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의 문 앞에 설 용기

노력과 정성은 성공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by 작가 전우형

불확실한 미래는 낙관과 비관 중 어떤 것도 선택하기 어렵게 한다.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보기 쉽다. 비관적 상황에 대한 예측은 불안을 자극하고, 자극된 불안은 그것을 완화시키기 위한 행동을 촉진하는 동기로 작용한다. 하지만 애초에 미래의 불확실성은 해결된 것이 없기에 비관적 예측에서 기인한 불안 또한 해결할 방법이 없다. 결국 가만히 있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무엇을 할지도 모르기에 발만 동동거리며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낙관적 예측에 도사린 위험은 그 예측이 빗나갔을 때 느낄 실망과 좌절이다. 이것은 뼈아픈 경험으로써 누구나 피하고 싶은 감정이다. 만약 스스로에게조차 숨길 수 없을 만큼 진심과 전력을 기울였다면 실패로 인한 실망과 좌절의 크기 또한 그에 비례해 커질 것이다. 이러한 실망과 좌절에 대한 두려움은 비관적 예측의 땔감으로 작용한다. 실패의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에 둠으로써 실패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몰아칠 부정적 감정의 쓰나미를 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를 염두에 둘수록 그 일에 전력을 기울이기 어렵게 된다.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이러한 불확실한 미래의 문 앞에서 불행보다는 나머지 반쪽을 염두에 두라는 주문이다. 낙관적 예측은 그것을 실현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도록 도움으로써 5:5였던 성공과 실패의 비율을 6:4 혹은 7:3으로 변화시켜준다.


그렇다면 비관과 낙관 중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준비 단계에서 낙관적 태도는 유리한 점이 많다.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장 눈앞에 닥칠 위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낙관적 태도가 중요한 것을 놓치는 원인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그것은 편견이다. 충분히 검토하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것과 미래의 결과를 실현 가능한 것으로 바라보는 것은 서로 결이 다른 문제다. 오히려 비관적 결과에 무게를 실었을 때 불안에 소모되는 에너지로 인해 충분하고 치밀한 준비와 노력에 사용할 에너지를 빼앗겨 중요한 것을 놓칠 가능성이 더 커진다. 다만 낙관적 태도 하에서 실패를 '절대' 일어나지 않을 최악의 사건으로 여기는 왜곡된 사고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노력과 준비의 질과 양은 결과를 성공으로 이끄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성공에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미래의 불확실성이다. 이 불확실성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는 손댈 수 없는 영역인 동시에 인간의 노력을 촉진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한번 생각해보라. 미래의 성공과 실패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거나 이미 알고 있다면 어느 누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거나 어렵고 힘든 순간을 이겨내려 하겠는가. 어차피 미래는 정해져 있을 뿐인데.


그러므로 우리는 낙관적 태도를 견지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열린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미래의 결과가 온전히 나의 노력과 정성에 귀속되지 않는다면 실패로 인한 실망과 좌절 또한 충분히 견딜만한 것이 될 것이다. 비관적 결과에 예속될 나의 책임을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일부 유보시켜둔다면 비관과 낙관의 관문 앞에서 조금 더 용기 있게 낙관의 문을 두드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을 두드린다고 해서 반드시 그 문이 열릴 것을 기대하지는 말자. 안타깝게도 그 문의 안쪽에는 누구도 기다리지 않을 수 있으니.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낙관의 문 앞에 서야만 한다. 낙관의 문을 두드리지조차 않으면 문이 열릴 확률은 0%이므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빈 도화지 그리고 깜빡거리는 프롬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