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가속화

모든 종류의 힘이 양심의 통제에서 벗어날 때

by 작가 전우형

세상의 문제는 파고들수록 복잡하다. 사회 문제는 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단지 사실관계의 입증을 떠나 양심과 도덕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 복잡하고 심오한 문제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는데 이것은 다분히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복잡 다변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기 위해 법의 테두리를 넓히는 것은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물을 과도할 정도로 촘촘하게 짜면 잡아선 안될 치어까지 그물에 걸려들기 마련이다.


넓고 촘촘한 법의 그물망은 악용하기도 좋다. 먼지 털이식으로 법을 적용하면 죄 없는 사람을 범죄자로 둔갑시키기 딱 알맞다. 무엇이건 과도해지면 부작용을 발생시키고 그것은 법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제 죄 없는 사람은 없다. 아직 적발되지 않은 사람이 남아있을 뿐. "범법행위 저지르지 않고 깨끗하게 살았으면 아무 문제없는 것 아닌가요?! 잘못을 저지르고도 뉘우치기는커녕 남 탓만 하는 모습이 꼴불견이네요." 이런 입바른 소리에도 반박할 말이 없다. 그래서 결국 하는 말이 "그럼 당신은 깨끗한지 한 번 털어볼까요?"다. 정치판이 서로 누가 덜 더러운지를 따지고 흑색선전과 비방이 난무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법은 인간의 내면을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시민의 양심을 법에 위임해서는 안된다. A가 사기를 계획했어도 실제 사기행각을 벌이지 않았다면 그에게 어떤 죄를 물을 수 있을까? 행위가 없으면 처벌도 없다. 그것이 '보이는 세상'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법의 한계점이다. 하지만 양심과 도덕의 잣대는 남을 속이고 부당이득을 취하려 했던 자기 스스로를 평가하고 반성할 수 있다. 상대방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을 음모를 꾸미던 자신의 드러나지 않은 현실을 대면하고 미래에 저지를 범죄로부터 자유를 찾을 방법은 오로지 자신의 도덕적 역량을 강화하는 방법뿐이다.


‘걸리기 전에 그만둬서 다행이었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부정의로 기울 수밖에 없다. 법에 의존할수록 사회는 비틀어지고 만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처럼 미래의 범죄를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그릇된 마음은 그 시스템마저 악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 방해 요소를 제거하려 한다. 결국 시스템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감당해낼 수 없다.

법의 필요와 불요를 논할 이유도 여유도 없다. 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법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로 인식하는 것과, 스스로의 양심과 도덕의 잣대까지 법에 명시된 문구 속으로 위임하는 태도는 구분이 필요하다. 우리가 경계할 태도는 후자다.


양심과 도덕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모든 종류의 힘은 강함에 비례해 위험성도 커진다. 무법자에게 탈취당한 탱크 1대는 도로 위의 수많은 자동차를 납작한 철판으로 만든다. 그처럼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지능범이 되어 고도의 사기행각을 벌이고, 뛰어난 무도가는 강도나 깡패로 둔갑한다. 물건 만드는 재주는 무기 생산에 쓰이고, 뛰어난 말솜씨는 약자를 현혹해 그들의 인생을 망가트리고, 가르침에 능한 자는 세뇌를 통해 타인을 의도대로 이용하고 버린다. 때때로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 사람을 가장 효과적으로 살상할 수 있으며, 가진 자의 비양심은 고리대금업으로 없는 사람을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권력이 적폐가 되고 권위가 오만으로 변질되는 메커니즘도, 모든 수단이 결국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것과 같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이 바로 서지 못하면 사람이 만들고, 행하는 모든 것은 함께 흔들리기 마련이다. 경쟁사회에 대한 경계 역시 같은 맥락이다. 경쟁은 수단이다. 수단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경쟁을 악용하고자 하는 자유의지, 경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문화적 환경, 경쟁의 부작용을 덮으려는 마음이 악의 가속화를 초래한다. 생각은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을 진리로 여기는 세상에서 생각은 언제나 선함을 위장할 수 있다. 다만 생각의 증거는 마음에 남는다.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인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고, 그런 인간다움이 모인 사회라면 조금 더 따뜻하고 살만한, 우리가 능히 정의롭다고 부를만한 모습으로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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