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고 보잘것없는 공간에 묶인 채 오도 가도 못하는 화초들이 불쌍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이나 나나 무언가에 매여있기는 매한가지였다. 물을 뿌려주는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저 시름시름 앓다가 메말라 죽는 것도 서로 다를 바 없었다. 화초에 물을 주는 까닭은 누렇게 변색된 잎사귀와 함께 파릇파릇했던 생기가 소멸되어가는 화초의 모습에서 어떤 기시감을 느껴서인지도 모른다. 내가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어찌 운명뿐일까마는, 이제는 죽었나 싶다가도 물을 주고 나면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 어느덧 생의 몸부림을 여실히 내비치는 화초의 모습에서, '무지'라는 절망을 이겨낼 작은 빛을 보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뜻 무가치해 보이던 별 볼 일 없는 나의 시간이 그 순간이나마 값진 것이었다고 스스로 되뇔 수 있는 것 같아서.
화초는 가만히 그 자리에서 죽음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의 생존전략은 '어떻게든 살아남기'와 '씨앗 널리 퍼트리기' 이렇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전략을 위해 화초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한다. 생존에 필수적인 뿌리와 줄기 일부를 제외하고는 과감히 에너지 공급을 끊어버리는 식이다. 그리하여 겉보기에는 완전히 메마르고 시들어버린 것 같은 화초도 약간의 물기만으로도 끈질긴 생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씨앗 널리 퍼트리기' 전략은 또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움직일 수 없는 나를 대신에 씨앗을 퍼트릴 대체제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꿀벌이든, 나비든, 바람이든 그 무엇이건 간에 싹을 틔울 수 있는 가능성의 대지로 씨앗을 옮겨줄 수만 있으면 된다. 동시에 씨앗의 경량화와 패키징 전략을 짜야한다. 무엇으로든 운반이 용이하도록 씨앗은 가급적 작고도 가벼워야 하며,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싹을 틔울 수 있도록 가장 기초적이고도 필수적인 요소를 탑재해야만 한다. 어미의 품을 떠나 혈혈단신 황량한 곳에서 홀로 생존해야 하는 화초의 씨앗은 또 다른 의미의 긴 겨울을 준비해야만 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다양한 맛과 향, 식감을 선사하는 과일 역시 화초의 치열한 생존전략이 빚어낸 결과물 중 하나다. 무수한 자연의 생명은 각자의 자리에서 보잘것없는 삶을 이어나가는데 급급한 듯 보이지만, 그들의 생존에 대한 절박함과 처절함이 아니고서야 인간이 누리는 많은 것들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 인간은 그들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는 포악한 존재에 불과할지도. 그러니 지금 이렇게 살아있음에 오롯이 감사할 수밖에.
한차례 쏟아진 소낙비가 달궈진 아스팔트를 냉각하고, 아지랑이처럼 피어난 물보라는 간혹 무지개를 선보인다. 목적지를 향해 바삐 걸음을 옮기는 자동차의 네 바퀴가 물살을 가르고, 시원하고도 날카로운 그 소리가 조용한 노랫소리를 비집고 귓속을 파고들 때면 나도 모르게 지그시 눈을 감고 미묘한 하모니에 귀를 기울이고 만다. 한여름의 소나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서늘한 빗소리, 굵은 빗방울이 천막을 두드리는 둔탁한 울림음, 빗줄기를 헤치고 달리는 자동차의 노면 소음, 그리고 이제는 존재감을 잃고 주변 소음이 되어버린 카페 내부를 누비던 음악소리까지. 비 오는 날에만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모든 현재의 고민을 밀어내었을 때, 어느새 그곳은 천국으로 변해 있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내리는 빗 속에 몸을 맡긴다. 쏟아지는 물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빙글빙글 돌아본다. 커다란 통유리에 비친 모습은 영락없이 비에 젖은 생쥐 꼴이었지만 오늘따라 부끄럽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하나씩 바깥으로 내어 둔 화초들도 비를 흠뻑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잎사귀와 줄기마다 점점이 물방울이 맺힌 그 모습이 퍽 보기 좋았다. 시원한 빗방울이 몸 구석구석을 타고 흐르자 곳곳에 소름이 돋아났다. 이 무더운 여름에 한기를 느낄 기회는 흔치 않다. 무엇보다도 마음 놓고 송두리째 비를 맞을 수 있는 날이 없었다. 늘 무언가가 진행 중이거나, 해야 하거나, 그도 아니면 앞두고 있었기에 우산 끄트머리로 흘러내리는 작은 빗방울조차 어깨를 움츠리며 피해야만 했다. 바닥을 치고 비산 되는 그 사소한 습기에 바지 끝단이나 신발이 젖어드는 것도 스트레스였고, 그래서 비가 내리는 날은 눈살을 찌푸리는 날이 되곤 했다. 비가 내리는 것이 싫었다기보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아니면 해가 쨍하든 간에 여지없이 해내야만 하는 그 무언가가 나를 부담스럽게 했다. 그 부담감이 시작도 하기 전부터 불행과 고난을 예감하고 하루의 운세를 지레짐작하게 했을지도. 정작 오늘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화초에 물을 주는 까닭은 이제는 내게 내리는 빗소리가 퍽 정겹게 들리기 때문이고, 비로 온몸이 젖어도 부담스럽지 않을 마음의 여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시들어가는 화초가 단순히 지나가는 배경이 아니라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없이 바쁘고 치열하고, 더불어 그 바쁜 시간의 이유를 알지 못했던 그때는 볼 수 없었던 화초들이 이제는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화초에 물을 주는 작은 노력에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오늘의 소극적 자유에 감사하기로, 그렇게 다소 복잡한 마음을 정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