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 떨어지지 않는 아이

코로나 시대에 열이 난다는 건 - 1편

by 작가 전우형

한가로운 봄날 오후. 침상 주위로 햇살이 커튼처럼 드리워진다. 창가에서 물끄러미 밖을 바라본다. 6차선 도로 위로 많은 차들이 움직인다. 지극히 평범한 토요일 오후의 모습이다. 한 가지만 제외하면.




아내의 문자가 도착했다. '00 병원 1500호. 선별 검사소에서 검사받고 신관 1층 로비 안내데스크에서 보호자용 방문증 받아와야 해. 바코드 없으면 엘리베이터 버튼도 안 눌러져.' 문자 하단에는 드라이브 스루 선별 검사소의 주소가 있었다. 검사를 마친 나는 짐가방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제2주차장은 꽤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검사 결과는 밤 10시까지는 문자로 통보될 거라고 했다. 면봉으로 목구멍 깊숙한 곳을 슥슥 문지른 검사관은 이어서 콧구멍 깊숙이 무언가를 찔러 넣었다. 결코 달가운 느낌은 아니었다. 현재 상황에 대한 짜증 때문인지 아니면 검사과정의 통증과 이물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인상이 구겨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아내의 시점


아이의 열이 38도를 웃돌았다. '혹시?' 약간의 불안이 찾아왔다. 감염의 가능성으로부터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였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보건소를 찾았다. 발열 이외에 아무 증상이 없다는 것과(코로나 바이러스는 급성 폐렴의 양상을 띤다) 역학적 소견(유증상자와의 접촉 혹은 동선이 겹치는 부분 등)이 없으면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모두가 잠재적 감염자 취급받는 불신사회였기에 부득불 코로나 진단검사를 해달라고 했다. 결과는 다행스럽게도 음성이었다.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흔치 않았다. 동네의원은 물론이고 규모가 제법 된다며 떠들어댔던 인근 병원도 발열환자는 출입 자체를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대략 1시간 거리에 있는 준 종합병원이었다.


소아과 의사는 아이를 살펴보곤 고개를 갸우뚱했다. 단순 열감기로 치부하기엔 두드러진 원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편도가 살짝 붓긴 했지만 이 정도로 고열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했다. 잠깐의 진료 후 해열제와 항생제 처방이 나왔다. 의사는 이 약을 복용하고도 내일까지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다시 병원을 찾으라 했다.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고도 하루가 지났지만 아이의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 날 병원을 찾아갔어야 했지만 남편이나 나 모두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여건이 되지 않았다. 결국 하루가 더 지난 사흘째가 되어서야 다시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의사는 더 지체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입원을 권유했다. 혈액검사 결과와 배양검사가 필요하다고 했고, 입원해야만 투약할 수 있는 항생제를 써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열이 잡히지 않는 건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전화기를 들고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다시 나의 시점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이미 다섯 통이 넘는 부재중 통화가 표시되어 있었다. 직업군인을 그만둔 후 스마트폰에 대한 해방감을 가장 큰 낙으로 삼았던 나는 때때로 전화기를 무음이나 진동 상태로 저 멀리 던져두는 것을 즐겨하곤 했다. 그 자유는 문자메시지 하나하나를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하고, 혹시 내가 놓친 연락이 있나 노심초사해야 했던 지난시절에 대한 작은 보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자유를 누리기에 오늘은 날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전화를 받지 않아 답답했는지 아내의 목소리에는 짜증, 걱정, 다급함 같은 것들이 잔뜩 묻어있었다. 아내는 저간의 상황을 설명하며 의사가 아이를 입원시키라 한다 말했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입원실에 보호자가 1명 상주해야 하고 사흘에서 나흘 정도 입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보호자 교대는 불가하고, 보호자도 선별 검사소에서 음성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원내를 배회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나는 아이의 입원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단순 열감기를 가지고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이라 여겼다. 가뜩이나 확진자가 연일 500명 넘게 쏟아져 나오는 판국에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보호자 1명이 고정으로 상주해야 하다니. 아내는 대학원 수업이나 시간강사, 응급실 근무 때문에 상주가 어려웠다. 내가 상주하려면 카페 문을 닫아야 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며칠 씩 문을 닫아두면 그나마 몇 사람 붙들어두던 단골손님도 끊겨버릴게 뻔했다.


불안한 마음에 일을 키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아는 사람들이 더 문제야. 가만 두면 알아서 나을 걸 입원까지 해야 한다고 수선을 떠는지...' 과잉진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피검사나 하고 어서 돌아오라고 했고, 아내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열이 안 떨어지는 데는 분명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을 통상적인 데서 찾을 수 없으니 위험하다는 의견이었다. 의사의 의견도 그랬고 아내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결국 내 고집을 꺽지 못한 아내는 화가 난 목소리로 '알았어!'라고 하곤 전화를 끊었다.


찜찜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을 뿐. 이런 지적 폭력으로부터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전직 간호사인 아내와 소아과 전문의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아내가 나에게 바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나는 사나흘 동안 이 곳을 지킬 여건이 안되니 당신이 보호자로 병실을 지켜달라.' 여전히 아이를 입원시키는 것은 탐탁지 않았지만 내 생각대로 밀어붙였다가 아이가 더 아프기라도 한다면 그것을 책임질 능력도 없었다. 선택은 나의 몫이었지만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입원시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카페 문고리에 'Closed' 팻말을 걸고 가게를 나섰다.




입원병실


아이는 평온한 얼굴로 병상에 누워 있었다. 아내는 나를 반겼고 병동 간호사는 나를 불러 주의사항 몇 가지를 설명해주곤 서명을 요구했다. 원내에서 조심스럽게 생활하고 몇 가지 사항을 제외하면 모두 너희들 책임이라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써둔 내용이었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서명을 했다. 요즘은 이런 서명도 태블릿 화면으로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병실 밖 출입을 삼가 달라고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병원에게만 내가 위험한 존재가 아니었다. 내게 병원은 더욱 위험한 곳이었다. 원래도 위험했지만 코로나 시대에는 더 위험해졌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가고, 병실 안에는 아이와 나 두 사람만 덩그러니 남았다. 가끔 간호사가 들어와 수액과 체온, 혈압 등을 확인했다. 열이 높으면 해열제를 추가로 달아주었다. 주사약으로 된 항생제를 수액 라인으로 넣어주기도 했다. 몇 가지 사소한 일을 제외하면 지극히 한가롭고 평온한 오후였다. 이곳이 입원병동만 아니라면 가끔 이런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도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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