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그림을 흔들고

나만의 북극성을 찾아야 할 시간

by 작가 전우형

시간의 나룻배는 방향을 잃고 표류한다. 그래. 잠시 걸음을 멈추고 찾아보자. 잃어버린 북극성을.


바람이 그림을 흔들고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대지를 촉촉이 적신 빗방울이 하늘로 돌아가려 할 때 나는 왠지 목이 타는 것 같았다. 바싹 마른 갈라진 얼굴이 메마른 마음 같아서. 깜박이는 녹색 불이 건널 시점을 놓친 느린 발걸음을 탓하는 것 같아서.


조급한 마음은 갈증을 더하고 자꾸만 다른 이의 뒷모습을 힐끔거리게 한다. 저기로 건널걸... 덩그러니 선 채로 길을 건너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만 뒤처진 걸까? 참새 한 마리가 유유히 머리 위를 지나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참새도 나보다 먼저 가는구나. 하나, 셋, 일곱, 열... 점차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차들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뒤꽁무니에 바싹 붙어 클락션을 울려대는 사람들. 저렇게 쪼아대면 더 빨리 갈 수 있을까? 나는 신호등에다 대고 소리라도 질러볼까...?


커피가 차갑다. 따뜻했던 커피가 어느 틈에 식어버린 걸까. 사소한 온기를 느낄 틈도 없이 넌 무엇하느라 그리 바빴냐고, 내가 나에게 묻는다. 글쎄? 이런 질문에 답이 있었을까. 난 무엇을 했나. 방황과 공황 그 어디쯤. 나는 어딜 가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섰을까. 길을 건너가면 만날 무엇을 기대하고 꺼진 녹색불을 아쉬워했나.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린다. 기다리던 이들이 하나둘씩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떠난 빈 공간은 다른 이들의 기다림으로 채워진다. 빈 정류장. 오고 가는 버스. 한 사람이 시야에 맺힌다. 물끄러미 버스를 바라만 본다. 바라보기만 할 거면 왜 거기 그러고 있는 걸까. 타지도 않을 버스를 바라보고 있던 그는 다만 그늘이 좋다고 했다. 가끔 버스가 만들어주는 그늘이. 잠깐의 그늘이 하루가 시원하게 해 준다고. 버스가 일으키는 바람이 좋다고.

매연 섞인 바람이 뭐가 좋을까? 마음의 목소리를 들은 듯 그는 세월이 왔다 가는 소리 같단다. 버스는 사람들을 싣고 어딘가를 향하지만, 나는 갈 곳이 없어 그저 머문다고. 기다리는 사람 틈에 있으면 조금 덜 외롭단다. 왠지 내가 기다리던 이를, 나를 기다렸을 이를 세월이 데려다줄 것 같아서. 그만큼 갔으면 그만큼 오지 않겠냐며. 버스야 더 많이, 더 자주 오렴. 말라버린 마음에 잠시 그늘이라도 지게. 외로운 마음에 바람이라도 불게.


적막이 싫어 세상의 문턱에 걸터앉은 그를 보고 있으니 그만 내 고민이 우습게 느껴졌다. 혼자가 외로운 사람 앞에 나는 그저 조급해하기만 했다. 외로움을 몰랐다. 함께 하던 시간들에서 혼자이길 바랬고, 혼자가 아닌 시간들 속에 혼자이길 꿈꿨다. 내게도 사랑했던 시간이 있었다. 달려도 숨이 차지 않았고, 어떻게든, 어디로 가든 결국 사랑을 찾아갔던 시간들. 사랑을 향할 때는 나침반도 내비게이션도 필요 없었다. 사랑의 에너지는 나를 이끌었다. 조금은 늙어버린 지금 나는 지금 무엇을 사랑할 수 있는가? 혹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여기 조금, 저기 조금 떼어놓은 마음의 조각 탓에 바람은 허공을 맴돌고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별은 언제나 거기 있었지. 고마워. 언제나 그곳에 있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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