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줄기줄기 내리는 봄비의 음색은 방울방울 귓가를 두드리던 겨울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만개한 봄과 안개꽃에 물든 호숫가. 빗 속에 스민 은은한 온기. 그 약간의 따뜻함에 힘입어 겨울 사이로 작은 들꽃이 얼굴을 내민다. 봄비의 촉촉한 손길은 대지 위에 선 모든 존재들에 봄바람을 전한다.
삼일절의 공백과 함께 시작된 3월의 공기. 추모도, 기억도 사라진 채 텅 비어버린 삼일절. 홀로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는다. 선조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102년 전의 봄비도 오늘과 다르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들은 봄비의 포근함을 느낄 새가 없었을 것이다. 커다란 도전을 앞둔 그날의 시민들은 도망치려는 용기를 단단한 결의로 움켜잡았을 것이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피 섞인 눈물과 땀방울들로 그들의 온몸은 축축하게 젖어들었을 것이다.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마음을 구름에 그려본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슬픔과 기쁨을 구분하기 힘든 눈물이 흐른다. 흐린 하늘과 해를 가린 구름. 그래도 하늘은 눈부셨고 그늘 아래 숨어서도 맑은 하늘을 기다렸다. 그들이 심은 희망 속에 평범한 하루를 살 수 있음에 감사하며. 비가 고통스러운 기억과 더불어 세상의 먼지를 찬연히 씻어내 주기를. 시름으로 굳어진 기억의 찌꺼기가 사르르 녹아내릴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문을 열어보려고 하지 않았기에. 한 번만 살짝 힘주어 밀어보면 되는데, 나를 반겨주기를 기대했고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문 앞에 서서 정처 없이 생각과 불안의 구름 속을 헤맸다.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으면 어쩌지? 체면과 자존심이 구겨질까 두려워 다가가기를 꺼렸다. 손만 뻗으면 되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면 되는데. 그 사소한 말을 내뱉지 못했다.
버스는 계속해서 정류장을 지나친다. 아무도 벨을 누르지 않는다. 사방이 철판으로 막힌 버스 안에는 다음 정류장을 알려주는 안내방송만이 메아리친다. 누구도 방송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곳이 어디쯤인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한 사람이 하차벨을 누른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꽤나 오래 앉아있었던 것처럼 시트에는 사람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다. 갑자기 사람들이 그를 따라 우르르 일어선다. 버스는 다음 정류장에 섰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항의하는 사람이 없다. 말없이 기다리기만 한다.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 눈치만 살필 뿐 한일자를 그린 입은 여전히 굳어있다. 마치 한마디라도 말을 하면 버스가 폭발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바깥에서 다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한 사람이 가쁜 숨을 내쉬며 다급히 버스 문을 두드린다. 문이 열리고 가쁜 숨을 내쉬며 한 사람이 탄다. 우연히 뒷문이 함께 열린다. 기다렸다는 듯 버스에서 내린다. 이윽고 사람들은 반대편으로 건너가 다시 버스를 기다린다. 목적지도 없이 그저 다음 버스에 오른다. 우연에 맡긴 채 살아왔다. 목적지를 정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버스가 오면 버스를 타고, 문이 열리면 내렸다. 선택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비가 그친다. 우산을 털어 접는다. 다시 비가 내린다. 비를 피하려 우산을 쓴다. 내리는 비에 신발이 젖는다. 신발을 벗어 든다. 양말은 벗어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차라리 맨발이 좋다. 가끔 발바닥이 따끔거리지만 까치발을 들고 곳곳에 생긴 웅덩이를 피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처럼 찰박거려본다. 바지 끝단에 물이 튄다. 바짓단을 무릎까지 걷어올린다. 더 신나게 물장구를 친다.
걸음을 옮긴다. 정처 없이 걷는다. 걷고 싶지 않을 때까지 걷는다.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을 본다. 그들도 나를 본다. 눈빛이 마주친다. 얼굴이 붉어진다. 눈을 돌린다. 우두커니 앞만 보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눈빛에는 무심함이 묻어난다. 사랑도, 분노도, 관심도, 호기심도, 적대감도, 시기심도 없다. 그들과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지구 위에 산다는 것을 제외하면 공통점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보고, 그들은 나를 본다. 보고 싶지 않아도 우리는 끊임없이 마주친다.
축복일까, 저주일까? 혼자가 아니라는 건. 함께라는 건. 사람은 골칫덩이다. 어렵고 고민만 더해준다. 반가운 말보다 기분 상하는 말이 더 많다. 내리는 비에 축축하게 젖은 신발처럼 무겁고 거추장스럽다. 우산을 쓰면 슬며시 들어와 비를 피하고는 말도 없이 사라진다. 덤으로 새 신발에 흙탕물을 튀고 지나간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기어코 다가오더니, 붙잡고 매달려도 냉정하게 뿌리친다. 갑자기 끼어들더니 어느새 사라지고 없는 폭주족처럼.
그래서 자꾸만 마음 곳곳에 먼지가 쌓인다. 닦아내고 치워도 먼지가 자꾸만 쌓인다. 먼지를 만드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먼지가 낀다. 창문은 흐릿해지고 밖은 보이지 않는다. 안쪽을 아무리 닦아도 바깥은 지저분하기만 하다. 나가기 싫은데 자꾸 부른다. 손을 흔들고 문을 두드린다. 결국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바깥을 향한다.
소원이 이루어진 걸까?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다. 기뻐야 하는데 외로움이 앞선다. 보기 싫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유가 사라진 쓸쓸함이 어깨를 짓누른다. 꺼버린 전화를 켠다. 통화버튼을 누른다. 카톡을 보낸다. 받지 않는다. 읽지 않는다. 야속한 숫자는 사라질 줄을 모른다. 기다린다. 또 기다린다. 버스가 우연히 멈춰 서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우연히 이 곳을 지나칠 누군가를 기다린다. 정처 없이.
사람들은 더 이상 이 거리를 찾지 않는다. 개 한 마리 때문이다. 개는 사람이 보이면 시끄럽게 짖어댔고, 화가 나면 물기까지 했다.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사나운 울음을 내뱉었다. 한산한 거리만큼이나 인기척은 사라졌다. 개를 풀어둔 사람이 누군지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 개는 나를 향해서도 짖어댔지만 굳이 그 녀석을 멀리 쫓아내거나 하지 않았다. 사납게 짖어대고 으르렁거리는 꼴이 낯설지가 않았다.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비 내리는 날도, 말간 해가 솟은 날도, 구름으로 잔뜩 채색된 날도 나는 어김없이 하늘을 본다. 있지도 않은 하늘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구름은 웃더니 해는 울음을 터트린다. 비의 흐느낌이 사방을 채운다. 하늘을 보던 내 눈에도 빗물이 떨어진다. 볼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을 느낀다. 분명 나는 울지 않았지만 볼을 따라 흐르는 그것이 빗방울인지 눈물방울인지는 점점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눈을 깜빡거리면서도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눈을 돌리면 그 모든 표정들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말을 걸어본다. "너는 내게서 뭐가 보이니?" "모르겠어. 넌 아무 표정도 없으니까. 하지만 조금 슬퍼 보여" "아니, 난 결코 슬프지 않아. 난 지금이 좋아. 행복해. 진심으로"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지만 행복한데 어째서 웃질 않아?" "난 웃고 싶지 않은 것뿐이야. 웃으면 헤퍼 보이니까. 가벼워 보이니까" "..." 그 목소리는 더 이상 아무런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다. 할 말이 없는 걸까, 아니면 말해도 소용없다고 느낀 걸까?
들을 마음조차 없는 이에게 말을 걸 이유 따윈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누구나 자신의 노력에 대한 최소한의 의미는 갖고 싶어 하니까. 의미 없는 짓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 그렇다면 무시하지 말았어야지. 받은 대로 돌려주는 건 당연한 행동일지도. 치사하게 느끼든 그렇지 않든. 최소한의 복수 정도는 하고 싶을 테니까. 그의 실패를 몰래 고소해하는 식으로라도.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의미 없이 스크롤만 오르내린다. 보고 싶은 것도 없는데 팝업, 추천, 알림 따위를 클릭하며 시간을 태운다. 마른 장작 타듯 시간은 잘도 탄다.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시간을 태운다. 사그라드는 수명을 보며 메마른 웃음을 짓는다. 위아래로 춤추는 화면을 본다. 어지럽고 목이 탄다. 하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눈을 떼지 못한다. 적잖이 중독이다. 공백을 견디지 못한다. 그렇게라도 관심을 돌려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는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문을 두드릴 것 같다. 화면에 새겨진 매력적인 문구들이 공허함을 채워주는 것 같다. 얕은 웃음과 즐거움이 행복을 채워줄 것 같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가라앉고 있는 나를 건지려 하지 않는다.
무엇을 피하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의심하고 으르렁거렸을까? 두려움 속에서 용감한 척 연기하며 모두를 속여왔을까? 잘난척하고 무시해왔을까? 들키지 않으려 애를 썼던 걸까? 나약함, 소심함, 현실에의 안주, 새로운 것들로부터의 도피.
마법 거울 앞에 선다.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내면의 모습을 본다. 진짜 모습은 벌거숭이였음을 나만 몰랐다. 헐벗은 내면을 방치한 채 화려한 옷으로 치장해도 흔들리는 눈빛은 덮어두지 못한다. 새어 나오는 불안과 외로움을 막아 세우지 못한다. 슬픈 얼굴로 괜찮은 척하는 어린아이. 슬퍼 보인다 말하면 아니라고 울며 소리치는 어린아이. 외로움에 빠져 살면서도 어째서 외로운지 알지 못했다. 사실은 알고 싶어 하지 않아서 외면했던 거야. 반성 따위 절대로 하지 않아야 했으니까. 난 당당해야 하니까. 고개 숙여선 안되니까. 사과는 안돼. 스스로 나약함을 인정해서도 안돼. 이유를 만들어야 해. 그것도 매우 그럴듯하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법한.
"흥. 다가오지 않을 거면 말라지. 난 그깟 친구 따위 필요 없어.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어. 남한테 의지하는 건 나약한 사람이나 하는 거야. 난 필요 없어. 정말이야." 핏대를 잔뜩 세우고 소리친다. 세상을 향해 선언이라도 하려는 듯이. "좋겠다. 너는 혼자로도 충분해서. 난 외롭기만 하던데. 그래도 고마워. 이렇게 나와 이야기해줘서. 잠깐이라도 함께 해줘서." "넌 너무 불쌍해 보여서 특별히 같이 있어주는 거야. 그렇다고 함부로 기댈 생각 마. 이번 한 번 뿐이니까. 응석꾸러기는 사양이야." "알았어. 쌀쌀맞긴. 그래도 고마워. 내겐 너 밖에 없어." 잠깐의 투닥거림 속에도 존재하는 설렘. 기쁨을 함부로 내비치지 못하는 두려움. 들키면 날 좋아하지 않을 거야. 속으로 하는 말이 들린 걸까? "아냐. 그렇지 않아. 네게서 나는 냄새가 참 좋아. 네게선 사람 냄새가 나. 투덜거리며 거친 척 해도 난 알 수 있어."
가끔 문을 훌쩍 넘어오는 이가 있다. 문을 두드려도 나는 결코 열어주지 않을 테지만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주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문을 걸어 잠그지 않길. 조금은 덜 무서워하길. 상처에서 꽃이 피어나길. "그리고 고마워. 이렇게 살아있어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