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2편)

제2편 상식, 이상함, 질문, 고민

by 작가 전우형

* '모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 1편'에서 이어집니다.

* 경고, 웃다가 죽을 수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상식'을 안다.


나는 모른다. 나는 주식도 부동산도 금융도 잘 모른다. 모르기에 두려워하고, 모르기에 이런 종류의 것들을 '불로소득'이라 치부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상식'이다.


부동산의 속성은 '변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변하는' 것이다. 땅과 건물은 고정되어 있다. 다만 그것의 가치만 변화될 뿐이다. 하지만 변화된 가치가 실물의 실제 가치와 심각할 만큼 괴리감을 발생시킨다면, 그 비틀림에는 분명 인위적인 무언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 원인을 '돈으로 돈을 버는 방식''투기 문화'본다. 그리고 돈으로 돈을 버는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주식 또한 부동산과 전혀 다르지 않다.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등락은 결국 투기의 결과물이다. 부동산이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이 너도 나도 부동산에 자금을 쏟아붓기 시작했고, 땅값이 오를 것 같은 지역은 웃돈을 주면서도 구입했다. 더 비싸게 사더라도 그것보다 더 비싸게 팔면 이익이 남을 테니까.


'정당한 노력의 대가'의 기준이 서로 다르더라도, 노동의 가치가 그저 세워진 건물의 가치에 비해 과도할 정도로 평가절하된 현실이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너진 균형의 부작용과 쏠림이 코로나 시대를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 현상은 최근 주식시장으로의 자본유입 현상을 통해서도 유추해볼 수 있다.


요즘 주식으로 큰돈 벌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그 반작용으로 그런 흐름에 편승하지 못한 이들의 'FOMO 증후군(Fear of Missing out syndrome)' 또한 심각해지는 모양새다.

* FOMO 증후군 : 다른 사람들이 모두 취한 것을 나만 놓친 것 같은 기분이나 홀로 뒤처진 느낌을 받는 상태. 이런 것들로 인해 불안, 근심, 배아픔, 속 쓰림, 조급함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상태(출처 : 내 맘대로 백과사전)


아이작 뉴튼 경 역시 영국에서 벌어졌던 희대의 증권사기에 휘말렸다는 것을 보면, 사람인 이상 '나만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섞인 불안과 조급증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율의 결과는 원금에 비례하므로, 주식은 자본금이 충분한 이들에게 더 큰 부를 가져다줄 수 있는 훌륭한 증식 수단일 것이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팬데믹 와중에도 한국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관리했고, 전통적으로도 경쟁력이 상당했던 한국의 IT산업이 K-방역과 연계되면서 코스피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부풀어 오르는 주식 버블에 편승해 치고 빠지는 데 능한 이들은 노동다운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고,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보며 평범한 직장인들을 비롯해 삶의 막막함 앞에 선 이들의 머릿속에 몇 가지 생각이 스치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왠지 나만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 나도 저렇게 돈을 벌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나는 왜 주식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해. 다들 저렇게 뛰어드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


하지만 쉽고 빠른 데다 풍족한 결과까지 보장한다는 말은 대개 사기꾼의 고전적인 수법이며, 만병통치약만큼이나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결국 FOMO 증후군에서 비롯된 미련과 후회, 조급증에 휘둘려 뒤늦게 주식에 뛰어들었다가는 주저앉는 거품처럼 디지털화된 화폐의 가치가 급락하는 모습에 가슴을 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더불어 그것을 통해 부를 축적한다고 해도 이러한 흐름은 결국 시민들 스스로 노동의 가치를 비웃고 부동산과 주식에 더욱 의존하는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이상함을 느낀다.


땅과 건물의 입지조건이 다른 땅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같은 크기의 아파트 값이 수 배에서 십 수배까지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분명 '비상식적'이고, 나같이 무지한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치다.


단순 계산으로 매달 300만 원씩 버는 직장인이 10년 동안 아끼고 또 아껴 소득의 절반을 저축한다고 해도 10년 동안 1억 8천만 원을 모을 수 있다.(실질적으로는 이마저도 현실에서 동떨어진 수치다. 좋게 봐도 10년 동안 1억 모으기도 어렵다.) 그런 세일즈맨이 10억을 모으려면 적게 잡아도 80년 이상이 요구된다.


요즘 석박사는 기본이요, 포닥(포스트닥터, 후기 박사과정)까지 요구하는 세상이라고 하니, 대학과 대학원을 나와 특별한 문제없이 취업에 성공한 직장인이 서른 즈음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그동안 공부하느라 쌓인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수년을 허비하고 나면, 그 이후 뼈가 빠지게 벌더라도 100세 이하로는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한 수치가 집값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것을 정리하면, 매월 300만 원 이상의 월급을 받는 평범한 직장인이 회사에서 퇴직당하지 않고 성실한 생활태도로 헛된 곳에 돈을 쓰지 않으며 최소한의 생활비만으로 버티면서 돈을 모았을 때, 늙어 죽기 직전에야 자식에게 서울에 있는 20평대 작은 집 한 채쯤 물려줄 수 있는 구조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뭔가 뒤틀려 있다. 그렇다 보니 모두 을 진다. 집을 살 돈을 도저히 모을 수 없기 때문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하고 평생 동안 대출금을 갚으며, 지신(地神)에게 집값을 올려달라고 굿을 한다. 이미 일본에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하우스푸어들이 도쿄 시내 한복판에 즐비하다. 그들 역시 집 하나만을 바라보고 평생을 벌어왔지만 정작 부풀었던 집값이 폭락하며 물가만 비싼 도시를 벗어나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유동자산이라고는 없는 그들에게는 등짐에 싸매고 가지도 못하는 부동산만 남았다. 우리나라도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대체 '정당한 노력의 대가'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은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모르기 때문에 질문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거치며 자영업을 비롯해 관광, 항공, 요식업 등 대부분의 산업이 몰락한 것과 대조적으로 바이오, 제약,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은 '코로나 특수'라 불릴 정도로 오히려 더 큰 호황을 누렸다. 이런 산업들은 대규모 단지와 특수 가공시설, 값비싼 연구시설 등을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거대 자본금이 없으면 시작할 엄두도 낼 수 없는 산업들이다. 자연스럽게 이들의 호황은 일부 대기업으로 돈의 흐름을 더욱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자와 일반인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 느낌이다. 마치 생업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현재의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다. 결국 '그들만의 리그'에서 불거진 성과급 문제는 많은 이들에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고, '식어버린 감자'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 저변에 존재하는 이러한 인식 차이가 '임금체불'도 아닌 '성과급 산정방식'을 문제 삼는 이들의 불평불만을 통해 드러났고, 이미 코로나 블루로 봄이 오지 않는 겨울을 보내고 있던 이들의 마음에 더 극심한 추위를 불러일으켰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해결할 방법은 있는 걸까? 정부는 폭주하는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공급폭탄'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 폭탄은 과연 투기의 불길을 꺼트릴 수 있을까? 오히려 더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은 아닐까? 모르기 때문에 궁금하고, 모르기 때문에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나는 이런 것들이 사회에 대해 가져야 할 당연한 관심이라고 본다.


무시하고 헐뜯는 사회의 이면에는 이처럼 부의 증식 수단을 공감하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이 존재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실행할 수 없는 방식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은 누릴 수 없는 부를 누리고, 평범한 삶에 필요한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비상식적인 부를 쌓은 사람들. 그들과의 심각한 부의 격차가 평범한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하고, 워라벨을 추구하며 평범한 삶을 지향하는 이들을 노력도 않고 도전정신도 없는 회색빛 인생처럼 자조하게 한다.


'비상식적'으로 흐르는 부의 집중이 부에 대한 인식을 비틀고, 그러한 비틀린 인식이 우리나라만의 부자에 대한 '편견'을 생산해낸다. 파이오니어 정신으로 개척한 자수성가 부자를 존중하고, 그들 역시 사회의 주류로 존경받기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여타의 나라들과는 다른 인식을 만들어낸다. 부자를 '부를 착취한 악의 집단'으로 규정하거나, 부자의 모습을 노블레스 오블리주 따위는 개나 줘버린 '졸부' 취급하는 시선이 사회 전반에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낸다.




모르기 때문에 고민한다.


문제는 돈에 대한 인식이다. 돈 놓고 돈 먹기를 하는 것도 좋고, 많은 돈을 좋아하는 것도 좋다. 나 역시 돈을 싫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돈이 많은 것이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가의 문제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과 그 영향력이 노동과 동떨어진 영역에 비정상적으로 몰려있는 상황이 적절한가의 문제는 단순히 호불호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과하면 독이 되는 것은 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돈은 공통된 교환 수단으로써 사회의 필수적 요소가 되었다. 당연하게도 돈의 본래 목적은 부의 증식이 아니었다. 목적을 상실한 수단이 악용되거나 오용되어 오히려 피해를 주는 사례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부동산과 주식, 그리고 이 글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금융이나 고리대금업과 같은 것들은 돈의 잘못된 사용, 곧 투기의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지점이다. 나는 '돈' 역시 '약'과 같이 조심스럽게 취급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교육을 통한 인식전환이 반드시 필요한 문제라고 본다.


비싸고 좋은 것에 익숙해질수록 사소한 것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린다. 버튼만 누르면 전기가 들어오고, 수도꼭지만 돌리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훌륭한 생활여건이나,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 전쟁 속에서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사회적 테두리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에 감사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삶에 어느 정도의 결핍과 절실함은 필요하며, 과도한 만족은 행복이라기보다 불행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해결이 가능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민은 한다. '결국 투자의 끝은 부동산'이라 말하는 것이 정말로 좋은 세상일까? 너도 나도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정말로 올바른 현상일까? 나는 이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가졌지만, 다른 이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다. 그 바탕에는 분명 내가 모르는 것이 여전히 많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모르는 것이 있기에 내 생각만이 옳지 않고, 다른 이의 생각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존중이 대화의 물꼬를 트고 세상과 나의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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