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보수적인 이유

군인과 기득권

by 작가 전우형

제12호 태풍 '오마이스'가 북상 중이다. 오늘 저녁 제주도를 통과해 서남해안 상륙 후 소멸 예정이라고 한다. 중심부 최대풍속이 17m/s 이상일 경우 태풍으로 분류된다. 태풍은 크기와 강도로 분류되는데 크기는 폭풍권의 반경에 따라 '소형, 중형, 대형, 초대형' 등으로 구분되고, 강도는 중심부 최대풍속에 따라 '중, 강, 매우 강, 초강력' 등으로 구분된다. 태풍의 위협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는데, 강한 바람이 몰아치는 태풍과 많은 비를 뿌리는 태풍이 그것이다. 12호 태풍 '오마이스'는 장마전선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많은 비를 뿌릴 것으로 예보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 평택은 태풍의 직접 영향권이 아님에도 일찌감치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중이다.


십수 년간 몸담았던 해군 장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태풍은 정말 성가신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선박에게 태풍은 커다란 위협이다. 군함의 경우 중소형의 비율이 상당하기 때문에 파고가 3m만 넘어가도 발이 묶이는 경우가 많다. 선박은 속력이 느리기 때문에(통상 20~30km/h 정도) 태풍의 경로를 예의 주시하며 미리 움직이지 않으면 피항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이것을 예방하기 위해 4단계로 태풍경보를 설정하고, 태풍 내습 시점을 기준으로 일정 시간 이전에 피항을 준비하고 실행한다. 그런데 태풍의 경로나 속도 등이 가변적이어서 피항 결정을 내리는 것에는 많은 고민이 따른다. 피항 지시를 내리면 수십에서 많으면 수백 척의 함정이 이동을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천문학적 비용과 시간, 노력이 소모된다. 하지만 군은 지극히 보수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가급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결정을 내릴 때가 많다. 그 결과로 종종 발생하는 것이 항구로 모인 수십 척의 배들이 서로의 몸을 밧줄로 칭칭 엮은 채 맑은 하늘만 바라보다가 태풍이 비껴갔다는 소식을 듣는 것이다. 나는 주로 대원들과 함께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고지식한 상부의 결정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역할이었다.


'보수적'이라는 수식어는 여러모로 군인에게 잘 어울린다. '보수적'이라는 단어에는 변화를 최소화하고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경향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현대에서 가장 변화가 더딘 조직은 아마도 군대일 것이다. 군인이 지극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처한 여러 가지 환경적 요소에 기인한다. 일단 군에서 운용하는 장비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가'라는 점에 있다. 군함의 경우, 상선에 비해 한참 작음에도 불구하고 건조에는 훨씬 더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 이지스급 구축함(세종대왕급)의 경우 톤수는 대략 9천 톤에 불과하지만 건조비용은 1조 원을 훌쩍 넘어간다. 최근 전력화를 앞두고 있는 3,000톤급 잠수함도 비슷한 수준의 비용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해 HMM에서 작년 건조한 세계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 선박의 '알헤시라스'의 1 척당 건조비용은 1,725억 원에 '불과'하다. 컨테이너 2만 4천여 개를 한 번에 운반할 수 있는 길이 400m, 폭 61m, 축구장 4배 면적에 달하는 거대 선박보다도 규모 면에서 10분의 1도 안 되는 군함의 건조비용이 그의 7~8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군을 지극히 보수적인 조직으로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다.


잠시 숫자놀이를 해볼까 한다. 1조 원. 1에 0이 12개 붙은 수. 몇 초면 쓰고 읽을 수 있는 짧은 단어지만 사실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이다. 80세를 평균 연령으로 할 때 우리가 뜨고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는 횟수는 대략 3만 번이 조금 못되는데, 매일 눈을 뜰 때마다 3천3백만 원씩 꾸준히 돈을 써야 가까스로 관속에 들어가기 전에 모두 소모할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이 '1조'라는 금액이다. 여기에 1% 연이자라도 붙는다면 매년 충당되는 100억 원의 이자를 추가로 사용하기 위해 더욱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간신히 통장 잔고에 '0'이라는 경이로운 숫자가 찍힌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1조 원이 넘는 고가의 선박을 집 앞 부두에 묶어두었다면 매일을 기도하는 기분으로 살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 하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 감사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환경이 군인을 보수적으로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와닿지 않는다면 이런 상상도 도움이 된다. 당신은 지금 7억을 호가하는 다이아몬드를 처분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금 거래소로 향하는 중이다. 이 다이아몬드는 현재 한국 금 거래소 다이아몬드 시세 중 가장 고가의 물건으로 집안의 가보로 물려받았는데 가까스로 거래가 성사되었다. 그런데 2m 떨어진 곳의 한 남자가 자꾸 나를 주시하는 느낌이 든다. 뒤에 선 사람이 어깨를 꼼지락거리며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때 마침 한 사람이 주변 사람을 거칠게 밀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가더니 지하철에서 내린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가방 안에 다이아몬드가 그대로 있는지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확인하지 않고 견딜 수 있는가? 만약 당신의 가방에 들어있는 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세금 고지서와 가져가 봐야 긁힐 돈도 없는 체크카드 한 장이 전부라면 어떨까? 같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을까?


7억에 달하는 무언가도 현실에서 접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예도 있다. 3년쯤 전에 관사 보증금을 내기 위해 6백만 원가량의 현금을 인출한 적이 있었다. 5만 원권 지폐로 120장이었는데 인출한도 제한으로 시간 간격을 두고 150만 원씩 4번에 걸쳐 인출해야 했다. 봉투에 담긴 돈을 들고 ATM기 앞을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인근을 오가는 사람들이 그토록 신경이 쓰일 수 없었다. 지정된 은행 창구에 제출하기까지 대략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은 적잖이 긴장되고 불편한 시간이었다. 어찌나 힘이 들어갔는지, 모든 절차를 마쳤을 때 봉투를 쥐고 있었던 손에 잠시 묵직한 경련이 올 정도였다. 그런 긴장감이 24시간 계속된다면 매일을 어떤 기분으로 살게 될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 하늘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감당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느낌은 이토록 사람을 보수적으로 만든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지극히 안도감을 느낄 만큼. 태풍 피항에 실패하면 자칫 1조 원에 달하는 배가 7~8m에 달하는 너울에 좌초되거나 부두 내 강풍에 요동치다가 서로 부딪혀 선체가 찢겨나갈 수도 있다. 수리비가 최소 수억에서 수천억이 들 텐데 이것을 어떤 개인이 책임질 수 있을까. 결정권자의 책임은 이토록 무겁고, 그래서 높은 직위에 오를수록 사람은 점차 보수적으로 변한다. 예컨대 태풍 내습이 예상되면 지침에 명시된 대로 결정하는 것이다. 흔히 결정권자는 자기 뜻대로 모든 결정을 내린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결정권자의 위치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선택에 의지와 생각이 개입할 여지는 줄어든다. 정해진 무언가(법령, 행정규칙, 또는 회사 내규 등)에 의거해 그대로 결정했을 때만 실패에 대한 책임을 최소한으로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은 비단 군대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분쟁이 일어난다. 실질적인 유혈사태나 폭력사태가 아니더라도 어떤 현안에 대한 찬반의 과정에서 서로의 이익을 저울질하며 진영이 갈리고 선택이 달라진다. 사회에서 기득권층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보수의 손을 드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득권은 예를 들면 이 사회에서 더 많은 무언가를 이미 높이 쌓아 올린 계층이다. 갑자기 땅바닥이 갈라지거나 기울어진다고 했을 때 어느 쪽이 더 큰 피해를 보게 될지는 자명하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은 차라리 세상이 뒤집어져 모든 것이 처음부터 시작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많은 것을 가진 쪽은 현상황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한다. 잃을 것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따로 있다. 성공은 능력뿐 아니라 수많은 운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다시 동일 출발선상에 섰을 때 현재의 위치까지 다시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높은 탑일수록 작은 흔들림에도 취약하다. 보수 쪽으로 기울수록 변화는 두렵고 불안한 것이 된다. 변화는 '예측가능성'을 떨어트린다. 계획은 예측과 논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데, 계획의 불완전성을 제거하는 방법은 상황을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변수가 많아질수록 계획은 복잡해지고 그것을 수행할 사람들의 순간적인 선택과 판단이 중요해진다. 반면 상황이 단순해지면 계획을 명료화할 수 있고 우발계획을 보다 덜 고려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지켜야 할 것의 가치가 클수록 더욱 심해지는데, 그것은 가진 것이 많아지는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정리하자면 군인이 보수적인 이유는 그들이 지켜내야 할 것의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일단 군의 존재 목표는 국가를 지키는 것이다. 거기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 누군가는 땅을 지키고 누군가는 바다를 지키고 누군가는 하늘이 지킨다. 단순히 땅, 바다, 하늘이 아니라 그에 존재하는 국가의 모든 요소가 대상이다. 심지어 그 안에서 자국의 법령이 온전히 힘을 발휘하는 것과 같은 무형적인 요소도 지켜야 할 대상이 된다. 그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군이 필요로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힘'이다.


국가안전보장을 위해서는 값비싼 무기체계를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유지해야 하고, 충분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비전투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군인의 평가체계는 성과중심이 아니라 현상유지 중심으로 형성되어있다. 예컨대 신기술 개발이나 정비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등 어떤 성과가 있어도 인센티브로 반영될 뿐이지만 자신에게 책임이 부여된 어떤 임무에 실패하거나 시설, 장비 등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칫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 쉽게 말해 잘해봐야 본전인데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십상인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직접적인 잘못이 아니더라도 '지휘책임', '관리책임'과 같은 명목으로 잘못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이와 같은 리스크 또한 군인의 보수적 경향을 강화시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야만 생태계여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도록 강펀치 하나쯤은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전쟁억지력'이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한다. 내 콧등에 주먹을 날리려면 적어도 이빨 몇 대는 나갈 각오를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주먹을 쓰는데도 '명분'이라는 것이 중요해서, 그 명분은 대개 상대가 먼저 내게 충분한 위협을 가했음을 증명함으로써 구성된다. 가장 쉽게는 '정당방위'가 성립하는 요건을 떠올려보면 된다. 이래나 저래나 군은 먼저 펀치를 날려서는 안 되지만, 선빵 필승의 법칙을 의연히 비웃으며 한 대 맞은 후에도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군인은 국가의 무력을 직접적으로 운용하는 신분으로 경거망동하지 않음과 동시에 언제든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것을 군은 '대비태세'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즉 대비태세를 유지하려면 군인은 지극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기득권이 보수적인 이유 또한 그들이 지킬 것이 많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의미를 풀어보면 '이미(기) 취득한 권리'로 자본주의 사회의 권리란 곧 '자본'을 중심으로 편성된 어떤 '권력'을 뜻한다. 그들이 가진 많은 것은 이미 형성된 여러 가지 형태의 사회질서에 의해 보호된다. 법치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위에 존재하는 힘은 '법'인데, 이러한 법의 개정은 사안에 따라 기득권 계층에게 리스크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실상 법이 바뀐다는 것은 시장구조가 개편되거나 기울어진 운동장이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큰 권력구조의 변동을 초래하기도 한다.


자신이 가진 여러 형태의 권리를 지켜내려면 현재 상황에서 변화가 최소한으로 일어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사회는 진보하고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기득권조차도 그것을 완전히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가급적 민주주의의 권력 작용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그것이 바로 보수 진영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우리가 정치판에서 목격하는 여러 가지 장면은 이러한 권력 작용의 일면에 불과하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보수의 논리를 기꺼워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일단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해당 사회의 기득권 계층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더 오랜 시간 무언가를 쌓아왔기에 자연스레 기득권의 사고방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설사 기득권의 위치에 있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느낌은 몇 가지 부분에 있어서 자신감을 떨어트리는데 그중 하나가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다. 변화는 에너지가 부족할수록 버겁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데는 용기가 필수적인데 떨어진 자신감은 이러한 용기를 꺾는 주범이다. 상대적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예전의 사회와 문화에 익숙한 것도 고연령층이 보수성향을 띄는 이유다. 그들은 수시로 변화와 개혁을 외치는 젊은 세대를 들어 지혜와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여긴다. 차분히 기다리면서 시간과 기회를 주면 자연스레 이루어질 일을 진보니 개혁이니 운운하면서 오히려 망가트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것을 일방적으로 구습이나 낡은 관행으로 비난하거나 비하하는 태도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적어도 그들에게 이전의 사회는 나름의 인간미 넘치는 세상이었고 아름다운 추억이 새겨진 공간이었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훼손하는 젊은 층의 언어는 그들에게 다분히 도전적이고 기분을 상하게 하기 충분하다.


우리가 눈여겨볼 점은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 대립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당의 기조에만 '보수'와 '진보'의 논리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사람도 처한 환경에 따라 보수도 진보도 될 수 있다. 보수와 진보는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다.


예컨대 자기 명의로 된 집 한 채 없던 사람이 갑자기 건물주가 되었을 때 그의 입장이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동산세를 높이든 낮추든 아무 관심도 없던 예전과 같거나, 부유세 증설이나 상속세의 세율을 높이는 것에 찬성했던 입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같은 예로, 말단 병사가 함대 사령관의 직무를 갑작스레 수행하게 된다면 이전에 비난해왔던 것처럼 앞뒤가 꽉 막힌 상부의 지시와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이번 태풍은 강도도 약하고 경로도 불투명하니 이번 피항은 실행하지 않겠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권한과 명령에는 무한한 책임도 함께 따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 않을까?


20대 청년이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자신의 부모세대가 된다면 20대 청년 시절 그러했던 것처럼 당찬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할 수 있을까?


살아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짊어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책임의 무게는 인간을 보수적으로 만든다. 보수와 진보는 고정된 것이라기보다 상황에 따라 바꿔 타는 대중교통과 같은 것이다. 다만 어떤 보편적인 규칙이 있다면 많은 것을 가질수록 보수의 기차를 타기 쉽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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