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세기 경 고대 그리스에는 '소피스트'라 불리는 철학사상가이자 교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그리스가 페르시아 전쟁 승리 후 큰 번영을 누리던 시기로, 아테네는 그리스의 중심지로서 모든 면에서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소피스트는 그런 아테네를 중심으로 뛰어난 웅변술을 바탕으로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던 지식인 계층이었다. 그들은 보편적인 법과 제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인간이 만들어낸 어떠한 사상, 윤리, 기준도 불완전하다는 회의를 불러일으켰고 같은 맥락에서 상대주의적 잣대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다.
소피스트는 '클렙시드라'라는 우물 긷는 통 아래쪽에 구멍을 내어 그 속에 담긴 물이 모두 쏟아지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상대방을 설득했다고 한다. 클렙시드라에 담긴 물이 모두 빠져나가는데 6분 정도가 걸렸는데, 이처럼 짧은 시간동안 말로써 타인을 설득할 수 있었다면 그 말솜씨는 최면처럼 강력했을 것이다.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이 현대에도 존재한다면 '어떤 재판이든 승소하는' 세계 최고의 변호사나 'TED 조회수 10억 뷰' 강연가로 이름 높을지도 모른다.
만약 보편적 진리가 존재할 수 없다고 가정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이고 정당하다고 믿는 어떤 것이 '상대적'으로 중요해진다. 그런 측면에서 소피스트에게는 높은 설득능력이 중요했다. 보다 많은 이들을 자신의 사상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수록 상대적 진리로서 우위에 서기 때문이었다. 소피스트는 설득의 주 무기로 언변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그 결과 화려하고 유창한 말솜씨를 구사하기 위해 힘썼으며 이는 '수사학' 발전의 촉매가 되기도 했다.
아무튼, 그와 같은 화려한 언변을 주 무기로 고대 그리스에서 영향력을 떨치던 소피스트에게, '자기 성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함부로 말을 내뱉지 말아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여러모로 귀에 거슬렸을 것이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마치 소크라테스의 비난처럼 들리며 그들의 자존심을 긁었을지 모른다. 명망 높은 자의 자존심은 때때로 상대방의 목숨과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해지기도 한다.
소피스트는 현대의 ‘전문가’ 계층으로 볼 수 있다. 소피스트의 상대주의적 사상체계와 마찬가지로 전문가는 각각 영역별로 서로 다른 학문적 기틀을 배경으로 한다. 이 두 계층의 차이는 달라진 시대적 환경에 기인한다. 소피스트가 자신의 사상을 화려한 언변으로 설득해 나갔다면 현대의 전문가들은 말과 글, 기술 등 다양화된 수단을 통해 자신 또는 자신의 영역의 필요성을 증명해 나가는 식이다.
각자의 의견을 개별적으로 들어보면 어떤 전문가의 말도 틀린 말이 없다. 하지만 서로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좀처럼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 그들의 말은 각자에게는 맞지만 서로에게는 틀린 것이 된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경쟁화'된 전문가 영역의 문제가 존재한다.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보편타당한 절대이론이 등장할 수 없는 이상 전문가에게 있어 자신이 구축해온 전문영역과 그간의 연구결과는 그에게 있어 진리로 여겨진다. 물론 기존에 추구하던 이론의 영역에 대한 오류를 과학적, 논리적으로 명백히 증명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내민다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추구하던 진리를 내려놓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다. 전문가는 각자의 영역별로 수 많은 근거들을 축적해왔고, 그 근거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논문 하나만 해도 수많은 근거자료를 활용하며, 각각의 근거자료는 타자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따라서 당사자가 수행한 연구결과에 대한 부분적 오류는 지적할 수 있어도 그가 인용한 연구결과를 모조리 잘못되었다고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해당 영역의 전문가가(아마도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자신이 파고들던 영역의 근본적 문제점을 파해치기 위해 그 간의 이론 모두를 뒤집어 엎는다 해도 평생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하물며 다른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이 해당영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가능할리 없다. 그런 측면에서 현대사회의 전문영역별로 존재하는 상대적 진리는 현실적으로는 '절대진리'로 여겨지고 있기도 한 것이다.
더구나 만약 타 영역에서 위 형태의 '공격'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싸움을 걸어온다면 해당영역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손 놓고 당하고 있을리 없다. 각자의 영역은 독특한 학문체계를 구성하는 한편 필요성과 효용성 등을 놓고 경쟁구도를 형성한다. 어떤 학문이 사회에 더욱 필요한지,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등에 대해 경쟁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산분배와도 연결된다. 국가에서 장려하는 학문은 그만큼 연구지원도 활발하고 해당영역에 대한 인프라도 확충되기 마련이다.
'가치 있는 삶, 인간다운 삶, 혹은 행복하고 좋은 삶’과 같은 주제로 말을 꺼내 본 사람이라면 청자의 반응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반응은 고리타분한 이야기 그만하라며 외면하고 무시하는 반응이다. 두 번째 반응은 “너 요즘 좀 살만한가 보다?”와 같이 조롱과 냉소가 절반쯤 섞인 반응이다. 마지막 반응은 "그런 생각할 여유 있으면 자격증이나 따고 TOEIC 점수나 올려!"와 같은 잔소리들이다.
현대사회에서 짧은 시간에 누군가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은 전문가라고 해도 어려울 것이다. 그 배경에는 고대와 현대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의 개방성과 접근성, 교육 수준 등의 차이가 존재한다.
고대는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아 ‘책’이 매우 귀했고, 지식에 대한 접근이 가능한 계층도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고대 그리스와 같은 계급사회에서 ‘시민’은 참정권을 가진 소수의 특권계층을 의미했고, 교육의 기회는 대단히 한정되어 있었다. 시민의식을 함양하고 잘 교육받은 일반인은 오히려 통치하기 어려웠다. 그들에게는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성실하고 복종적인 국민이 선호되었다. 그런 이유로 '교육통제'는 일종의 통치수단이었다.
현대는 고대 그리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교육의 평등이 이루어졌다. 고등학교 교육까지는 의무교육으로 자리 잡았고, 그 후로도 대부분이 '대학'으로 대표되는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고 있다. 지식과 정보 활용에 있어서도 개방성과 편의성이 대폭 상승했다. 교육은 국가적으로 장려되고, 도시 곳곳에는 수만 권의 책이 비치된 도서관이 설립되었다. 어디 그뿐일까. 특별히 교육받지 않은 사람도 짧은 네이버 검색만으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철학(philoshphy)'이라는 단어가 그리스어로 '사랑하다'라는 의미의 'philo'와 '지혜'를 뜻하는 'sophia'에서 유래되었다는 것도, 그래서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 곧 '철학'이라는 것도 네이버 검색 한 번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인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소피스트가 일반인을 손쉽게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사이의 지식 격차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비 시민’ 계층에 비해 현대인들이 충분히 교육받았으며 지식수준 또한 상향평준화를 이룬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나 선동으로 피해를 입는 이들이 꾸준히 발생한다. 분명 도덕이나 윤리, 역사교육을 충분히 받았음에도 아동학대나 혐오범죄와 같은 '비인간적인 범죄'는 사라지지 못했다. 사회는 분열되고 정치는 흑색선전과 비방이 난무한다. 검찰개혁에 대한 반발로 한 일가가 쑥대밭이 된 것은 이제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니다. 어째서 교육의 총량이 증가되었고, 법질서 유지를 위한 강제력이 충분히 행사되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점점 '인간다움'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기꾼은 부의 증식이나 좋은 기회, 혹은 급격한 변화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언론은 정보를 왜곡하거나 사실을 일부만, 오해나 착각을 일으키기 쉬운 방식으로 편집함으로써 본질을 흐리기도 한다. 평균적인 지적 수준이 높아진 만큼 설득의 방식도 고도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이용당하지 않고 평범한 삶의 경계를 지켜내기 위해선 ‘나는 왜 그런 말에 휘둘리는 걸까?’ '그들은 왜 타인을 이용하려 할까?'와 같은 질문을 통해 원인을 스스로 찾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우리는 왜 이토록 경쟁에 골몰하게 되었는가?'와 같은 질문 역시 사유의 과정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