결장한 상황이었다. 지켜낼 것이 많은 양 팀 간의 대결. 하지만 전반 35분경 스털링이 얻어낸 금쪽같은 페널티킥 기회를 귄도안이 저 멀리 허공으로 날려버리며 경기는 답답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전반전은 득점 없이 0:0 스코어로 종료되었고, 상위팀들이 서로를 견제하듯 이번 경기는 무승부로 끝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후반 48분 스털링의 재빠른 측면 돌파에 이어 골키퍼를 맞고 돌아 나온 공을 귄도안이 득점으로 연결시키며 겨우 1:0으로 앞서 나가는가 싶더니 후반 62분경 모하메드 살라가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 기회를 침착하게 마무리하면서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양 팀 모두 공격의 흐름이 그리 매끄럽지 못했고, 그것은 그만큼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위르겐 클롭 감독이 서로의 전술을 꿰뚫어 보고 적절한 수비 전략으로 맞대응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경기의 향방은 알리송 골키퍼가 결정지어버렸다. 골키퍼가 흔들리면 팀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이번 경기가 여실히 보여주었다. 만약 한 사람의 실수가 팀의 승패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골키퍼일 것이다. 그만큼 골키퍼는 실수해서는 안 되는 포지션이고, 안정적인 멘탈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한 경기만으로 알리송에 대한 팀의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그의 흔들림은 팀의 다른 골키퍼에게 주전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고 그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의 여부는 그의 역량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맨체스터 시티는 상대팀의 불운에 힘입어 귀중한 승점을 챙겨갔고 리버풀은 분위기 반전이 절실해졌다. 승부는 예측할 수 없고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발전할 수 있는 만큼 무너지기도 쉬운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이번 경기의 결과가 리그 레이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되는 장면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