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고 관심 갖지 않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말을 걸 사람도, 들어줄 사람도 없었다. 마음 터놓을 친구도 없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았다. 가족조차 외롭게 했다. 무거움이 나를 짓눌러 숨 쉬기 힘들다.’
과거 일기장의 한 장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관과 절망. 삶은 지극히 어둡고 해가 들지 않았다. ‘누구도, 아무도’ 당시의 모든 것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치우쳐 있었다.
지나친 겸손이나 자기 비하는 불편하다. 스스로를 조금 더 존중할 필요가 있다. 괜찮은 실력을 갖고도 무시당한다면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두려움과 불확신은 몸과 마음을 웅크리게 만든다. 삶을 비관해 타인에게 휘둘리고 자책에 빠지고 만다.
키도 작고 별 볼 일 없었던 나는 무시받지 않기 위해 살았다. 친구나 동료에게 의지가 되었으면 했고, 든든하고 믿을만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빈틈없이, 실수 없이, 완벽하게, 끝까지 와 같은 것들은 삶의 모토였다. 모르는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고, 한때는 선생님을 꿈꾸기도 했다.
기대받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다. 미움받기 싫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랐다. 무던하고 성실하고 모나지 않은 성격은 적을 만들지 않는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마음은 불안했고, 만족하지 못했다.
자신감 저하와 불안은 종종 나이에 비례한다. 앞 자릿수가 바뀔 동안 나는 뭘 이루었을까?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들어가는 기분. 직업에 대한 회의.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 고개 숙인 나. 뭐 그리 죄송할 일은 많은지. 내가 미웠다.
우울감에 시달리고, 한숨이 늘었다. 무슨 일 있냐는 질문도 함께 많아졌다. 내게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특별히 재미있는 일도 없었다. 무감각한 하루. 의미 없는 시간. 줄어든 수면시간. 폭식과 음주. 체력 저하와 더불어 건강이 나빠졌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피곤하면 박카스를 먹고 졸리면 믹스커피를 타마셨다. 하지만 어떤 것도 내가 이 일을 왜 계속해야 하는지 이유를 채워주진 못했다.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는 사람을 만난 것은 그저 하나의 단추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은 기분. 큰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은 두려움과 불안. 해소되지 않는 갈증. 실수의 순간은 종종 눈앞에 맴돌았고 하지 순간의 수치스러운 감정이 떠올랐다.
운, 예상치 못한 변수. 모든 문제는 내 탓이었다. ‘내가 더 신경 쓸 걸. 괜한 말을 꺼냈어. 기분이 상했을 거야. 한 번 더 연락해볼 걸.’ 재판관 역할을 자처하며 나를 피고인석에 앉혔다. 나는 맞장구를 칠 수도, 부인할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