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요즘처럼 배울 것도, 갖출 것도 많은 세상에서 ‘사치’스럽게 들리는 학문이다. 바늘구멍이 된 취업현장에서는 학력, 학벌, 토익점수나 자격증은 확인할지언정 인문학적 소양을 따져 묻지는 않는다. 반가운 장면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사회의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현대인은 성장과정에서부터 일찌감치 능력주의 문화를 접했으며, 학업성적과 입시 서열, 대학 간판이 존재를 대변하는 사회에서 자라났다. ‘치열하다’는 말로 충분히 표현할 수 없을만큼 가혹한 경쟁에 적응해야 했고, 도태된 이들의 삶의 처절함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야만 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돋보기처럼 확대한 언론이 소나기처럼 온몸을 적시는 시대를 살고 있다. 경쟁의 목표는 ‘취업’이란 두 글자로 수렴한다. ‘노동의 가치 = 시장적 가치 = 돈’이라는 등식이 진리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즉각적인 ‘이윤’으로 보상받지 못하는 모든 것들은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받고 있다.
기업윤리 역시 시험대에 놓이는 것은 매한가지다. 충분한 이윤을 발생시키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한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기업은 ‘공공선(Common good)’이나 ‘타인, 약자에 대한 배려’를 중요한 가치로 여길 여력이 부족하다. 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이 감당해야 할 비용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해를 거듭할 때마다 상승하는 직원의 임금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핵심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한 인센티브에도 신경 써야 한다. 애써 키워 둔 유능한 직원을 처우 불만족으로 타 회사에 빼앗기는 일은 기업으로서 대단히 슬픈 일이다. 국가에 내야 하는 세금 뿐 아니라 4대 보험 등 사업체별로 요구되는 의무보험 가입에 드는 비용도 감당해야 한다. 시설 및 장비에 대한 유지 보수 및 업그레이드 뿐 아니라 많든 적든 연구개발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기업은 이러한 비용을 시장수익을 통해 꾸준히 감당해 나가야 한다. 꾸준히 투입되어야 할 비용을 수익을 통해 충당하지 못하면 부채비율이 늘어나고 기업의 재무구조는 위태로워지게 된다. 그 동안에도 거대부채의 이자는 꼬박꼬박 빠져나간다.
이러한 생존의 사슬 중 어느 하나라도 녹슬어 끊어지는 순간 기업은 유지되기 어려워지며, 자연스럽게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한 직원들은 권고 휴직을 시작으로 소중한 직장을 잃을 위기에 놓이고 만다. 이런 그들에게 ‘인문학적 성찰’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해도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맴돌 것이다. 또한 기업의 운명에 유연하게 녹아들기 위해선 학생과 취업준비생들 마음을 단단하게 여며야 한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하는 인문학적 성찰은 ‘한가로운 소리’로 들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어찌보면 이 같은 성찰적 사고는 경쟁사회를 적극성 있게 살아가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고 마는 '독소'같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경쟁’. 이 두 글자를 제외하면 현대사회에서 무엇이 남을까? 현대사회에서 승리의 결실은 ‘성공’과 ‘부’를 통해 나타난다. 경쟁에서 성공하면 부와 명예가 뒤따르지만,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은 타인에게 존중받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책망하게 된다. 승자만큼이나 패자 역시 '노력신앙'에 완벽히 젖어들어 있기 때문이다. ‘네가 나만큼 노력해봤어?’라는 말에 패자는 반박의 논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승자는 자신의 ‘노력’을 보다 대단한 것으로 포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승자에게 있어 경쟁과정은 오히려 치열하게 그려질수록 좋다. 노력의 무게와 비례해 성공의 정당성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피땀 흘려 노력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어. 내겐 성공의 결실을 누릴 자격이 있어. 그들이 성공 못한 이유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야.”라고 말하기 위함이다. 그 결과 큰 성공을 거둔 유명인의 말은 굉장한 무게를 지니는 반면, 일반인의 말은 존중받지 못한다. 존경을 넘어 경외의 대상이 될만한 성취를 이뤄낸 일부 승자를 제외하면 무시당하는 경쟁사회에서 일단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라는 인문학적 성찰이 환영받을 이유가 없다.
자연스레 인문학은 오히려 유명인의 전유물이 되었다. 유명인이 인문학을 말하고 사회에 대한 통찰을 이야기하면 대중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반대 입장에 선 사람이 인문학을 말하거나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면 "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해?"라는 눈치밥만 먹는다. 때로는 "저 사람 사회생활 힘들겠네"와 같은 동정섞인 우려의 시선을 받기도 한다. 그들이 가진 사고의 배경에는 '나도 조용히 입다물고 사는데'라는 인식도 존재한다.
하지만 인문학은 먹고 살 걱정 없는 사람들이 분위기 좋은 카페나 테라스에서 차 한잔 할 때나 필요한 ‘교양’ 같은 것이 아니다. 멋들어진 인문학 고전 한 구절을 읊으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인문학의 용도는 아니다. 오히려 인문학은 일반인에게 더욱 절실하다. 단지 학문 분야로서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나와 타인을 바라보고,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사회로 뻗어나가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 인문학이다.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당연함의 이유를 찾아나가는 것이 우리 스스로 사회의 비틀림을 교정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왜?'라는 질문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 배경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대인들에게 그와 같은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을만한 여력이 없는 것에 있다. 또한 우리를 그토록 여력없게 하는 과열된 경쟁사회의 비틀림이 있다. 경쟁사회에 대한 일반인으로서의 진지한 성찰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음을 서두에서 밝히며, 독자 역시 우리가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며 이 글을 함께 읽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