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30분

내가 하고 싶은 말, 내게 해주고 싶은 말

by 작가 전우형
버스정류장 할머니.jpg

오후 4시 30분이 되면 건너편 버스정류장에는 나이 지긋한 할머님 네 분이 옹기종기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가 다가오는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할머님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릿하며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도 학교 일을 마치면 저렇게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겠지.


엄마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어렵다는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혼자 EBS 방송을 몇 번 보시더니 어느 날 합격증을 내밀며 "엄마 합격했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했다. 공부에 소질이 있었지만 '베이비 부머' 세대 8남매 중 셋째, 그것도 딸자식이라 대학 진학은 진즉에 포기해야만 했고,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주산 회사에 바로 취직해 직장인의 삶을 시작해야만 했다. 꽤 괜찮은 직장이었지만 아빠와 결혼하고 나를 낳으며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나를 키우면서도 틈틈이 부업은 했지만 뚜렷한 직장은 없었고, 그래서인지 훗날 아빠와 헤어진 후 넋두리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내가 그때 직장을 그만두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내가 보기에 엄마는 어떤 직장에서도 자기 몫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문제는 전업주부 경력을 취급해주는 직장이 없다는 현실이었다. 결국 엄마는 인근 초등학교에서 청소하는 일을 하셨다. 그런 일 말고는 40대 후반을 넘어 50을 바라보는 엄마를 받아주는 직장은 없었다.




"하고 싶은 거 다하고, 편한 것만 찾으면 우리 같은 일반인들 수입으로는 돈 절대 못 모은다" 엄마가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엄마는 한사코 걸어 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무거운 짐이 있으면 손수레를 끌고 가면 갔지 택시도 타는 일이 없었다. 운전면허는 진즉에 취득했지만 지금껏 한 번도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차를 몰기 시작하면 돈이 안모인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없는 살림으로 악착같이 저축하며 가계를 운영해나갔던 엄마는 결국 12년 만에 반지하 단칸방 살림을 벗어나 32평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후 나는 엄마를 따라 수시로 모델하우스 구경을 가곤 했다. "이 집이 우리가 이사 갈 집이야. 근사하지?" 직전까지 살았던 17평 복도식 임대아파트에 비해 새집은 운동장처럼 넓어 보였다. 베란다가 어찌나 긴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언제나 굳은 표정이었던 엄마도 그때만큼은 환하게 웃곤 했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던 해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였다. 그게 벌써 25년 전 일이다.


한사코 대중교통만을 고집했던 엄마가 처음으로 중고차를 한대 장만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올해 3월 경 대구지역 신천지 교단을 시작으로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었던 시기였다. 그 당시 대구지역은 정말 심각했다. 동생이 아르바이트하던 치과병원의 의사 선생님이 확진 판정을 받아 실제로 엄마와 여동생이 2주간 자가격리를 하는 등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척에 존재했고, 확진당하는 일은 남일 같지 않았다. 고혈압에 갑상선 약을 복용하던 엄마는 '60대 이상 기저질환자'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에 이를 조건을 고스란히 갖춘 사람이었고, 마스크를 써도 버스나 전철을 타면 숨 쉬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긴장되고 두려움이 컸다. 일터야 삼사십 분이 걸려도 걸어가면서 버틸 수 있었지만, 간혹 대중교통이 아니면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를 이동해야 할 때는 정말 막막하고 두려운 심정이었다고 한다.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3차 대유행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신규 확진자가 매일 300명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중 2/3 가량이 수도권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곳 안중은 '논밭' 뷰를 자랑하는 농어촌 지역으로 수도권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지역이지만, 행정구역상 경기도 평택에 속해있어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적용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다리 하나만 건너면 도착하는 당진, 아산은 행정구역상 충청도로 분류되어 단계가 다르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한두 테이블 겨우 받던 손님도 이제는 받을 수 없게 되었고, 포장이나 배달만 할 수 있게 되었다. 카페는 조용하고 편안한 공간을 찾아오는 곳이라, 포장 손님은 드문 것이 사실이다. 이제 갈 곳 없는 손님들은 인근 패스트푸드점이나 일반음식점으로 가고 있다. 코로나로 위급한 시기라 지침을 따라야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다른 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에 우르르 모여 같이 밥 먹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코로나 방역에 있어 몇 테이블 되지도 않는 소규모 카페에 손님을 받는 것과, 일반음식점에 손님을 받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저 카페라 해서 원천 차단하는 게 과연 적절한 조치일까? 월세도 벌지 못해 문을 닫아야만 하는 카페 사장들은 지금의 코로나 사태에 무슨 책임이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든다. 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지침을 만드는 것 자체가 제한되는 것도 알지만,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는 불만이 치솟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것들이 상황이 어려워질 때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느끼는 피해의식이나 감정 들일 것이다.


건너편에 나란히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들도 마찬가지로 불안에 떨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바이러스의 공포는 발걸음을 얼어붙게 하고,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추위는 불안은 더 증폭시키는 것 같다. 차 한잔 마실 여유도 부리기 힘든 요즘이지만 그래도 글을 쓰며 굳어진 마음을 풀어내다 보면 막막한 두려움과 답답함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는 것을 느낀다.




인간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려워하는 유일한 존재라고 한다. 불안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필수적인 감정이지만 과도한 불안은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의 삶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요즘처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사람은 더 큰 불안을 느끼고, 극도의 공포와 불안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사고 작용을 압도해버린다.


불안을 경감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지금 불안해하고 있구나' 제삼자의 시선이 되어 불안해하는 자신을 지켜보는 것. 이런 영역을 '메타인지'라 부르기도 한다. '불안'의 중심에 있다 보면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쉽지만, 중심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정말 불안해야 할 상황과 불안의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 조금씩 분류되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적정 수준의 스트레스는 업무효율을 상승시키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업무효율이 감소되는 것처럼, 적절한 불안은 우리를 준비시키지만 과도한 불안은 우리를 '마비'시키기도 한다. 불안 수준을 적절히 관리하는 노하우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고 싶은 거 다하고, 편한 것만 찾으면 우리 같은 일반인들 수입으로는 돈 절대 못 모은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씀이 떠오른다. 엄마는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버텨 새집 마련에 성공했었다. 지금의 코로나 시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답답하고 좀이 쑤셔도 하고 싶은 것을 좀 참고, 불편함도 감수하며 버티고 기다려야 할 시기가 아닐까? 모두의 작은 인내와 노력들이 모여 코로나가 사라진 평범하지만 새로운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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