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주말, 하지만 다른 주말

이제는 말할 수 있지

by 작가 전우형

토요일 오후다. 카페에 앉아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모두 마스크를 썼지만 신기하게도 그들에게는 표정이 있다. 예전처럼 많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거리를 누빈다. 그들의 옆에는 친구, 연인, 가족, 반려동물, 혹은 스마트폰이 있다. 그들은 웃으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아무 말없이 걷기도 한다. 무표정한 걸음을 옮기는 사람도, 전화를 받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다. 평범한 주말의 일상.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주말을 보내고 있다.

'평범한 주말'. 그래서일까. 불금을 유독 사랑해서 나의 주말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던 한 사람이 문득 떠올랐다. 금요일 퇴근시간이 이미 한참 지난 시점에서 그는 선심 쓰듯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그래도 금요일 하루는 집에 일찍 들어가야지? 우리에겐 주말이 있잖아!" 참 좋은 말이다. 그래도 주말은 푹 쉬고 재충전하자는 말일까?


매일 저녁 "그래도 저녁은 먹고 해야지?" 하고 말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 같다. 후배들의 저녁식사를 챙겨주는 듯한 자상한 문장 속에는 구체적으로 저녁을 먹은 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빠져 있지만, 이미 수차례 같은 상황을 겪어온던 사람들에게 문장의 숨은 의미가 저절로 파악되는 것은 익숙하면서도 짜증 나는 일이었다. 저녁은 퇴근 후 집에서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어째서 저녁 먹자는 말을 사무실 책상에서 들어야 하는 것일까. 어느 나라 국방부에서 정해준 건지 모를 해괴한 지침은 주말에도 똑같이 이어질 모양이었다. 금요일 '하루'에 방점이 찍혀있던 그의 말속에는 주말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것에 대한 강한 기대감이 깔려있었다.


이제 그의 중간 결재와 확인만 받고 처리하면 끝나는 각종 서류들을 앞에 잔뜩 쌓아둔 채 나는 멍한 표정으로 칸막이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혼자 신나서 지껄이는 그의 목소리가 증오스러웠다. 왜 내 주말 일정을 자기 마음대로 정하는 걸까.


그 사무실에는 몇 가지 이상한 공식이 떠돌았다. 그 공식들은 모두 한 사람의 입에서 나와 사무실을 맴도는 구전설화 같은 것들로, 예를 들면 위에 언급했던 '그래도 저녁은 먹고 해야지', '우리에겐 주말이 있잖아' 외에 '오늘은 10시까지만 하자', '일요일 오후에는 들어와서 월요일 준비를 하자' '수정해서 내일 아침에 보자'와 같은 것들이 있었다. 사무실에 장교라고는 그와 나 달랑 두 사람뿐이었고, 모든 업무를 그를 통해야 했던 나는 그가 사무실에 존재하는 한 임의로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법은 어겨도 상급자 말은 따라야 했던' 비공식 룰에 따라 나의 의사, 개인적인 일정, 컨디션 등은 업무 종료 결정을 위한 고려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 해는 결국 내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해였다.




주말 출근이 공식화되어 있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주 5일제는 완벽하게 적용을 마친 뒤였다. 그래도 금요일은 쉬어야지. 우리에겐 주말이 있잖아. 그래. 그곳에는 분명 주말이 있었다. 다만 장소가 집이 아닌 사무실이라는 것이 독특했을 뿐. 나는 원하지도 않는 금요일 저녁을 얻는 대신 주말을 반납해야만 했다. 어차피 그가 나가버리면 혼자 끝낼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혼자 일을 진행해봐야 그가 틀어버리는 순간 휴짓조각이 될 게 뻔했다.


어쩌다 주말에 출근도장을 찍지 못하는 날은 반드시 특수한 사정이 있어야 했다. '특수한' 사정이라 함은 대개 '인륜지대사'에 포함될만한 중요한 것들로 누구나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합당하고도 거창한 것들이어야만 했다. 국방부 훈령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개인에게 부여된 연가일수를 보장하도록 되어 있지만 나는 휴가를 내는 것도 아닌 그저 주말을 쉬는 것조차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만 했다. 달력에 날짜 색까지 바꿔 표시해 둔 주말의 당연한 휴식을 보장받기 위해 어째서 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내가 그런 점에 의문을 가져도 변화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는 그런 것들이 '직장 내 갑질'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다.


한 번쯤은 일탈을 저질러보기도 했다. 그 '대단한' 일탈은 일요일 저녁에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었다. 웬일인지 아무 연락도 없었다. 찜찜한 기분으로 주말을 보내고 난 월요일 아침에는 어김없이 일장연설이 이어졌다. 그는 주말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해 나를 박살내기 위한 칼을 갈아둔 것 같았다. 월요일 아침부터 급하지도 않은 문건들까지 문장단위로 짚어가며 인민재판을 시작했다. 이래서 전날 미리 확인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월요일 아침부터 한 주를 버틸 에너지를 쏙 빼두곤 했다. 물론 그 '전날'이 어째서 금요일이 아니라 주말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특수한 사정이 있던 주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시로 '카톡으로 업무지시'가 날아왔고 '자료는 어디 있냐, 파일은 어떤 게 최종이냐, 암호는 뭐냐, 받기로 한 자료는 받았냐' 등등의 질문들에 일일이 대답하다 보면 이미 집에 있는 의미가 상실되곤 했다. 그는 분명 책상 위에 올려둔 메모와 자료들을 하나도 확인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는 제멋대로 듣는 귀는 있으되 글을 읽고 보는 눈은 없었고, 심지어는 타이핑할 손가락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포기하고 가족에게 양해를 구한 뒤 사무실로 들어가던 나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괜스레 액셀만 꾸욱 눌러 밟곤 했다. 어차피 휴식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딴 기억들 모두 털어버린 줄 알았는데 문득문득 떠오르는 날이 있다. 특히 과거와 심하게 대비되는 오늘 같은 날이면 그런 기억들은 더욱 도드라진다. 이토록 평범한 주말. 나는 무엇을 얻기 위해, 혹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버텼던 걸까.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사무실 한켠의 삭막한 자리를 지키며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일상을 포기했던 것일까.

완전히 같지만 분명히 다른 어느 주말의 저녁시간. 이제 그는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미친 듯이 날아오던 카톡 문자도 없고, 심지어 그가 보낸다 해도 나는 얼마든지 읽씹 할 수 있다. 원하지도 않는 불금에 강제 퇴근당하는 일도, 주말에 나를 불러낼 사람도 더 이상은 없다.


편히 쉬는 것에 서툰 나는 지금도 딱히 편하고 여유로운 일상을 살지는 못한다. 결국 살던 대로 살게 된다는 삶의 굴레 같은 문장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모양이다. 하지만 평일은 물론이거니와 토요일까지도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카페를 보면서도 마음은 편하고 소화도 잘된다.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보고 듣고 또 읽는다.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사람, 급한 마음에 도로를 냅다 가로지르는 사람,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학생들과 그 위로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본다. 같은 24시간이지만 다른 시간의 냄새가 난다. 매일 17시간에서 20시간을 일하고도 욕먹기 바빴던 그때와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진다. 산다는 건 어쩌면 원래 이토록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왜 그렇게 서로에게 얼굴을 붉혀야만 했을까? 이해하고 보듬어주며 살아갈 수는 없었던 걸까? 하긴, 이런 생각들도 어쩌면 어떤 모습에 대한 반작용으로 심어진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 어찌 사람 사이가 좋을 수만 있을까. 그리고 이미 수많은 사람들은 울고 웃으며 때로는 화내고 화해하며 잘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모든 것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시작한 탓에 경험이 부족했고, 바로잡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다시 돌아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 같다. 업무는 어떻게든 쫓아갔지만 관계는 서툴렀고 처음 경험한 직업군인이라는 사회는 나를 더욱 힘에 부치게 했을지도 모른다.


되돌아보면 나 역시 후배들에게 그리 많이 웃어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만약 후배들이 우연찮게 이 글을 본다면 '너나 잘하세요'라며 냉소를 지을지도. 완벽주의적 성향과 더불어 책임과 압박에 시달린 탓에 혼자 살아남는 일도 벅찼던 적이 많았고, 최소한으로 챙겨야만 하는 일들을 챙기는데도 칭찬보다는 지적할 일들이 많았다. 대단찮은 실수는 웃어넘기더라도 종종 얼굴 붉힐 일들이 있었을 정도로. 나 역시 내가 비난하고 욕했던 누군가와 크게 다르지 못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음... 어쩌다 이토록 감상적이 되었을까? 그래. 오늘 손님이 영 없었구나. 또 다른 의미의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사는 건 참 어렵다. 이제 뒷정리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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