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멍하리만치 허공의 한 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모든 것이 정지한 그 공간 속에서 하나의 움직임이 나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것은 한 마리의 작은 지네였다.
오늘 처음으로 본 나를 제외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였다. 고독을 오히려 선호하던 나였지만 오늘따라 유독 그 고독이 무겁고 싸늘한 공기와 함께 온몸을 감싸던 차였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라면 혐오스러웠을 그 지네 한 마리가 오히려 반갑게 느껴졌다.
냉동 쇼케이스를 지탱하는 바퀴 틈으로 고개를 내민 지네는 곧 벽면을 타고 유유히 위를 향했다. 마치 중력이 지네에게만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벽을 타고 오르는 지네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문득 내가 저 지네처럼 암벽등반을 하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길이가 채 3cm도 안 되는 지네에게는 1m 남짓되는 쇼케이스 벽면이 천 길 낭떠러지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지네는 한치 망설임 없이 디딜 곳도 붙잡을 곳도 없는 매끈한 벽면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자 갑자기 하찮게만 보이던 저 작은 지네가 퍽 용감해 보였다.
나라면 어떨까. 작은 도전도 두려워하며 몸을 사리는 나라면. 발 디딜만한 공간과 잡고 버틸만한 돌출된 부분이 충분한지 확인하고도 로프를 비롯한 장구를 잔뜩 걸치고도 지면으로부터 발을 떼기를 망설이지 않을까? 과연 높은 곳을 향해 거침없이 손과 발을 내뻗을 수 있을까?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문득 스스로가 무척 초라하게 느껴졌다. 정해진 삶의 궤적에 종속된 채 다람쥐 챗바퀴 같은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내가 저 유유자적 살아가는, 한낱 지네라 무시하던 저 생명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심지어 나는 지금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한 줌의 용기조차 없는데.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지네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지네의 상실과 함께 머리를 어지럽히던 상념도 어느덧 종적을 감췄다. 사막의 신기루 같은 태세 변화에 피식 웃으며 오늘 내내 덩그러니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식어버린 커피 한 잔을 집어 든다. 쌉싸름하면서도 묵직한 산미가 혀 밑에서부터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어쩌면 식은 커피 한잔에서도 작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오늘 하루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커피의 위로는 오늘도 시장바닥 같던 내 마음을 커피 향으로 차분히 적셔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