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시거부 의대생 구제책 마련을 주장하기에 앞서

의대생들은 겸손한 자세부터 보여야 한다.

by 작가 전우형

공기가 서늘하다. 행인들은 옷깃을 여민 채 발걸음을 재촉한다. 학생들이 오들오들 떨며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하얀 입김이 나올 정도다. '얼죽아'라지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손에 쥐었을 때 전해져오는 온기가 반가운 계절이 오고야 말았다. 더위에서 추위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계절이 선물해주는 잠깐의 기분좋은 선선함은 너무도 빨리 자취를 감춰버렸다. 두터운 옷을 챙겨입어야만 적절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인간에게 사계절은 호의적이지 않은 조건이다. 일신에 가진 것이 너무 없어 머리를 쥐어짜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인간에게 지능, 언어, 문자가 발달했던 것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힘세고 강한 존재는 굳이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다.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연대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진 힘을 이용해 물어 뜯고 때려눞히면 그만이다. 그래서 오만한 존재는 외롭고 고독하며 적이 많다.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힘이 없고 약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궁리해야 했고, 힘세고 위험한 짐승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심초사하고, 불안해하고, 상황을 살펴야 했다. 모이고 연대해서 머릿수로 버텨야 했다. 보잘 것 없고 약했기 때문에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생각하고 협력하고 연대하지 못하는 인간은 약하다. 공감능력과 겸손이 중요한 이유는 오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오만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눈을 흐린다. 최근 들어 오만에 빠진 채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지금의 성취와 권위를 얻은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현대사회의 연대는 눈에 보일정도로 개념화되고 형상화되었다. 그것이 국가를 비롯한 사회 기반을 형성하는 '인프라'다. 인간의 능력은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인프라가 있을 때 온전히 발휘될 수 있다. 학습하는 능력이 뛰어나도 국가의 교육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능력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없다. 스스로의 능력에 확신을 갖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휘두르려 하는 이들은 스스로에 대해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법과 제도, 그리고 시스템이 보장하고 있는 것들이 사라지면, 구성원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많은 것들이 소멸된다. 국가가 면허제도를 통해 의사정원을 엄격히 제한하고 관리하고 있기에 의사들이 자연스럽게 누리는 권리들이 있다. 국가에서 입시제도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도록 법과 제도로 규정해 두었기에 공부에 뛰어난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국가에서 건강보험제도를 4대 사회보험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뛰어난 의료접근성도 사라진다. 국가가 없으면 의사도 없고, 환자가 없으면 의사도 없다. 국가 시스템이 보장하는 테두리 안에서 개인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고 소득을 창출할 여건도 마련할 수 있다. 무엇 하나도 온전히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없다. 개인적 성취라 부르는 대부분의 것들은 국가 인프라의 바탕 안에서 위치와 기능을 갖는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이뤄냈다고 자만과 오만에 빠진 이들이 겸손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전문가로서의 권위 역시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세워진다. 의사파업, 전공의파업, 의대생 국시거부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것은 오만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들이 의료시스템 그 자체인 것처럼 국민의 생존권을 무기로 휘두르며 자신들의 권익을 세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 사태에 고생한 의료진들을 향한 국민들의 엄지 척의 응원을 그들은 반대로 뒤집어 경멸했다. 의료진에는 의사만 있는 것이 아님에도 그들은 스스로 모든 의료와 코로나 방역의 공을 독차지한 것처럼 그 응원을 일방적으로 무시했다.


오만한 자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려 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자기 중심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할수록 오만은 사회성을 더욱 망가트린다. 사회의 일원으로써 사회를 유지하고 존속하기 위해 이행해야한 최소한의 노력마저 실행할 필요성을 망각한다. 그 결과 오만에 빠진 자들은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생각없는 말 한마디들로 적을 양산해내기에 이른다. 파업이 일단락된 후 국시거부 의대생들에 대한 구제를 두고 국민감정이 더욱 돌아서고, 각종 언론들에서 의사들의 비리와 부도덕성, 살인을 저질러도 복구되는 불사조 의사면허, 선발대 논란 등 국시응시의 공정성 문제들을 두고 질타가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 그들이 아무 생각없이 행해온 오만한 언행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과는 불필요하며 이 사태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말하는 그들의 선택적 정의와 남탓을 일삼는 태도는, 집단으로 환자를 치료할 도덕적 의무를 내팽개치고 코로나로 위중한 시기에 의료현장을 벗어났던 그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현실을 보는 눈을 잃어버린걸까, 아니면 보려하지 않는 것일까?


정부와 국민들은 국시거부 의대생 구제책 마련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의대생들의 사과나 구차한 변명은 듣고싶지도 않지만 굳이 그들이 왜 사과해야 한다고 묻는다면 그 답은 한가지 뿐이다. 의대생들은 '오만'했다. 정부에서 교과서 살 돈 한푼 보태준 것이 있다며 공공재 논란에 흥분하며 성명을 발표했던 전공의 선배들을 보고 배워서인지, 의대생들은 이미 자신이 의사가 된 것으로 여기며 국시를 단체로 거부했다. 자신들이 국시에 응시하지 않으면 당장 내년도에 3,000여명의 신규의사가 배출되지 않음을 무기삼아 아직 취득하지도 않은 권리 투쟁에 나섰다. 자신이 시험을 보지 않으면 국가 의료시스템에 치명적인 위험이 따를 것을 예상하고 단체행동에 들어갔던 것이다. 97%에 달하는 의사국시합격률을 바탕으로 아직 의사도 아닌 의대생들이 스스로를 당연한 예비의사로 여기고 오만한 투쟁에 들어갔던 것이 그들이 사과하고 겸손한 자세를 되찾아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특혜에 가까운 국시거부 의대생들에 대한 구제를 요청하기에 앞서 취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의대생들, 사과할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