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코로나 시대에 열이 난다는 건 - 3편

by 작가 전우형

항생제. antibiotics. 抗(막을 항), 生(날 생), 劑(약 지을 제)

다른 미생물, 특히 세균의 증식과 성장을 억제하는 약물.

항생제란 '한 미생물(세균)이 다른 미생물의 성장을 저해하기 위해 만든 천연물질'이다. 세균이 자신의 전성기를 지나면서 노화가 찾아와 약화되기 시작했을 때, 다른 세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세균 자신이 직접 만든 독성물질인 것이다. 1928년 영국의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자신의 실험실에서 균배양액에 날아들어온 푸른곰팡이가 항생물질을 배출하여 그 주위에 배양하던 균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던 것을 우연히 발견, 이것으로부터 최초의 항생물질인 '페니실린'을 찾아냈다. 원래 항생제가 투약되기 전에는 이 항생제에 저항을 갖고 있는 균주와 항생제에 의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감수성 균주가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항생제가 사용되기 시작하면, 자연히 감수성 균주는 밀려나고 저항성을 갖고 있는 균주만 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충분한 기간 동안 항생제가 쓰이지 않으면, 내성을 갖고 있는 세균만이 살아남아 그 환자의 세균 분포를 주도하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다음부터 그 항생제는 쓸모없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항생제를 오남용하면 항생제 내성률이 높아지게 되는데, 내성률 84%라는 것은 100만 마리의 세균에 페니실린을 투여할 경우 84마리의 세균이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아시아권은 전 세계적으로 항생제 내성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월등히 높은 지역에 속하는데, 특히 한국의 항생제 내성률은 세계적으로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상황이다.(출처 : 시사상식사전)




창 밖이 밝아왔다. 뼈마디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이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시곗바늘은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전동 밥차의 모터 소리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아침식사가 도착했다. 아이는 잠깐의 소란에 잠이 덜 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잤냐는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침상에 설치된 탁자를 세우고 식사를 올려주었다. 아이는 식사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막 눈을 떴는데 입맛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먹어야 낫지 않겠냐며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고 남기라고 했다. 아이는 말간 어묵탕 국물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입원 중 일과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간호사는 매끼 식후 30분에 복용하라며 알약 4개가 담긴 약봉투를 가져다주었다. 8시, 13시, 19시경에는 항생제 주사가 투약되었다. 대략 2시간에 한 번씩 체온을 측정했고, 가끔 혈압도 재었다. 체온이 38도를 넘을 때면 별도의 해열제를 달아주었고, 1시간 정도 후에 열이 떨어지는지 유무를 다시 확인하곤 했다. 다행히 입원 첫날밤 이후에는 해열제를 따로 써야 할 만큼 고열이 나는 경우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아마도 투약되는 항생제가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간혹 인근 대학의 실습생이 체온이나 혈압 측정을 대신할 때도 있었다. 병동 간호사는 실습생들을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다가 빠진 것이 있으면 알려주기도 했다. 간호사와 실습생은 복장에 차이를 두어 구분하기가 용이했다. 떨리는 손으로 체온을 측정하고 가끔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모습이 사회초년생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존재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처음의 모습은 점차 사라져 가지만, 기억에서 사라지더라도 가끔 떠올려보아야 할 것은 있다. 그런 것을 '초심'이라고 부른다.



간호사가 항생제 주사를 두 대 놓고 갔다. 수액도 교체해주었다. 체온 측정 결과는 37.4도. 특별한 설명 없이 아이에게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었다. 본인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인지, 의식의 명료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인지 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아이가 바뀔 것을 염려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항생제가 다른 사람에게 투여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함이었겠지만, 간호사도 환자도 같은 상황에서 매번 다시 물어보는 것이 왠지 우습게 여겨졌다. 4인 병실에는 아이와 나 둘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모습은 설정된 대답을 반복하는 빅스비를 보는 것 같았다.


항생제. 페니실린의 발견에서 시작된 희대의 약물. 요즘 내과, 이비인후과, 소아과 할 것 없이 항생제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새로운 항생제 개발과 내성을 보유한 세균의 등장은 '모든 방패를 꿰뚫는 날카로운 창'과 '어떤 창도 뚫을 수 없는 단단한 방패'의 관계처럼 서로가 서로를 촉진시켜왔다. 항생제가 강해질수록 세균도 강해졌다. 그 세균을 잡아내기 위해 항생제는 더욱 강력해져야 했다. 항생제 남용을 우려하는 사회적 목소리도 있고, 나 역시 가능하면 성급하게 약을 쓰기보다는 조금 더 버텨내며 스스로 극복할 능력을 기르는 쪽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전편에서 언급했다시피 전문가의 권위가 압도적인 사회에서 일반인이 전문가 의견에 저항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번 입원의 목적은 고열을 다스리기 위함도 있었지만 주사약으로만 투약 가능한 항생제를 써보기 위함이었다. 항생제 한 번에 주사기 두 대가 쓰였다. 아이에게 수액줄이 달려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매 끼니 항생제를 투약할 때마다 아이의 몸에 구멍을 두 번씩 내지 않아도 되는 점은 서로의 정신건강이나 관계 유지에 있어 퍽 다행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시간의 공백, 그리고 부쩍 큰 아이


지루함은 아이들에게 병이나 고통보다 더 힘든 일이다. 어서 지나갔으면 하는 시간일수록 더욱 지루하고 끈적거린다. 입원환자에게 창 밖의 세상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병실 안의 공기가 더욱 답답하게 느껴진다. 지루함과 답답함이 혼재된 인고의 시간을 버티기 위해 아이는 점차 사이버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현실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을까? 그런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수첩을 펼쳐 들었다. '쓰기'는 내게 지루함을 견디기 위한 가장 편안하고 저렴한 방법이었다.


물을 떠다 주거나 침상의 각도를 조절해 주는 것 등 자잘한 요구사항 외에 크게 나설 일은 없었다. 13살 아이는 사춘기의 문턱에 있었고, 독립과 의존의 경계쯤에 서 있는 듯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니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도 내 삶을 이만큼이나 직접 책임질 수 있어. 나를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해줘.' 아이의 행동 곳곳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언의 주장'이 담겨있었다. 아이와 24시간을 단둘이 함께 보내는 경우는 드물었고, 그래서 더욱 낯설고 특별했다.


긴 해군 장교 생활 동안 내게는 집에 머물 기회가 흔치 않았다. 한 달에 절반은 해상에 머물렀고, 정박 후에도 집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가족과 떨어져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던 기간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환경적인 요인을 제외하고도 나는 아이들과 친근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신경 쓰지 못한 사이 훌쩍 커버린 아이들. 아빠 없이도 잘 자라준데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왠지 모를 거리감이 뒤섞여 마음이 복잡해질 때가 많았다. 어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리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다. 아이는 어느새 단잠에 빠져 있었다. 잠든 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둘까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그만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환의를 입고 병동 침상에서 잠든 아이의 모습은 평온하고도 초췌했다. 얼굴에 열꽃이 핀 아이의 모습은 기억으로만 남겨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 아름다운 모습으로 채색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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