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짧은 글

어느 날의 어떤 마음

by 작가 전우형

하늘은 붓을 씻어낸 물의 그것처럼 불투명하고 거무죽죽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해풍에 휘날리는 머리칼처럼 이리저리 흔들려댔고 그 뒤로 죽은 색깔의 상록수가 춤을 추고 있었다.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수많은 자동차들 사이로 하얀색 버스 한 대가 휘청이고 있다. 차선 한쪽에 바퀴를 걸친 그 버스 옆으로는 승용차 한 대조차 통과하기 애매한 공간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바람이 불었고 천막은 흔들렸다. 나는 핸들을 거칠게 돌리며 액셀을 밟았다.


차창에 듬성듬성 붙어있던 빗방울들이 하나둘씩 바깥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던 빗방울들은 보이지 않는 손길에 질질 끌려가는 것처럼 세상의 뒤편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그 미련마저 털어버리기 위해 발 끝으로 액셀을 더욱 깊이 밀어 넣었다. 자동차의 거친 엔진음이 귓전을 어지럽히고, 허공에 붕 뜬 느낌이 들었다. 시트가 몸 전체를 꽉 붙드는 느낌과 함께 호흡이 잠시 멈추었고, 도로 위의 모든 점과 선, 면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답답할 정도로 앞을 가로막고 있던 흰색 버스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물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타고 떨어져 내리던 물은 이내 온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한기가 전신으로 퍼져나가며 손톱 바로 아래까지 소름이 돋았다. 물은 조금씩 온기를 더해갔다. 자욱한 수증기가 축축하게 식어있던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고, 잔뜩 힘이 들어갔던 근육들이 이완되는 것이 느껴졌다. 문득 누군가의 눈빛이 피부를 콕콕 찌르는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눈 앞에는 표정이 없는 한 남자가 흐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도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그가 점점 흐려져갔다. 손바닥으로 물기를 닦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의 실루엣은 점점 더 희미해졌다. 더 이상 닦아내는 것을 포기했다. 지독한 온기 속에서도 나는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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