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이 시큰거렸다. 가로등 불빛은 한정된 시야만을 허락했고, 그림자는 방향을 잃고 방황했다. 거리 한쪽 구석으로 나무판자 조각이 쌓여있었다. 마른 곰팡이 흔적, 검게 그을린 자국, 그리고 순백색의 페인트가 검은 회색으로 멍들어가는 과정을 짐작게 하는 곳곳의 흔적은 작열하는 대지 가운데 홀로 습기를 머금은 천연동굴을 연상하게 했다.
또 어느 집이 망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흔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쁜 걸음을 옮긴다. 사거리는 지나치는 관문일 뿐 목적지는 아니었다. 어쩌다 목적지가 된다 한들 한낱 약속 장소나 목적지를 설명하기 위한 참조점으로서 의미를 지닐 뿐. 과정에 속하는 것들은 요즘 들어 영 허무해지는 일이 많다.
콘크리트처럼 굳어가던 나의 생각을 비웃듯 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털모자가 달린 회색 후리스 재킷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그 청년은 한 아주머니가 길을 건너 은행 ATM에서 돈을 찾고, 슈크림 붕어빵과 팥 붕어빵을 각각 한 봉지씩 산 후 다시 길을 건너 아파트 단지 입구로 사라지는 시점까지도 망부석처럼 사거리 한쪽 모퉁이를 서성이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렇게 홀로 어딘가를 바라보던 그 청년은 이내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누구를 기다렸던 걸까, 아니면 그곳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던 걸까. 나는 그가 사거리에서 못다 한 목적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까? 아니면 그저 사거리를 지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웠던 걸까. 직접 질문하지 않는 이상 답은 없었다. 나는 서둘러 지나갈 뿐인 흔해 빠진 사거리에서 한참을 홀로 서성이다 사라진 그 청년의 사정이 유독 궁금했을 뿐이었다.
아무 관계없는 그 청년의 모습이 기억 한편에 맴도는 까닭은 '그냥'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일들은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간 머릿속을 떠돈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마치 저장 버튼도 누르지 못한 새벽녘의 습작처럼. 이유 없이 떠오른 단상들은 그렇게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현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곤 창밖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그럼 그때서야 여전한 어둠과, 차오르는 여명과, 그믐달이 보인다. 마치 지금은 하얀 도화지에 검은 잉크를 찍을 때가 아니라 그믐달을 마음에 담을 순간임을 알려주는 것처럼.
그렇게 조급한 날이면 꼭 신호에 자주 걸린다. 아무 이유 없이 관심을 끌던 그 청년처럼. 새벽녘까지 작업하던 내 눈에 비친 파란 화면처럼. 촉박한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는 충혈된 눈의 신호등처럼. 만약 이 신호를 무시하고 내달리면 조금은 빨리 도착할 수 있겠지. 흔히 상상하듯 신호를 무시하고 달린다고 해서 경찰이 손가락을 까딱거리거나, 교통사고가 나거나, 권선징악이 현세에 도래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일은 드물다. 그들은 대개 신호위반을 안전하게 수행하기 위한 나름의 법칙을 논문 한 편 정도는 너끈히 쓸 만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죽기 전까지는 그들 입장에서 답답하고 고지식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도로 위에서 낭비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하며 살아간다. 그런 모습을 자주 보다 보면 가끔 그들이 부러워질 때도 있다.
글쎄. 그들에게 불행이란 멈춰 서지 않음으로써 간혹 수명이 짧아지거나 황천길을 예행연습한다거나 재수 없게도 할 일 없는 경찰관에게 걸려 질서를 어지럽힌 대가를 치르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토록 진지한 브레이크는 축복이자 선물이다. 진짜 불행은 그런 방식으로도 늘, 아무 문제없이 목적지에 남들보다 빨리 도달할 수 있음을 깨달아버릴 때 찾아온다. 그렇게 조급함은 의미 있는 습관으로 몸과 마음에 새겨지고 점점 더 기다림에 미숙해지는 것이 그들에게 숨겨진 불행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