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은 자신에 대한 결례다
그는 혼자 일하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실컷 가르쳐주면 뭐 해. 이제 일 좀 시켜볼까 하면 도망쳐버리는 걸." 그는 영세한 업체의 나름 '정규직'이어서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입장이었고 그 이외에는 그때그때 사람을 구해 쓰는 형편이었다. 오랜 시간, 아니 적어도 정해진 기간이라도 걱정 없이 함께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뉴스에선 연일 고용안정성을 떠들어댔다. 고용안정성은 '노동자'의 입장이다. 하지만 현장은 '사장'과 '노동자'가 분명히 구분될 수 없는 영세사업체나 자영업자 투성이다. 이곳에서 '사장'은 으레 떠올리는 것처럼 정장을 빼입고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주는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영세업체의 사장이란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궂은일 도맡아 하며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존재다. 이들에게는 그저 믿고 맡길 수 있는 책임감 있는 동료가 필요하지만 정작 그토록 중시하는 고용안정성을 유지해보려 해도 며칠 일을 배우다 떠나버리거나, 조금이라도 불편한 부분이 생기면 그만두는 일이 허다하다. 고용주 입장에서의 고용안정성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는 현실에 지친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가급적 하지 않으려는 생각들이 결국 떠오르곤 한다고. '저러니 변변한 직장 하나 못 구하고 떠도나 보구나...'
'노동'은 엄연한 쌍방의 약속이지만 그 책임은 종종 고용주에게만 귀속된 것처럼 보인다. 대개 노동자는 약자로 그려지고, 그래서인지 일을 그만두는 것은 노동자의 '자유'나 '권리'로 여겨진다(사실상 노동자 스스로 일을 그만두는 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회적 담론으로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하루살이로 살지 않는 이상에야 업무는 연속성을 띄는 일련의 작업이고 같은 곳에서 일하는 동료라고 한다면 각자의 업무책임이나 영역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 정도는 초등학교 도덕 영역만 수료해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내가 일하다 중간에 대책 없이 그만두면 그 파장이 함께 일하던 동료에게 미치는 것은 불 보듯 당연하다. 자신이 그 일을 수행하던 입장이었다면 누구보다도 업무 담당자가 사라졌을 때 벌어질 일들을 가장 잘 아는 것이 오히려 상식이다. 그래서 적어도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자기가 하던 일은 어느 정도 마무리 짓고 떠나거나 최소한 다른 사람이 무리 없이 이어서 진행할 수 있게 분명한 인수인계라도 하는 것인 기본 예의다.
가끔 그런 무책임한 태도를 '나는 계약직이니까' 혹은 '나는 임금을 적게 받으니까'라는 말로 정당화시키는 이들을 보게 된다. 한 번 생각해보자. 월급이 적다라거나 계약직이라는 사실이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마음가짐과 태도로 어떤 조직 또는 사람과 신뢰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얼마 전까지 아내가 강사로 일하던 학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강사를 하고 싶다며 찾아온 조무사 선생님이 있었는데 애써 수업시간 배당하고 진행방식 등을 교육하고 났더니 겨우 3주 나오고는 못하겠다며 그만뒀다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분이 담당하기로 했던 수업들이 문제가 됐다. 한 명의 강사가 주당 수업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고 당장 새로운 강사가 구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일은 또 반복되었다. 이번에는 시간제 강사도 아니고 '전임'강사를 하겠다고 찾아온 간호사 선생님이 두 달 넘도록 행정처리를 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감사가 코앞에 닥친 시점에 그만둬버린 것이었다. 처리방법을 아무리 붙잡고 가르쳐줘도 자기는 모르겠다며 모르쇠 작전을 펴더니 결국 그렇게 팽개치고 떠나버렸다며 성토하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노력해 볼 생각도 않다가 불리해지면 도망치듯 떠나버리는 행태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또 어쩌랴. 떠난 이가 싼 똥을 누군가는 치워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목격하다 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약속은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이고 맡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기 위해 안간힘 쓰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혹시 내가 너무 미련했던 건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그런 고지식한 면이 과도한 성실과 인내로 이어져 번아웃에 이르게 했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모든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약속은 가급적 지켜져야 하며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인간 된 도리'를 따지는 것이 우스워진 요즘이지만 가끔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을 마주한다. '사회에 법이 점점 늘어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에서 '신뢰'의 영역이 해체될수록 법의 수요는 늘어나기 마련이니까. 십 수년 몸담았던 공직 사회에서도 무책임한 사람들은 많았다. 의무복무로 온 수병들이야 잠깐 머물다 가는 것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간혹 직업군인 중에서도 불리한 상황이 예상되면 혼자만 쏙 빠져버리는 사람도 있었고 진급심사에서 미끄러져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되면 드라마틱하게 태도가 변하는 이도 있었다. 모든 것을 책임져 주겠다며 떵떵거리다가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지휘관도 있었다.
모두가 숨 차고 힘들어지는 시기가 도래하면 공교롭게도 육아휴직이나 휴가를 내고 자리를 비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이들을 볼 때면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던 생각이 불현듯 치밀어 오르곤 했다. 그런 이들의 빈자리는 결국 성실하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채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라고 해서 성인군자라거나 도망칠 줄 몰라서 남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인간이라면 능히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진 사람들일 뿐이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는 지인의 말을 들어보아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대개 정해져 있는 편이었다. 일부 계약직 선생님들이 어영부영 대충 일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만둬버리는 탓에 그 뒤처리를 하느라 힘들었던 경험이 많았다는 것이다.
무책임을 무기 삼는 이들의 공통점은 인내심이 없으며 힘든 순간을 버텨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들의 무책임은 정규직이 아니거나 고임금을 받지 못하는 환경적 요인에서 기인하는 것에 있을까, 아니면 그토록 신뢰를 땅에 떨어트리는 삶을 살았기에 정규직이나 고임금자의 자리에서 밀려난 것일까?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과 경우에 따라 다를 것이다. 정규직, 계약직 여부나 임금 수준이 한 사람의 근무태도나 책임감을 좌지우지할만한 결정적 요인이라는 아이디어는 자칫 위험한 비약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다만 나는 받는 돈이 적다거나 자신이 그곳에서 오래 일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스스로의 무책임을 정당화하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무책임은 스스로에 대한 심각한 결례 행위다. 자신에 대한 대우는 스스로 쌓아 올린 탑과 같다. 그 동안의 삶과 일상적으로 보여 온 태도가 누적되어 현재의 모습과 처우를 만든다. 나를 써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 전에 내가 얼마나 쓸 만한 사람이 되었는가를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신뢰를 헌신짝처럼 걷어차버리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면 세상의 어느 한 지점에서도 자신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