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의 단상
눈이 내렸지만 쌓이지는 않았다. 눈이 쌓이는 날씨와 눈이 내려도 쌓이지 않는 날씨. 그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간극. 딱 그만큼의 차이가 1월과 2월을 가늠 짓는 것 같다. 봄날 같았던 시간도 얼어붙기 마련이고 옷깃을 싸매던 겨울밤의 온도도 매일의 감성이 다른 모양이다.
내리는 눈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오늘은 겨울의 어디쯤에 와 있을까? 삶의 좌표를 찾는 일은 중요하고도 어렵다. 일은 얼마나 진척되었을까? 10%밖에 진척되지 못했어도 나머지 90%를 채우면 된다는 '확신'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포기는 '아무리' 노력해도 목표점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에서 피어난다. 호흡을 잠시 늦추고 침착한 눈으로 현재의 위치를 돌아본다. 손글씨는 생각의 속도를 늦추어주었다.
차분하던 눈이 완연히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보라를 피해 여중생 4명이 카페로 들어왔다. 급작스러운 눈보라에 놀란 듯 토끼눈을 뜨고 서로를 바라보며 재잘거리는 모습이 웃음 짓게 한다. 눈보라는 좀처럼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쏟아지는 눈을 피해 여중생 3명이 카페로 더 들어왔다. 눈아 더 쏟아져라. 손님 더 많이 오게. 주문을 외워본다. 머피의 법칙일까? 마법처럼 눈보라가 잦아들고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쌓였던 눈은 이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자동차 위에는 눈이 남아있었고 카페 앞도 마찬가지였다. 해가 잘 들지 않는 이곳은 눈이 좀처럼 녹지 않는다.
올 겨울은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렸다. 평생 보아온 눈보다 더 많은 눈을 이번 겨울 동안 본 느낌이 든다. 평택에도 매년 이 정도로 눈이 많이 왔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기록적인 폭설. 그것도 몇십 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이라고 했다. 2020년은 유난히 특별한 해였고 그 싸한 분위기는 신축년 초반까지도 이어질 기세다. 그 중심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따위가 전 세계를 눈에 보일 정도로 흔들어대고 있다. 물론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고, 새로운 시험대 앞에 서야만 했지만.
작년 2월 경 나는 최종적으로 전역을 결정했고 3월부터는 전직지원기간에 들어갔다. 본부 전역 담당은 전역 신청서는 제출되어도 전역일 전에 취소할 수 있지만, 일단 전직지원기간이 시작되면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진작부터 되돌릴 생각은 없었지만 많은 주위분들이 나를 걱정해주셨다. 구체적으로는 애 셋 딸린 가장이었던 내 처지가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보직을 옮겨서 좀 더 버텨보는 것은 어떠냐. 나가서 뭐해 먹고살려고 그러냐. 재취업 준비는 마치고 나가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냐."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연금은 받고 나가라는 조언이었다. 군인연금 빼면 직업군인으로 고생한 보람이 아무것도 없다며. 그래. 그런 거겠지.
작년 이맘때를 기준으로 나는 13년 정도를 해군 장교로 복무했었고, 군인연금 수령을 위한 최소기준은 20년이었다. 정확히는 19년 6개월. 10개월여의 전직지원기간을 감안하면 대략 5년 6개월 정도만 버티면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나는 5년 가까이 우울증에 시름하면서도 부대에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고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았다. 성실하게 복무해왔기에 버티기로 마음먹자면 못할 것도 없었다. 부대에 암적으로 폐만 끼치는 문제 장병이라고 해도 본인 스스로 나가겠다고 하지 않는 한 현역 복무 부적합으로 내보내는 일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군인연금. 어찌 보면 그것은 지독한 꼬리표였다. 물론 연금을 받을 수 있다면 받고 싶었다. 나이와 관계없이 연금수령 조건만 충족되면 죽을 때까지 지급되는 군인연금은 대단한 혜택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뭐랄까. 나는 군대와 너무나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애써 그 사실을 무시한 채 '이미 시작한 길이니까, 그동안 해온 것이 아까우니까, 조금만 더 버텨보자, 이 나이에 나가서 내가 뭘 하겠어?' 그렇게 무작정 나를 다그쳐왔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지독한 번아웃과 우울증은 긴 시간 동안 나를 전혀 돌보지 않은 결과였다. 연금은 '쇠고랑'이었다. 연금에 목매는 한 나는 20년을 채워야 한다는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죽이는 길임에 분명했다.
결국 나는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전역을 결정했다. 빨리 독립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해군사관학교 입교를 결정했던 19살의 그 날처럼, 이번에도 꽤나 독단적으로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내렸다. 그렇게 작년 12월 31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역신고도 생략한 채 전역증만을 우편으로 받았다. 한편으로는 허탈한 마음도 들었지만 뭐 상관없었다. 과정이야 어쨌든 완벽한 민간인 신분이 된 것이다. '민간인' 생소한 단어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사람의 종류를 나누곤 했다. 군인과 민간인. 결코 같을 수 없는 두 존재의 그림자.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고, 이제 한 달 하고도 보름이 흘렀다. 하지만 내 삶은 작년과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 오전에 카페에 나와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으며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원래부터 나의 오랜 취미는 독서였다. 군에 입대하면서 책 보는 시간보다 잠이 더 귀했고, 나를 위한 시간이 사치처럼 여겨졌던 탓에 손에서 책을 놓아버렸지만, 그 녀석은 여전히 나의 30년 지기였다. 취미란에 독서와 축구를 써내면 선생님이 너는 특별한 취미가 없냐고 묻곤 했었다. 나는 줄곧 그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독서는 취미가 되면 안 되나요? 축구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게 없는 건가요?" 이렇게 되묻고 싶었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실행으로 옮기진 못했다.
눈보라는 완전히 멎었다. 같지만 다른 세상이다. 햇빛이 꽤나 밝고 따스하다. 눈은 어느덧 완전히 사라졌고 축축하게 젖은 보도블록만이 눈이 내렸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눈을 피해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글을 쓴다. 카페를 시끌벅적하게 채웠던 여중생들이 하나둘씩 카페를 떠나갔다. 눈이 그쳤으므로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목적한 곳을 향할 것이다. 카페는 잠시 쉬어가는 곳은 될 수 있어도 영원한 종착지일 수는 없었다.
인연이라는 게 참 그렇다. 인연은 인생을 '스쳐'지나간다. 스치는 인연들 속에서 어쩌면 함께 걸어갈 나그네 한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꽤나 오랜 시간을 함께 걷다 보니 마치 영원히 함께 할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시작점은 이미 달랐으며 끝도 결국 같아질 수 없다. 인생의 사라지지 않는 고독은 유한한 인간은 극복할 수 없는 인연의 거리감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