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적 상담에서 취하고 있는 결정론적 인간관(5세 이전의 경험에 의해 성격적 특성은 이미 결정된다는 관점), 인간을 부정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입장(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이고 휩쓸리기 쉬운 존재)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이러한 정신분석적 상담의 성격구조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많은 정보를 제공해줍니다. 본능의 영역이며, 쾌락의 원리(고통을 줄이고자 하는 방향으로의 무의식적인 행동과 태도)로 움직이는 ‘원초아(id), 사회적 자아 혹은 관계 속에서의 자아,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이 적용되는 자아인 ‘초자아(superego)’, 그리고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에서 중재와 조정, 통제 역할을 하는 ‘자아(ego)’. 이 3가지 성격의 구성요소는 인간의 내면에서 발생하는 갈등 양상 이해를 위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줍니다.
정신분석적 상담 이론의 성격 구조에서 ‘원초아’는 우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의 생각과 감정,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쾌락의 원리는 우리가 수긍하고 싶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휩쓸리고 마는 영역일 것입니다. 고통을 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 즐거움을 추구하고, 고통스러운 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지 미움받거나 눌러야만 하는 영역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원초아에 충실한 삶이 때때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사회에 적응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경험을 통해 초자아의 영역을 서서히 구축하게 됩니다. 타인과 조화를 이루고 사회규범과 문화, 도덕과 양심을 배우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났지만 활성화하지 못하고 눌러져 있던 중요한 가치를 일깨우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으로서 성숙해질수록 ‘초자아’는 점점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하지만 ‘초자아’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것은 결코 간단하고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초자아’의 영역은 ‘원초아’의 영역과 서로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추구하는 바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예로 배가 고플 때 식당에 빵이 하나 있다면 원초아는 당장 그 빵을 먹으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초자아는 그 빵은 네 것이 아니니 먹지 말고 주인에게 허락을 득하라고 할 것입니다. 혹은 그 빵이 자신의 것이더라도 다른 굶주린 이가 있으면 나눠 먹으라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선택의 순간에서 원초아와 초자아는 부딪히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자아가 등장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만약 배가 아사직전이라면 자아로서도 일단 먹고 보자며 원초아의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출출한 수준이라면 일단 조금 참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게 되겠지요. 그리고 드문 경우지만 초자아의 힘이 굉장히 강할 경우 당장 굶어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내다가 쓰러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도덕적으로 훌륭한 성인군자라 하더라도 생명은 하나뿐이라는 것이겠지요.
프로이트가 말하는 성격의 3요소간의 상호작용이 이처럼 간단한 양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정신분석에서 문제행동의 원인으로 세 자아 간의 갈등과 부조화를 지적하는 것 외에도 자아의 중재 과정에서 다양한 방어기제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내면의 문제가 결코 간단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각각의 자아의 상호작용에서 빚어지는 신경증적(원초아-자아 간의 갈등), 도덕적 불안(원초아-초자아 간의 갈등)도 심리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원인일 것입니다.
이제는 적용해 볼 시간입니다. 위와 같은 정신분석적 상담의 성격구조와 이론적 배경에 따라 저의 성격구조를 분석해보면 저는 도덕 불안이 큰 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초자아가 지나치게 강해 죄책감을 많이 느끼고 완벽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인간다움에 대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스스로에게 적용하기도 했지만 더 깊은 문제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낮은 탓도 있었습니다. 초자아의 역할이 강한데 비해 타인의 시선이 사라졌을 때 비치는 순수한 저의 모습은 오히려 원초아에 많이 휩쓸리는 나약하고 타인에게 들키면 안 될 수준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의 자아는 도덕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를 만성적으로 사용했습니다. 가면을 쓰고 타인을 속이는 시간이 길어지는 과정에서 초자아와 배치되는 원초아적 욕구와 충동 등을 무의식적으로 누르는 일이 많았습니다. 자아와 원초아 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신경증적 불안도 심해졌습니다. 눈치를 많이 보고 타인을 의식하다 보니 노여움을 많이 타고 타인이 나를 못마땅하게 보는 것을 못 견뎌했습니다.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늘 피곤했고 녹초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업무시간은 점점 더 길어졌고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졌고 사소한 일들에 날카로워지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신경증적 불안이 더욱 심해졌던 것이지요. 이러한 문제들이 오랜 시간 방치되던 찰나에 호되고 독한 비난을 밥 먹듯 일삼는 상사를 만났고 그 결과 저는 직장생활 8년 차에 심각한 번아웃과 우울증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경험과 회복의 과정은 제가 ‘상담’이라는 학문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상기 내용은 우울증 극복 과정에서 수행했던 수많은 ‘자기 분석’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자기 분석 과정은 단지 정신분석적 상담뿐 아니라 인간 중심적 상담 이론에도 적용이 가능합니다. 인간 중심적 상담에서는 문제행동의 원인으로 ‘자기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이상적으로, 혹은 당위적으로 여기는 ‘자기상’에 도달하고 싶은 욕구와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발견하고 마는 자신의 실제 모습이 차이가 클수록 인간 중심적 상담에서 심리적 문제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하는 '현상적 장에서의 유기체적 불안'이 커지게 됩니다. 이것은 정신분석적 상담에서 말하는 '원초아와 자아 간의 갈등이 만들어내는 신경증적 불안'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물론, 학문적 구분에서 두 가지 이론은 엄연히 구분되겠지만 말이죠.
우리는 스스로를 이해할 때 어떤 틀로서 제약을 두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의 이론에만 치우치게 되면 중요한 정보를 놓치거나 무시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정보의 홍수 시대에서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 서면 오히려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다양한 관점에서 자신을 비롯한 타인, 관계, 사회, 그리고 이 세상을 살펴보는 것은 정보의 질을 오히려 높여줍니다. 위에서 보면 원이지만 옆에서 보면 사각형으로 보이는 원기둥처럼 말이죠. 다각도로 세상을 살피는 능력은 근시안에서 벗어남으로써 길러집니다. 여러분도 각자의 생각의 틀을 갖고 계실 겁니다. 가끔은 익숙한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이론적 배경이나 틀로서 상황을 지켜본다면 삶에 대한 또 다른 통찰을 얻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