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D-5 사전투표 시작
지난 2019년 12월 공직선거법 개정 이후로 만 18세 이상이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투표권'의 의미는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중요한 권리인 '참정권'을 행사함과 동시에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에 있다. 즉 선거연령 하향의 의미는 사회적으로 만 18세를 자율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질 수 있는 나이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책임'에 담긴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책임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우선 '도덕적 책임'이다.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 도덕상의 제재를 받는 것을 말한다. 책임이 성립되려면 자기 사회의 윤리적 규범을 받아들여야 하며, 자유의지를 보장받아야 하고, 행위의 결과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 의도하지 않은 행동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니므로 도덕적 책임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도덕적 책임은 자책이나 타인의 유무형적인 비난으로 돌아올 뿐 강제력을 행사하지는 못한다. 사람에 따라서 도덕적 책임을 받아들이는 수준도 다르다. 어떤 이는 양심의 가책 형태로 자책하거나 힘들어하는 일도 사람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도 한다. 그에 반해 '법적 책임'은 법치주의 국가의 일원으로서 일정 자격(성인의 기준)이 충족되는 순간 자연스럽게 부여되는 책임으로서 법률에 따른 책임을 강제적으로 지게 된다. 가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징후가 드러나긴 하지만 원칙적으로 동일한 범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은 동일하다. 내가 그 일을 가볍게 여기든 무겁게 여기든 국가에서 법적으로 정해둔 책임이 물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설사 자신이 그 법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책임은 피해 갈 수 없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법에 대해 세세한 수준까지 알지 못하는 현실과는 괴리가 존재한다. 여기에는 법이 너무 방대해진 탓도 있다. 그런 이유로 법적 다툼에 들어가면 법률대리인 즉 '변호사'를 선임하게 된다. 직접 선임하거나 그럴 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국가에서 선임해주는 '국선변호인'이 지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경우에 국선변호인을 지정해주는 것은 아니다. '법적 책임'은 타율적 강제라는 점에서 도덕적 책임과는 완전히 구분된다. 그 외에는 '업무상 책임'이 있다. 고용인과 피고용인 등 여러 형태의 업무관계에서 형성되는 책임관계로 법적 효력을 지니기도 하고 그렇게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책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선택과 결정의 무게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이미 배우지만 대부분이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말,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문장을 모두 접해보았을 것이다.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허용되고,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선택과 결정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음을 알려준다.
자유에는 관대하지만 책임에는 지극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있다. 자유와 책임을 별개의 것으로 구분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것은 책임의 범위를 '법적 책임'으로 지극히 좁혀서 생각하기에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죄의 소명이 부족할 때, 즉 증거재판주의 법정에서 충분한 효력을 갖는 증거가 없을 때, 나 이외에는 범죄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을 때 죄를 부인하는 경우가 그렇다. 타인의 자유나 권리를 침해하고서도 태연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기도 한다. 그들의 '죄의식'은 자신의 죄가 타인에 의해 강제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때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발현되기도 한다. 일상의 영역이나 인간관계의 영역에서 '말'의 효력을 지극히 가볍게 여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녹음해두거나 문서로 남겨두지 않는 한 말은 휘발성이 강하고, 인간의 기억은 증거로서 충분한 효력을 갖지 못한 것으로 인식된다.
우리가 스스로 책임의 범위를 '법적 책임'으로 좁혀갈수록 법의 영역은 확장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법에 의해 구속되는 자유의 영역이 점차 넓어짐을 의미한다. 스스로 자유를 조금씩 내려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기억해야만 한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고 행하는 것이 그에 따른 책임도 나에게 귀속시키는 의미라는 것을. 투표권에 귀속된 책임은 도덕적 책임이나 법적 책임과 같이 직접적으로 체감되기 어렵기에 그만큼 더 인식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가볍게 볼 문제는 아니다. 투표의 결과가 당장 내일의 밥상이 사라지게 하지는 않겠지만 다음 세대가 살아갈 터전을 무너트릴 수도 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하고 준비한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풀고자 하는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투표권은 우리를 대신해 개개인의 수준을 벗어난 크고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을 지닌 사람을 선택할 권리이며, 입법활동을 담당하고, 소중한 국가재원을 운용하고 관리할 사람을 뽑을 권리이기도 하다. 개인의 '한 표'에 담긴 선택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선거연령 하향은 그 선택의 무게를 한 살 더 어린 나이의 국민에게까지 위임한 것이다. 만 18세는 고등학교 3학년이고, 수험생 신분이다. 그들이 자율적인 의사결정, 합리적 비판의식, 충분한 검토와 검증을 통해 투표권을 적절히 행사할 수 있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이다. 어차피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판도라의 상자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열릴 것이고, 그때가 되어 어떠한 결과를 낳든 간에 그것을 선거연령 하향과 직접적으로 엮을 수 있을 정도로 관련성을 입증할 방법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에는 변수들이 너무나 많다.
사실 이런 문제는 나이와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성숙도는 나이가 찬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민주시민으로서 얼마나 각성하고 책임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행동에도 무게가 실릴 것이다. 선거가 그저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라 생각되는 사람에게 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변질되는 인상을 준다. 인기투표가 올바른 것인지의 여부를 떠나 그런 풍토 아래서 성장한 아이들이 어떤 요소를 고려해 투표할지 배우기 어려울 것은 분명하다. 만약 그저 부모님이 뽑는 사람을 무작정 따라간다면 선거연령 하향은 오히려 투표권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말 것이다.
다음 주 수요일인 4월 7일, 2021년 보궐선거가 열린다. 그리고 그 날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도시인 서울시와 부산시의 '장'이 결정되는 날이다. 이미 사전투표는 시작되었고 투표권은 선거일 기준 만 18세 이상(2003년 4월 8일 이전 출생)의 국민에게 주어졌다. 내년에는 20대 대통령 선거도 기다리고 있다. 소중한 투표권을 누구에게 행사할지에 대한 깊은 숙고가 필요해지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