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열이 난다는 건 - 4편
눈은 겨우 떴지만 머리를 들기 힘들었다. 정신마저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입속에는 수포가 잡혔고, 머릿속은 좀처럼 개운해지지 않았다. 삐그덕거리는 간이침대만큼이나 몸과 마음의 균형도 틀어진 느낌이었다. 몸살의 전조였다. 보호자용 간이침대는 좁은 데다 쿠션도 없었다. 예능프로그램에서 벌칙으로 쓰기 딱 알맞은 사이즈랄까. 거울에 비친 초췌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떡진 머리로 뻐근함을 토로하던 한 예능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병실의 간이침대는 잠수함 생활을 떠올리게 했다. 잠수함의 승조원용 침대는 지금 눈앞에 놓인 간이침대와 커다란 차이가 없었지만 그곳은 나름의 낭만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잠수함의 협소한 공간에서 삼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침대는 유일한 개인 공간이었다. 커튼까지 치면 완벽한 나만의 공간이 되곤 했다. 개인 침실은 고사하고 책상이나 세면대, 캐비닛도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나름의 자유를 꿈꿨다. 그것은 성인 걸음으로 스무 발자국이면 끝에서 끝을 오갈 수 있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 달의 출동을 버텨야 하는 사람들이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4인 병실은 넉넉하고 안락한 공간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마음이 원통형 쇳덩어리에 몸을 맡긴 채 바다를 떠돌던 시절보다 갑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허함과 냉소가 뒤섞인 감정의 출처를 종잡기 어려웠다.
환자에게 새겨진 '주홍글씨'
환자의 처지가 아픔보다 서러움에 더 근접해있다는 점에서 코로나 시대는 사관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사관학교에서 환자는 보살핌을 받는다기보다 눈총 받는 존재였다. 4개 학년, 대략 600여 명의 사관생도는 8개 중대로 나뉘어 학교생활을 했다. 학업성적보다 사관학교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요소는 선, 후배 동기와의 '관계'였다.
매년 몇 가지 분야의 경쟁을 통해 '명예중대'를 선발했는데, 명예중대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 중에는 추가 외출이나 외박 기회가 있었다. 사관학교는 명칭만 '학교'였지 실제로는 군대보다 더 지독한 군대였기에 사관생도에게 자유의 척도는 곧 외출, 외박 횟수나 다름없었다. 승자의 자유와 패자의 피해의식은 명예중대에 선발 여부에 직접적으로 관련될 수밖에 있었다. 그런 명예중대 경기에서 환자는 경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력 누수의 원인임은 물론, 열외인원으로 카운팅 되어 소속 중대 점수에 악영향을 미쳤다. 명예중대 선발에 실패한 경우 자연스럽게 그 화살은 유무형적인 형태로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런 평가제도가 몸이 아픈 사관생도를 심리적으로도 더 위축시켰다.
훈련에 참여하지 못해 개인점수를 손해 보거나 외출, 외박을 제한당하는 것 외에도(아픈 사람은 자유를 누릴 자격도 없었다.) 환자는 함께하는 선후배, 동기에게 백안시되는 존재였다. 가급적 평소만이라도 자신이 환자임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장 제도'를 통해 환자의 복장에 차이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목적은 환자 구분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불요불급한 훈련이나 지적을 예방하기 위함이었지만, 환자는 복장에서 이미 자신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환자에게 수치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장 제도의 진짜 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군대에서 가장 미움받는 것은 '비전투 손실'이었다. 군인은 전쟁이 나지 않는 한 다치거나 아프지 않은 것이 '미덕'이었다. 비전투 손실은 사유에 관계없이 '낭비'로 치부되었다. 향후 장교로 임관할 사관생도들에게 그런 문화는 더욱 가혹하게 적용되었다. 그래서 가급적 아프지 말아야 했다. 아픔이 의도적으로 '죄악'시 되는 문화 속에서 사관생도들은 가급적 아파도 숨기거나 견디는 것을 선택했다. 아파서 미움받느니 차라리 훈련받다가 쓰러지는 것이 나았다. 그러면 최소한의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
환자에게 '주홍글씨'가 새겨진다는 점에서 코로나 시대의 열감기 환자는 사관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코로나 시대의 열이 난다는 것. 체온이 일정 범위를 벗어난 사람은 존재 자체로 거부당하거나 미움받는다. '고열'은 코로나 시대 잠재적 환자의 시그널이며,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다. 어떤 경로로, 어떤 원인으로 열이 나는지에 앞서 그런 차별은 우선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그런 폭력 앞에 환자는 몸과 더불어 마음도 병든다.
혐오가 당연한 사회
백신 접종이 가시화되며 한 때 여러 의견들이 쏟아졌다. 그중에는 백신 접종자와 비접종자를 구분할 시스템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다. 양자를 구분해서 다중이용시설에 비접종자의 출입을 통제시키자는 내용이었다. 그 방법이 실현 가능한지 여부를 논외로 하더라도 비접종자, 즉 잠재적 코로나 위험군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와 혐오가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코로나 시대의 병원은 군대의 보안시스템을 고스란히 옮겨온 느낌이다. 군대는 신원조사를 통해 출입증을 발급하고, 그 출입증이 곧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아무리 스스로를 떳떳한 군인이라고 인정하고 주장하더라도 '출입증'이라는 카드 형태의 특수 신분증이 없는 한 영문에서부터 출입을 제지당한다. 코로나 시대의 병원도 이와 유사한 형태를 띤다. 다만 신원증명의 기준이 신원조사가 아니라 코로나 '음성' 판정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병원에 입원하든, 혹은 보호자로 상주하든, 열이 나건 그렇지 않건 선별 검사소에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입원을 위한 첫 관문은 아이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드라이브 스루 선별 검사소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후에야 병원에 '체크 인' 할 수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캐리비안베이처럼 바코드가 새겨진 팔찌가 채워졌다. 팔찌에는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요금을 결재하는 기능은 없었지만, 그 팔찌를 찬 사람이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깨끗하고 안전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팔찌 없이는 병동 문도 열리지 않았고 엘리베이터의 버튼도 눌러지지 않았다.
병원에서의 팔찌는 군대의 출입증과 같았다. 안타깝고 쓸쓸하게도 내게는 이런 시스템이 퍽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 같은 사회에서 인간은 존재 자체로 인정받고 존중받지 못한다. 자신을 증명하려면 해당 사회가 지정한 그 '무엇'을 갖추어야만 한다. 팔찌나 출입증이 아니더라도 이미 사회에는 이런 시스템이 만연한 지 오래다. 학위, 자격, 경력. 사회가 인정하는 조건이 사람의 존재를 대신하는 사회. 우리는 이미 그런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만남이 저주로 여겨지는
코로나 시대의 '안전함' 혹은 '깨끗함'이란 '코로나 음성'이라는 진단검사 결과와 맞닿아 있다. 혐오 사회의 두려움은 가족 간에도 극복하기 힘들 정도였다. 생김새, 행동방식, 사고방식, 자주 느끼는 감정, 취약한 신체부위, 자주 아픈 부분까지 가족 간에는 DNA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요소들이 많다. 유사점을 통해 친근함이 더해지고,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데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어진다. 하지만 가족관계에서도 아이가 열이 난다는 말에 덜컥 겁부터 났다. 코로나 검사부터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그칠 정도였다. 아내는 열은 나지만 급성 폐렴 증상이 없어서 아닐 거라고 하면서도 잠시 후 가까운 선별 검사소를 찾아가 검사를 받았다. '혐오감'은 자기와 다른 존재를 만날 때 필연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니 '타인'에게 만약 그런 증상이 보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감에 혐오감까지 더해진 감정. 감염의 증거로 여겨지는 38도 이상의 고열이 나는 환자 또는 그 주변인이 환영받기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는 것. 만남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나 주박처럼 여겨지는 것. 아픔이 혐오대상이 되고, '죄악시'되는 것. 코로나 시대에 열이 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두려움에 떠는 사회, 혹은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 우리는 현재 그런 사회를 살아가고 있음을 열이 나는 아이를 돌보는 짧은 며칠의 입원기간 동안 절절히 느꼈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우리는 원래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필요에 의한 차별이 당연시되는 혐오 사회에서 다시 상호존중의 사회로 회귀할 수 있을까?
병원이 환자를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만큼 환자나 내원객 역시 병원을 위험하게 느낀다. 가급적 병원으로부터 빨리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참으로, 아프지 말아야 하는 시기다. 사관학교 시절처럼 아프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개인 건강을 관리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혐오든, 공포든 간에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 건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다준 선물이라고 해야 할까...
퇴원, 그리고 또 다른 고민거리
둘째 아이의 생일이었다. 집에서 함께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 바람을 들어준 것일까? 간호사가 찾아와 퇴원 절차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납 준비가 되면 알려주겠다고 했고, 사흘 치 약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퇴원 소식에 신이 나야 할 아이의 얼굴은 기대와 달리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아이는 "그럼 내일은 학교 가야 하는 거야?"라고 되물었다. 그 한 문장에 아이의 모든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 어쩌면 이 녀석에게는 그게 더 큰 근심거리가 될 수 있겠구나.' 아직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에게 대강의 상황을 설명하고 수납이 끝나는 대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아이가 내일 바로 학교에 가는 것은 어렵지 않겠냐는 말도 전했다. 아이는 전화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귀를 쫑긋 세우는 눈치였다. 아내는 선생님께 연락해보겠다고 했다.
과연 아이의 근심거리는 해결될 수 있을까? 아마도 긍정적인 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학교 측에서도 아픈 아이의 등교는 달갑지 않을 테니. 가정학습, 또는 체험학습에 대한 장벽이 많이 낮아진 시대다. 아프면 집에서 쉬는 것이 '미덕'인 시대. "그 정도 아픈 걸로 학교를 결석하면 되겠니?"라고 다그치던 시절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180도로 변화되었다. 어느 쪽이 더 좋은 삶일까? 가치판단은 유보해두는 것이 좋겠다. 그보다도 짐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제 '안전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니까.
<코로나 시대에 열이 난다는 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