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
우습다. 만년필도 쓰다 보면 자꾸 막히는 날이 있다. 쓰다 보면 자꾸 막히는 날. 그저 써 내려가면 되는데 의심, 두려움, 불안 따위가 손끝을 주춤거리게 한다.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아니, 무엇보다도 이렇게 쓰는 게 의미가 있는 걸까? 의미를 찾는 것은 자신의 일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인데 여전히 나는 글쓰기에 충분한 의미를 선물해주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쓰고 싶다는 바람. 그것만으로 충분한 걸까? 글 쓰는 일에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작 나에 대한 의심은 가라앉지 않는다. 약간의 의심이 불어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고 작은 낚싯배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표류한다. 흔들리는 대지 위에서 어지럼증을 참으며 균형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게 된다.
막막함의 벽 앞에 서는 날이 있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굳은 성문처럼. 그들이 공고하게 세워둔 철옹성 안으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 이 모든 노력의 의미를 스스로 평가절하하는 내면의 의심. 진흙탕이 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또다시 글을 쓴다. 읽지 않을 글을 쓰며 위안 삼는다.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나 내 주변을 감싼다. 기다림의 시간은 1초가 1분 같고 하루가 1년 같다. 늘어난 시간의 공백을 매우기 위해 글을 쓴다. 정신없이 쓰다 보면 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계속 쓰다 보니 만년필의 끊어짐도 사라졌다. 생각이 흘러나오는 펜촉의 작은 틈이 굳어버린 의심과 자조로 다시 막혀버리지 않도록 쓰고 또 쓴다. 내 안의 찌꺼기 같은 것들이 모두 쏟아져 나올 때까지. 버릴 만큼 버리고 다시 채우자. 작은 소우주 속을 청소하는 과정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폐부가 옥죄이는 느낌에 숨을 들이켜기 어렵다. 복부는 답답하고 입이 마른다. 갈증이 치밀어 오른다. 여전한 불안은 마음속에 꾸준한 진동을 일으킨다. 눈이 아파왔다. 급격한 피로감에 지친다. 버텨야 한다. 버티기 어렵다. 벗어나고 싶다. 이 모든 불편함을 벗어던지고 마음 편히 쉬고 싶다.
그런 압박이 사라지지 않는다. 성공과 성취에 대한 압박. 가능성에 대한 증명. 나에 대한 증명. 넋두리만으로는 안된다. 부족하다. 막연함에 압도되어 끝을 보고 싶지 않다. 차일피일 진행을 미루고 쓰기로 한 것을 미룬 채 다른 것들만 끄적인다. 나를 속이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