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회 - 5

능력의 전장에서 살아남기

by 작가 전우형

앞서 민식이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과정을 통해 성찰의 단계를 살펴보았다. 그중 두 번째 단계는 겉으로 드러난 문제의 이면에 존재하는 깊은 원인을 탐구하는 단계였다. 스쿨존에서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운전자는 없다. 스쿨존에서 조심성 있게 운전해야 함을 당위적으로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자들이 그것을 실천의 단계로 옮기지 못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원인은 속도를 줄여야 함은 인지했지만 정도에 대한 고찰이 충분하지 않았을 수 있다. 즉 어느 정도로 속도를 줄이기는 했지만 갑자기 뛰어든 아이에게 상해를 입히기 전에 멈출 수 있는 충분한 안전속도로 감속을 하지 않았을 경우다. 이는 실험과 측정을 통해 적절한 안전속도를 법과 제도에 반영하면 될 문제다. 두 번째 원인은 스쿨존에 대한 홍보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운행 중인 도로가 스쿨존임을 운전자가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없는 환경적 문제가 있다면 해당 구역이 스쿨존임을 운전자에게 명확히 인식시키기 위한 도로상의 각종 표지를 강화하는 방법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 세 번째 원인은 운전자가 스쿨존임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고 안전속도 역시 충분한 검증을 거쳐 지정되었음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경우다. 만약 이것을 운전자 개인의 양심과 윤리, 도덕성, 혹은 인내심, 운전습관의 문제로 본다면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이 해답이 될 것이다.


세 번째 원인을 탐색하는 단계에서 몇 가지 고민이 더 필요하다. 우선 처벌 강화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인간의 자율성을 해친다는 점이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질수록 인간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삶의 영역은 좁아지기 마련이다. 이는 인간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것보다 스쿨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교통사고 예방 쪽으로 저울추가 기운다면 감내해야 할 부분이긴 하다. 여기에는 사회적 합의나 필요성에 대한 공통된 인식 등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처벌 강화에 방점을 찍기 전에 이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영역에 국한된 문제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어떤 사회문화적 환경이 우리를 그토록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내게 했는가? 무엇이 우리를 더 이상 참거나 기다릴 수 없도록 조급하게 만들었는가? 스쿨존에서조차 신호를 기다리고 속도를 줄일 수 없게 했는가? 이런 탐색은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다. 때로는 답을 찾아내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경쟁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이처럼 보다 깊은 원인을 스스로 탐색하고 공부해 볼 필요가 있다.


왜 경쟁에서의 승리는 '미덕'이 되었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사회의 무의식 중 하나는 '경쟁'이다. 경쟁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능력이 있지만 기회가 없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분개, 과거 신분제 사회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다. 그 결과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성은 중요시되지만 연대와 협력을 통해 함께 살아갈 구성원들이 어째서 경쟁의 대상이 되었는가에 대한 도덕적 의문은 힘을 잃어버렸다. 능력주의 경쟁사회는 기회의 평등은 이야기하되 그 결과에서 비롯된 차별은 오히려 필요악의 관점으로 인식한다. 평등한 기회가 주어졌다면 결과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라 말한다. 때로는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개척한다."는 친숙한 말로 포장되기도 한다. 경쟁사회는 '승자독식'을 정당화한다. 그렇게 승자의 자리에 오른 이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사회가 '고진' 끝에 '감래'를 도출하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함께 살펴보자.


하버드대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며 한국에 정의 열풍을 몰고 왔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의 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승리자다. 그러나 상처 입은 승리자다."라고 말한다. 더불어 자신이 가르치는 하버드대 학생들을 보며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오랫동안 불타는 고리를 뛰어 통과하는 일을 거듭해왔고, 그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많은 아이들이 아직도 분투하고 있다. 생각하고, 탐구하고,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가치 있게 살아갈 것인가 숙고하면서 대학 생활을 보내지 못하고 싸우고 또 싸운다. 놀랄 만큼 많은 아이들이 정신 건강에 이상을 겪고 있다. 젊은이(20~24세)의 자살률은 2000~2017년 사이 36퍼센트 늘었다. 지금 그들은 살인보다 자살로 더 많이 죽어간다."


센델 교수는 또한 이처럼 언급하기도 한다. "완벽주의는 능력주의의 대표적인 병폐다. 젊은이들이 끝도 없이 학교, 대학, 직장에 의해 선별되고, 구분되고, 등급이 매겨지는 과정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는 현대 생활의 한복판에서 싸우고, 실적을 내고, 업적을 이루도록 강요한다." 또한 이렇게 말한다. "자녀의 인생을 능력주의적 성공으로 몰고 가려는 부모들의 집착은 심리학적으로 따져봐야 할 문제다. 특히 대입을 앞두고 있는 10대들에게 그렇게 가혹한 강요를 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그는 심리학자 매들린 레빈의 말을 인용한다. "겉으로는 성공적인 여러 유복한 가정의 10대들이 사소한 문제에 흥분하며, 우울하고, 불안하고, 분노에 차 있었다. 부모, 교사, 코치, 동료의 말에 지나치게 복종적이었으며 어려운 일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문제까지도 남들의 말에 무조건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경제학자 마티아스 되브케와 파브리치오 질리보티가 과보호 학부모의 등장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한 대목도 언급한다. "과도하게 개입하고, 막대한 시간을 투입하며, 통제적인 육아 방식을 통해 지난 30년 동안 널리 퍼진 방식의 부모 노릇은 불평등이 증가하고 교육으로 인한 보상이 커진데 따른 합리적 대응이었다. 비록 여러 사회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결 같이 부모의 개입이 심해지긴 했으나, 가장 심했던 곳은 불평등이 가장 크게 두드러진 곳이었다. 가령 미국이나 한국 같은 나라였다."


물론 이는 미국 정치철학자의 관점일 수도 있다. 한국의 현실과는 다소 괴리가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그가 언급하고 있는 미국 사회의 문제가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와 크게 동떨어져 보이지는 않는다. 경쟁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나는 동안 아이들의 가장 바람직한 반응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그런 무의식적인 반응은 부모의 노력으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부모의 사랑과 칭찬을 받기 위해 아이들은 더욱 경쟁구도에 완벽하게 녹아들기 위해 노력한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그려진 모습이 일부 비약과 과장을 포함했다고 하더라도, 시스템을 철저하게 이용해 승자가 되는 과정은 현대사회에서 칭찬받고 격려받을 일이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아이가 부모에 대한 원한을 키우거나 어쩔 수 없는 죽음으로 친구를 몰고 가게 되더라도 말이다. 아이들이 이토록 경쟁시스템에 녹아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탓에 다른 방향으로의 생각과 탐색,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질문을 놓치거나 경시하고 만다. '나는 왜 옆사람을 이겨야 하는 걸까? 사회가 100m 달리기 시합이 열리는 경기장은 아니잖아?' 혹은 그런 질문을 가지려 하다가도 모진 질책에 입을 꾹 다물고 만다. "쓸데없는 생각할 시간에 공부나 해!"


경쟁의 윤리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배려나 연대의 윤리와 배치된다. 넘어야 할 산으로 바라보는 이상 그들은 밟고 넘어서야 할 존재일 뿐 함께 걸어갈 존재는 아니다. 경쟁사회에서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변질되는 것은 별로 이례적인 흐름이 아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럽고 타당하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경쟁에서의 승리를 미덕으로 보는 관점이 '상식의 부재'로 이어져 사회 안에서 무자비한 비틀림을 양산하는 것 또한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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