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 노력의 가치 하락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사회. 역량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오히려 그런 사회가 더 좋은 사회, 인간에게 더욱 필요한 사회가 아닌가? 경쟁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뿐 아니라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에도 이바지한다. 파이를 키워서 적절히 분배한다면 오히려 공공선(Common good)에도 더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 적절한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복지국가 원리를 도입하거나 세율을 조정하는 등 제도 정비를 통해 불평등 감소에 힘쓰면 될 일 아닌가? 자유시장경제체제 내에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인간의 이기심은 시장 내에서의 경쟁과 시너지를 발휘해 원가 절감, 품질 향상, 공급 가격 하락에 힘쓰도록 자극한다. 그 결과 소비자는 같은 금액으로 보다 많은 재화를 손쉽고 편하게 누릴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이기심을 자극해 모두를 이롭게 한다면 그것이 뭐가 문제인가?
치열한 입시 경쟁을 통해 아이들의 교육성과를 촉진하고 고등교육 진출률을 높임으로써, 그리고 높은 수준의 인재를 모아 그들 사이의 경쟁과 시너지를 통해 전문지식을 갖춘 인재풀이 커질 수 있다면 그 결과는 국가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잘 교육받은 전문인력이 각자의 직업현장에서 업무효율을 높이고 능동적인 일처리를 거듭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걸맞은 대접을 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처우개선과 인센티브 향상에 힘쓴다면, 그것은 사회 전체에 있어서도 오히려 강점이 되는 것 아닌가?
경쟁에 대한 옹호는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경쟁의 장점이 성장의 촉진과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 그리고 소비자로서의 국민의 위치 상향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경쟁의 역기능은 순기능을 넘어선 지 오래다. 경쟁사회의 본질을 보려면 '공공선, 모두가 잘 사는 사회, 모두에게 더 이득이 되는 사회' 등으로 곱게 포장한 경쟁사회의 껍데기를 풀어헤쳐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시민으로서 무시해서는 안될 경쟁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기도 하다.
경쟁은 노력의 총량을 증가시킨다. 또한, 단위 노력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평균적인 불만족 수준을 상승시킨다. 즉, 피나는 노력을 해도 정작 나에게 만족할만한 무언가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는 더욱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삶 곳곳을 보라. 힘써 일하고, 과중한 노동시간에 힘들어하는 한국인들은 점점 더 자신의 노동의 가치, 즉 '생산자'로서의 가치를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새벽에 출근하고 다시 새벽에 퇴근하는 해가 없는 생활을 하며 잠든 아이의 얼굴조차 보기 어려운 삶을 살아가도 사회에서 느끼는 자신의 처지는 특별히 달라지는 것이 없다. 어떻게 해야 삶이 나아질 수 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이것이 과연 '공공선'이 실현되어가는 모습일까? 더욱 치열하게 살지 못했던 개인의 책임일까? 어느 정도까지 분투해야 경쟁사회에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노력의 차이가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시키는 진지한 원인이기는 한 걸까? 이것을 패배자의 '피해의식'으로 치부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것일까?
이런 현상은 전편에서 언급한 대학 졸업장의 전반적인 가치 하락과 같은 맥락을 보여준다. 입시경쟁의 결과로 형성된 일부 명문대학의 높은 이름값은,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에 의해 그 외의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을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든다. 만약 그들이 당장의 대학생활에서 그런 비참함을 실감하지 못하더라도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치열했던 대학생활이 훗날 '학벌'이라는 두 글자로 무시당하는 아픔을 경험한다. 취업문턱의 상향으로 학생들은 대학에 가는 이유도 모른 채 취업 스펙에 '대졸' 혹은 '00 대학 00 학사' 한 줄을 추가하기 위해 사회진출의 출발점에서부터 학자금 대출이라는 커다란 빚을 져야 한다. 만약 '블라인드 테스트'가 정착되어 취업에서 '학벌'이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거나, 대학 등록금을 국가에서 모두 부담한다면 이런 문제는 사라질 수 있을까?
취업에 필요한 것은 직업교육이다. 직업교육은 대학교육과 동일시되고 있다. 학생들은 부모세대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인생을 공부에 투자해야만 하지만 그런 노력은 점차 덧없이 느껴진다. 그런 느낌은 힘겨운 취업관문을 통과해 사회로 진출해도 특별히 나아지지 않는다. 대학 전공이 직업으로 이어지는 것이 30%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나머지 70%는 무엇을 위해, 왜 대학에 가야 했는가? 이것이 과연 개인의 선택이며 책임의 영역일까?
여전히 대학은 선택의 영역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졸자와 비대졸자의 처우가 사회 내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이상 대학은 '절대로 혹은 미래의 실망을 감수하더라도 도저히' 갈 수 없지 않은 한 모두가 가야만 하는 '의무'와 같은 곳이 되어버렸다. 고졸자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최소한'의 대우를 받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경쟁의 결과 초래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유발 하라리가 농업혁명을 들어 '인류 최대의 사기극'이라 칭했던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