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첫날밤

코로나 시대에 열이 난다는 건 - 2편

by 작가 전우형

밤이 길다


입원 첫날밤. 아이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13살 아이에게 병원은 힘들고 낯선 곳이었나 보다. 열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이는 건강에 대한 염려가 큰 편이었다. 이번에는 간호사의 체온 측정방식을 문제 삼았다. 체온계의 센서를 귓구멍에 정확히 갖다 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수액 라인으로 피가 역류한 흔적도 심히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괜찮다는 아빠의 말은 위안이 되지 못했다. 시계를 봤다. 밤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병동 가운데에 위치한 간호사실을 찾았다. 야간 교대를 마쳤는지 아까와는 다른 간호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무선 이어폰을 꽂은 채 낮은 목소리로 흥얼거리던 간호사는 우리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표정이었다. 다른 말 없이 아이가 조금 따뜻한 것 같다고 체온을 다시 측정했으면 한다고 했다. 결과는 37.4도. 다행히 고열은 없었다. 이번 측정 결과는 아이에게도 믿을만하다고 여겨진 것 같았다. 수액 라인도 간호사에게 보이며 빨갛게 피가 역류한 흔적이 있는데 괜찮은지 물었다. 간호사가 웃으며 괜찮다고 하자 아이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병실로 돌아와 취침등을 켜주었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큰 아이였다. 잠들 수 있겠냐는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이내 고른 숨을 내뱉으며 잠이 드는 듯했다. 하지만 30여분쯤 지났을까. 수액 탓에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잠이 깬 아이는 수액 바늘 꽂힌 부분이 가렵다고 했다. 간호사실에 가서 확인해보겠냐는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이 걱정 많은 아이에게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는 편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액 바늘이 혈관에 연결되어 있고, 내 몸에 내 몸이 아닌 것이 들어와 있는 셈이니 아마도 전혀 불편하지 않을 수는 없을 거라는 설명에 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이나 사흘쯤 지나면 관이 막히거나 멍들어 아프기도 하고, 보통 다른 위치에 다시 맞기도 한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뭔가 굳은 다짐을 하는 표정이었다. 다시 누운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잠이 들었다.




시곗바늘은 어느덧 1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몇 차례 푸닥거리를 마치고 나니 이제는 내가 잠이 달아나버렸다. 눈이 터질 것 같고 날카로운 두통이 일었지만 저 멀리 도망간 잠은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아이는 별일 없냐는 물음에 특별할 건 없다고 답했다. 아내도 걱정에 잠자리를 설치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자신에게도 미열이 난다고 했다. 그럴만했다. 여러모로 바쁜 탓에 제대로 쉴 수 있는 날이 없었다. 어제도 수포가 잡힌 입술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대학에서 8시간 수업을 하고 온 아내였다. 그 몸으로 오늘도 아이 병원 진료를 보느라 먼 거리에 있는 병원까지 다녀와야 했다. 힘이 부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문득 사는 게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나도 짊어져야 할 것들이 많았다. 자기 인생 하나도 추스르기 어렵다는 요즘 시대에 우리는 사관학교 졸업 후 이른 나이에 독립해 결혼하고 아이를 가졌다. 세 아이를 감당하는 삶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지만, 때때로 그런 각오가 무너질 정도로 힘에 부치는 때가 찾아온다.




열심히 일할수록 만족에서 멀어지는 사회


깊은 밤의 침묵을 뚫고 도로 위를 내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온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누군가는 잠들지 못한 채 묵묵히 밤거리를 달리고 있다. 그는 어떤 연유로 이 밤거리를 헤매는 것일까? 문득 유발 하라리가 언급한 내용이 떠올랐다. 그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을 인류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평가했다.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어찌 농경시대만 그러했을까. 그가 지적한 부분은 현대 한국인의 삶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간에 쫓기며 헉헉대는 숨을 내뱉으며 열심히 살아가지만 자신의 처지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갖춰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행복의 기준이 과도할 정도로 상향 조정된 시대. 우리는 그런 사회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은 평균적으로 더 열심히 살고 평균적으로 불만지수가 높은 나라다. 호주로 떠난 처남이 그곳에 정착 의사를 굳힌 것은 이런 한국사회의 삶에 대한 반감 때문일 것이다. 하루 4~5시간만 일하고도 먹고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라. 오후 6시가 넘으면 대부분의 간판에 불이 꺼지는 나라. 퇴근 후 가족과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나라. 그에게는 지구 상에 그런 곳이 실존한다는 사실이 문화충격을 넘어 한국에서 걸어온 자신의 삶을 재평가할 강력한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휴식시간에 일하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점심시간에도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열타를 두드리는 한국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처음에는 '이래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그로 하여금 인간의 행복에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상식 이상으로 열심히 일해야만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살 수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깊은 회의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4~5시간은 한국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노동시간이다. 나 역시 캄캄한 밤에 퇴근해서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다시 출근하는 일이 당연했고, 처남도 호주로 떠나기 전까지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일을 했다. 대충 따져봐도 15~20시간이다. 밥은 시간 날 때 틈틈이 먹었다. 그 고생을 하고도 이백에 조금 못 미치는 푼돈만이 쥐어졌다. 그랬던 한국에서의 삶과 휴식시간을 칼같이 챙기면서도 오후 3시면 일이 끝나는 그곳의 삶은 비교대상조차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회가 유발 하라리가 말한 '모두가 더 힘들게 일하고도 모두가 더 만족하지 못하는 사회'가 아니면 무엇일까? 3개였던 방송 채널은 수백여 개로 늘어났고, TV 화면은 벽면 전체를 덮다시피 할 정도로 거대해졌다. 다양해진 채널과 커진 화면만큼 우리는 행복해진 걸까? 오히려 75인치 TV가 배송되어온 이웃을 보며 55인치 TV가 왠지 못마땅해 보이는 사회에 살게 된 것은 아닐까?




그래. 밤이 너무 깊어버린 거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 무엇할까?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 여전히 밤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달리고 나는 쓴다. 살기 위해서, 견디기 위해서 쓰고 또 쓴다. 이제야 아이는 완전히 잠이 들었다. 고른 숨소리 가운데 답답한 숨소리가 섞여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코가 막힌 걸까? 걱정이 앞선다. 코로나 시대는 여러모로 어려운 것들이 많다. 아프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아프면 치료받기 위해서도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입원이라도 하려면 열과 유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환자와 보호자 모두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아야 한다. 결과를 알기 전까지는 5m 떨어진 정수기에 가서 물을 떠 올 수도 없었다. 검사 결과 문자를 받은 것은 밤 10시경이었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선별 검사소 근무자들은 지금도 업무처리를 하고 있다는 말일 테니.


역시 글은 불면에 특효약이다. 내가 쓴 글을 내가 읽어도 졸음이 찾아온다. 펜을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애써 찾아온 잠이 다시 달아나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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