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할 때와 글을 쓰고 싶을 때
빈 도화지 위에 깜빡거리는 프롬프트를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넉넉해진다. 아직 시작하지 않았기에 손끝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한 편으로는 막막하지만 길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므로 어느 방향으로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무언가를 시작하고 나면 그것에 구속되어 이어나가야 한다는 압박에 시름한다. 이어나가는 것은 그동안의 노력을 허무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므로.
나도 모르는 사이 하나의 씨앗이 빈 도화지 위에 뿌려졌다. 씨앗은 자신의 처지를 알지 못한다. 어쩌다 바닥에 버려진 것인지 농부가 싹을 틔우기 위해 대지 위에 곱게 놓아준 것인지. 다만 씨앗은 자신의 운명에 순응한 채 묵묵히 생각의 줄기를 뻗어나간다. 새로운 가능성을 우연히 만났을 때 더 아름답게 키워보고픈 마음이 샘솟는다. 가끔 어떤 글은 그렇게 아무런 계획 없이 시작되기도 한다.
쓰다 만 글을 펼쳐볼 때가 있다. 분량은 채웠지만 미뤄두고 숨겨두었던 글들. 그런 글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글쓴이조차도 읽기 어렵고, 그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스스로에게도 전달되지 못한다. 과거 그 시점에도, 시간의 장벽을 넘어 현재에 다다른 시점에도. 때로 그런 글은 무모한 약속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으려고 가까스로 짜낸 글인 경우도 있었다. 좋은 글을 인용하고도 정작 꺼내고 싶은 메시지는 담지 못한 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서랍 속에 잠든 글을 꺼내어본다. '미련' 때문이다. 죽어서 묻힌 그를 여전히 잊지 못하고 연복을 벗지 못하는. 웃고 있는 사진을 부여잡고 눈물 흘리는. 하지만 이미 죽은 이가 돌아오지 않듯 사장된 글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는 없다. 다만 부질없는 행위가 내게 주는 의미는 그저 어떻게든 쓰고자 몸부림쳤던 내 지난날의 노력에 대한 연민과 위로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언제나 새로운 시작은 빈 도화지. 그리고 깜빡거리는 프롬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