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적 사고는 가장 현실적인 사고 과정이다.
개념과 대상을 일치시킨다는 말은 뜬 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린다. '도대체 도야가 무슨 말이야? 개념은 뭐고 대상은 또 뭐야?'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철학에 대한 오해는 용어의 생소함에서 비롯된다. 분명 한글로 쓰여있는데 발음 외에는 읽어지는 것이 없다. 의미 파악이 어려울 뿐 아니라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 이유로 성찰에 관련된 메시지들은 다소 고리타분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당면한 현실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쓸데없는 데 허비할 시간에 일터에 나가 한 푼이라도 더 벌어오는 것이 서로에게 이로울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주변인으로부터도 실제로 비슷한 피드백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철학과 인문학의 메시지는 그 무엇보다도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철학에서 말하는 것들은 우리 모두가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생각들이며 이미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하고 있는 생각들이기도 하다. 통찰을 들어 꿰뚫어 보는 것이라 칭하기도 한다. 왠지 초능력자나 할 수 있는 대단한 능력 같고 나와는 관계없는 능력처럼 들린다. 그렇지 않다. '내부(in)'라 함은 껍데기 안에 존재하는 것, '본질'을 뜻한다. '본래의 목적, 본래의 의미'를 성찰적 사고를 통해 살펴보는 과정은 우리의 시야(sight)를 사물의 본질로 접근할 수 있게 해 준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겔은 도야의 과정, 즉 성찰의 과정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개념과 대상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헤겔이 언급한 문장 안에 통찰에 대한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 위의 문장을 "개념과 대상을 일치시키는 것은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바꾸어보면 의미 해석이 쉽다. 개념과 대상을 일치시키는 과정은 '성찰'이고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이 '통찰'이다. 더 쉽게 풀이하면 '성찰의 과정을 통하면 통찰에 다다를 수 있다'가 된다. 뜻 자체는 전혀 어렵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것이 만들어진 '본래의 목적'을 살펴보는 것이다. 아래의 과정을 함께하면서 성찰이 특별히 어려운 것이 아니며, 그 과정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 문제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2020년 3월 25일부터 본격 시행된 '민식이법'은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9세 남아 '김민식'의 이름을 따 제정된 법안으로 스쿨존(어린이 보호구역)에 과속단속카메라, 과속 방지턱, 신호등 설치 등을 의무화하여 과속을 방지하고, 스쿨존 내에서 교통사고 발생 시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이 법안의 본질을 보는 것은 법의 제정 목적을 자율적으로 파악해보는 것이다.
1단계 : 본질과 껍데기를 구분해서 생각하기
민식이 법의 제정 목적은 어린이, 즉 '약자에 대한 보호'다. 그 외의 것들, 제한속력이 몇 km인지, 단속에 적발 시 벌금은 얼마가 부과되는지, 교통사고 발생 시 얼마나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지는지 등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껍데기에 해당한다. 법을 인식하는 올바른 관점은 목적에 집중하는 것이다. 차량 운전자로서 스쿨존에 진입했을 때 필요한 자세는 30km/h 이하로 달리는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본질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것은 스쿨존으로 지정된 도로가 언제든지 아이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다칠 수 있는 도로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본질을 이해하고 나면 '과속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과속 방지턱이 많기 때문에,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처벌이 강력할 수 있기 때문에'와 같은 껍데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이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다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주의와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여기까지 다다른 사람은 굳이 법이 없더라도 '약자에 대한 보호'라는 기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성찰의 과정은 이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의 과정이다.
2단계 : 문제의 원인을 한층 더 파고들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성찰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이 우리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조급하게 만드는가?' 이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하면 된다. 민식이법이 제정된 원인은 스쿨존에서의 참담한 교통사고였다. 교통사고의 원인은 운전자의 부주의와 방심에도 있지만 그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거나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한 유무형적인 환경과 조건에도 있다. 부주의한 운전자는 개인의 영역이지만 그가 처한 조건과 환경은 사회의 영역이다. 사회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도롤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더 빨리, 더 신속하게, 최고의 효율로, 최고의 성과를' 이와 같은 메시지를 경쟁사회는 끊임없이 강조한다. 학교 앞이 아직 충분히 주위를 살피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이 오가는 길목이라는 것을 운전자들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운전자들이 속도를 줄이지 못하는 것은 그가 속도광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아이들을 볼링핀처럼 치고 지나가고 싶어 하는 사이코패스여서가 아니다. 그들이 도로로 갑자기 튀어나오는 아이들에게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은 운전 중에도 받아야 하는 긴급한 비즈니스 통화 때문일 수도 있으며, 한시가 급하게 어딘가를 향해야 하는 조급함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을 때 돌아올 피해나 그가 타인에게 빼앗길 성과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처벌의 강화는 개인에게 더 큰 책임을 지우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개인의 책임, 단지 해당 운전자만의 책임일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점점 더 많아질 때 보다 좋은 사회,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
3단계 : 사회적 통념에 이유를 달아보기
또 다른 성찰의 방향은 '약자에 대한 보호'라는 사회적 통념에 이유를 달아보는 것이다. 이기주의로 변질된 현대 개인주의는 이런 메시지를 보낸다. '나 하나도 살기 바쁜데 내가 다른 사람 걱정까지 해야 해? 그런 건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 아냐?' 정말 그런가? 이것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불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조금씩 답이 보인다. 인간이라는 단어 자체에도 답이 있다. '인(人) 간(間)'이라는 단어 속에는 이미 사람 '사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인간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회, 즉 관계와 더불어 살아갈 수 없다면 인간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회 구성원 중에는 강자도 있고 약자도 있다.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어른이 아이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과연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다음 세대로 이어질 씨앗이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스러져버린다면 앞으로의 세상은 어떻게 될까? 우리가 사회와 이웃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명확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 또한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미 존재하는 '인간의 본질'을 끄집어내는 성찰의 과정일 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