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침의 짧은 생각

by 작가 전우형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상 중 일부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잊힌 기억은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다가 어떤 촉매를 계기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하지만 사라진 기억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기억상실을 공감한다는 것은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다. 벽에 걸린 사진 속에 자신과 닮은 사람이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을 자신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상실을 이해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세상 속에서 어떤 존재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경험하게 될 사건들과 그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감정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한 행동을 자신이 전혀 기억하지 못할 때 사람은 가장 큰 혼란을 느낀다. 그 혼란은 이제 막 식사를 마쳤는데 누군가와의 중요한 식사를 어쩔 수 없이 다시 시작해야 할 때와 같다. 더 이상 들어갈 곳 없는 머릿속으로 새로운 무언가가 계속해서 밀려들어오는 기분. 이삿짐이 정리되지 않은 집의 한쪽 구석에 간신히 누울 자리를 마련하는 기분.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무언가가 심신을 짓누르는 기분. 내 삶을 내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기분. 그런 감정들이다.


기억이 망가질수록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실제 세상의 괴리는 점점 더 커진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수용할수록 우리가 기억하는 세상은 점점 더 현실과 가까워진다. 그 현실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 된다. 그런 상황과 기억, 세상이 교차되어 우리는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기억이 사라진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종종 유리알처럼 부서진다. 기억이 사라진 사람은 타인의 세상과의 교차점이 부족하다. 작은 차이로 인한 타인의 시선이 그들을 방어적으로 만든다. 나의 기억이 완전치 못하다는 걸 세상으로부터 확인받을수록 균열은 점점 더 커져간다. 이미 금이 간 유리는 작은 충격만으로도 너무나 쉽게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깨어진 것은 창문이지만 그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던 사람에게는 세상이 무너진 것과 같다. 그 충격을 어떤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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