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딱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딱지를 떼어내지 않아야 한다

by 작가 전우형

딱지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새살이 돋아나는 동안 상처부위를 보호해 줄 임시 방어막이 필요하고, 딱지는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딱지는 보호에 치중한 탓에 본래의 피부만큼 유연성을 갖추지 못한다. 인접한 피부와 유착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 피부들을 잡아당겨 간지러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손가락, 무릎, 팔꿈치 같은 관절 부위에 생긴 딱지는 사소한 움직임에도 벌어지고 갈라져 오히려 고통을 더하기도 한다. 상처가 덧나지 않고 회복을 돕기 위해선 딱지를 건드리지 않아야 하지만, 거추장스럽고 신경이 쓰이는 탓에 무의식적으로 긁거나, 또 긁다 보면 떨어져 버리기도 한다. 겨우 회복되어가던 상처가 다시 찢어져 피가 나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경이로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음에도 마찬가지로 상처가 생기고 딱지가 앉는다. 마음의 상처는 생생하고 오래가는 기억과 한쌍이 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도 딱지가 앉는데, 딱지의 존재 유무는 기존의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딱딱해진 생각들로 드러난다. 이들은 이름이 다양하고 종류도 많아서 '고정관념'이라 불리기도 하고 비합리적 신념, 아집, 고집, 때로는 트라우마로 불리기도 한다. 인생에서 대면하는 수많은 선택과 문제의 답을 한쪽 방향으로 쏠리게 하는 마음의 딱지들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또 다른 고통을 회피하는 과정에서 학습되기도 하지만 충격적인 일의 반작용으로 몸과 마음에 각인되기도 하는데, '트라우마'가 바로 그런 경우 중 하나다.




즐거운 마음으로 유럽여행을 떠난 A는 공항에서 택시를 기다리다가 소매치기를 당해 지갑과 여권을 비롯한 중요 물건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여행의 시작단계부터 A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놓였고, 결국 소매치기당한 물품을 되찾지 못한 A는 힘겹게 영사관을 찾아가 뒤처리를 해야 했으며, 한국으로부터 여행경비를 다시 받는 등 사후처리를 하느라 진이 빠져버렸다. 오랜 준비를 거쳐 겨우 출발한 유럽여행이었기에 어떻게든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지만, 이후로도 소매치기에 대한 걱정으로 여행은 살얼음판이었고 틀어져버린 일정 탓에 급히 새로 짠 여행 계획은 부족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비가 줄어든 탓에 숙소는 궁색했고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도 없었다.


힘든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A는 생각한다. '유럽은 역시 위험해. 쓸데없이 유럽여행을 계획해서 돈만 날렸어. 고생만 하고 이게 뭐람. 앞으로 해외여행 따위는 계획하지 않을 거야' A는 유럽여행에 대한 나쁜 기억이 마음의 상처로 남았고 그 상처를 덮어버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몇 가지 딱지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이와 같은 몇 가지 고정된 생각들이다. '유럽은 위험한 곳이다. 여행은 나와 맞지 않는다.'


커다란 피해를 끼친 사건일수록 굳어지는 생각 역시 더 딱딱해진다. 깊이 파인 상처에 두터운 딱지가 앉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별히 계획했던 유럽여행의 경비가 무려 3곳의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하며 반년을 꼬박 모은 전재산이었다면 틀어져버린 여행에 대한 상처는 더욱 크고 오래 남을 것이다. 소매치기범에 대한 증오와 더불어 중요한 물건을 꼼꼼히 챙기지 못하고 부주의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 역시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B는 A와 같은 상황에 처했지만 집안에서 모든 경비를 댔고, 잃어버린 여행경비에 대해서도 부모님이 "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너만 무사하면 됐다. 지나간 일은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보내준 돈으로 남은 여행 잘 보내고 오렴"이라고 하고 말았다면 여행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자책이나 증오 역시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상처의 깊이와 기억의 강도는 그 사건이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유럽여행 경비 1,000만 원이 A에게는 지난 반년과 맞바꿀만한 크고 의미 있는 돈이지만 B에게는 그저 '충분히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는' 푼돈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두 사람에게 있어 유럽여행 초입에 일어났던 소매치기의 여파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한 여행에 대한 기억과 상처의 깊이도 확연하게 다르다. A는 상처가 컸던 만큼 앞으로 유럽여행 따위는 다시는 계획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B는 상처가 크지 않기에 얼마든지 새로운 해외여행을 계획할 수 있다. 소매치기에 대한 주의사항만 마음에 새겨두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A로 하여금 단순히 유럽을 다시 찾지 않는 정도로 그칠 수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A는 앞으로 유럽에 대한 견문을 쌓지 못할 뿐 아니라 인생전반에 걸친 중요한 기회 중 일부를 스스로 제한하게 될 수도 있다.


친구에게 보증을 섰던 탓에 7년간 잘 운영해오던 레스토랑의 문을 닫아야 했던 C는 그 이후로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C의 마음속에 '불신'이라는 딱지가 앉아버린 것이다. C의 상처에는 보증을 부탁했던 친구에 대한 증오, 경계심 없이 보증을 섰던 서투른 자신에 대한 자책, 친구에 대한 믿음을 배신당한 상처, 뒤늦게 찾아갔던 친구의 지하단칸방에서 엉엉 우는 쌍둥이를 안고 무표정하게 허물어져있던 제수씨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마음 놓고 친구를 미워할 수도 없게 된 C는 쓸쓸히 돌아오던 고속버스에서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에는 수많은 고민과 생각이 담겨 있다.


이런 마음의 상처들은 단기간에 아물지 못해서 딱지들 역시 오랜 시간 마음 한구석에서 화석처럼 굳어버리기도 한다. C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을 만나는 일을 기피하게 되었고 가벼운 대인기피증과 더불어 사업실패로 인한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졌다. 마음의 상처가 한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비슷한 소재는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드라마 '시크릿 가든' 주인공에게 생긴 마음의 상처는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형태로 그려진다. 트라우마는 공포심을 먹이로 삼아 성장하는데, 엘리베이터 화재로 질식사할 뻔했던 주인공 '주원'은 엘리베이터 대신 에스컬레이터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공포심으로부터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엘리베이터 화재는 주원에게 '엘리베이터 공포증'이라는 마음의 상처를 만들었고,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어떤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하는' 마음의 딱지가 생겨버린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이런 '딱지'들이 남아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못했기 때문이다. 몸의 상처와 마찬가지로 심하게 다친 마음의 부위는 이후의 치유 과정에 따라 치유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상처는 악몽과 같은 기억을 마음 깊은 곳에 '각인'시키며 이것이 마음의 흉터가 된다. 상처가 치유되려면 '시간'과 더불어 '용서'가 필요하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방식은 새살이 돋아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흉터가 오랜 시간에 걸쳐 풍화되고 옅어지는 방식이다. 마음의 상처는 유사한 상황이나 어떤 시그널을 접할 때마다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되는 형태로 헤집어지는데, 이것은 뚜렷한 감정 변화가 일어났던(예를 들면 극심한 공포를 느꼈던 순간이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의 수치스러운 일을 겪었던 상황과 같은) 순간을 우리의 뇌가 반드시 기억으로 남겨야 할 중요한 순간으로 인식하는 탓이다. 그런 순간을 맞이하면 뇌는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대며 당시의 상황에 대한 단서를 최대한 많이 남겨두기 위한 작업을 한다. 기억의 프레임이 극도로 높아지는 것이다. 물론 이는 똑같은 상황으로 고통받거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용이지만, 때로는 이러한 기능이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을 오히려 초단위의 생생한 기억으로 남기기도 하는 것이 문제다.


시간으로 마음의 상처가 풍화된다는 것은 이러한 기억들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그 빈도가 점점 더 낮아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더라도 예전보다는 무뎌져 다른 기억과 마찬가지로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경우처럼 엘리베이터를 타면 당시의 기억과 감정에 압도되어 극심한 신체증상까지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것과 같다. 십자인대가 끊어진 무릎이 완전히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처럼, 죽음에 직면했던 공포가 너무나 컸던 탓에 마음의 상처가 시간이 흘러도 치유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상처는 단순히 시간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치유되지 않는다. 또 다른 요소인 '용서'가 필요하다. 여기서 '용서'는 타인에 대한 용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에 대한 용서라는 의미가 더 크다. 교통사고가 대부분 '쌍방과실'인 것처럼, 어떤 사고 또는 실패의 순간에는 타인 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원인인 경우도 있지만 자신의 잘못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도 많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예를 살펴보면 주인공 '주원'의 엘리베이터 사고에는 또 다른 희생자가 있었다. 바로 여주인공의 아버지인 소방관이었다. 그 소방관은 엘리베이터 화재 사고에서 주원을 구하려다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엘리베이터와 함께 추락해 사망하고 만다. 주원의 마음에 생긴 상처에는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했던 공포심 외에도 자신을 대신해 죽은 소방관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다. 그 죄책감이 너무나 큰 탓에 주원은 엘리베이터 사고에 대한 기억 중 소방관에 관한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는 해리성 기억상실 상태로 스스로를 몰아가게 된다. 결국 주원이 상처와 트라우마로부터 완전히 회복되기 위해선 소방관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고, 그것은 결국 엘리베이터 사고로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신을 용서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마음에도 상처가 생기고 딱지가 앉는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딱지를 떼어내려 하기보다 상처 자체의 치유에 애써야 한다. 딱지가 불편하고 성가시다고 해서 함부로 떼어내려고 하면 아직 낫지 못한 상처만 헤집게 될 뿐이다. 상처가 모두 치유되면 딱지는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떨어져 나간다.


몸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인체를 공부하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자신을 이해하고 용서해야만 한다.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은 내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거나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이해한다는 말은 '나'라는 인간도 완벽하지 않기에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불완전한 자신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아무런 잘못도 없으려면 모든 상황에서 지극히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선 잘못은 모두 '남 탓'으로 몰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나도 엄연한 인간이고, 인간이라면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토록 무거운 방패를 낑낑대며 짊어지고 버틸 필요가 없다. 커다란 사각 방패를 내려놓아야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참모습을 바로 볼 수 있다. 더불어 그 모습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상처 입은 자신을 나약하다며 자책하거나 실수와 실패로 고꾸라진 자신을 무능력하다며 욕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구나 상처를 입지만 회복 속도는 모두가 다르다. 인생은 일회용품이 아니고, 방전된 배터리는 충전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한 번의 상처로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서히 회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내기도 한다. 두 부류의 차이는 마음의 상처와 그 위에 앉은 딱딱하고도 고정된 딱지를 얼마만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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