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질 때

by 작가 전우형

어느새 7월 중순에 접어들었습니다. 2021년의 다사다난한 시간은 어떻게 흘러왔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남은 시간은 얼마나 종잡을 수 없을지 조금 두려운 마음마저 듭니다. 붙잡을 수도, 되감을 수도 없는 것이 '시간'이라지만 요즘은 빨리 감기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듭니다. 고단한 걸음이 진퇴양난의 시간에 머무른 동안에도 계절은 여지없이 흘러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는 여름이 된 것이 놀랍기도 합니다.


노력은 어쩌면 터무니없고 무가치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리던 꿈에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을 때 짙은 절망의 그림자는 무력감이 되어 그간의 노력을 회색빛으로 물들입니다. 지금의 코로나 시국이 딱 그런 느낌이 듭니다. 노력이 쌓이면 어느 순간 티핑 포인트에 도달하고, 노력의 성과가 때때로 시간에 정비례하기보다는 계단식으로 단계를 건너뛴다지만, 노력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무표정한 순간들을 아무렇지 않게 버티며 다시금 주먹을 꽉 말아 쥐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걸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같은 출발선에 섰던 동료나 주변인들이 하루가 다르게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며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 시간들이 기억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은 1분 1초가 하루처럼 길고 인지의 그물을 빠져나갔으면 하는 속상한 기억들만 비수가 되어 가슴을 후벼 팝니다.


시간은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 유독 우리를 붙잡아둡니다. 스스로마저 혐오스러운 감정을 떨칠 수 없을 때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수치심이란 감정은 낯빛을 태양처럼 붉게 물들입니다. 수치심이 만들어내는 극한의 창피함은 굳이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더라도 나를 수치스럽게 한 대상에 대한 시기심을 일깨웁니다. 시기심으로 불붙은 내면의 공격성이 무의식적인 그의 불운을 갈망하게 합니다. '그도 나처럼 힘들었으면, 그도 뼈아픈 실패와 절망을 맛보았으면, 그도 미끄러지고 무릎이 까졌으면...' 진흙탕이 되어버린 마음 연못에서 독기가 피어나고 때론 분투하고 때론 절망을 곱씹게 됩니다.


요즘 들어 애써 쌓아 온 성이 모래알처럼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무엇이 이토록 우리로 하여금 타인의 허물에 관심 갖게 만들었을까? 그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저는 '시기심'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혹자는 그것이 시기심이 아닌 '정의구현'이나 피해 갈 수 없는 '도덕성 검증'으로 포장하지만 그런 평범한 단어로는 경쟁의 형태가 점점 흑색선전과 비리 탐사, 먼지떨이로 변모되어가는 현실을 설명해내기 어렵습니다.


내가 상대방보다 어떤 면에서 그 일을 하는데 적합한지를 설명하기보다 상대방이 어째서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지를 설명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런 세태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는 왠지 누구도 선택할 수 없게 됩니다. A는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선택할 수 없고, B는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선택하지 못합니다. 비단 정치판에서만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흠결에 과도할 정도로 몰입하고 헐뜯고 비방하는 사회의 민낯을 볼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헐뜯음의 역학관계 속에서 무엇이 '노력'인지 조금 더 알 수 없게 됩니다. 물론 그렇겠지요. 그가 깨끗하게 문제없이 살았으면 정말로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요. 하지만 과연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시기심의 늪에서 빠져나올 때 비로소 길을 찾게 됩니다. 무엇이 이토록 사회 구성원 간에 적대심이 팽배하게 만들었을까요. 타인에 대한 관심은 그 방향이 배려와 위로를 향할 때에서야 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경쟁 속에서도 우리의 관심은 상대방보다는 자기 자신을 향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얽매이는 삶은 자유와는 거리가 멉니다. 자유는 햇빛과도 같아서 자유가 도달하지 못하는 마음의 토양은 병들고 시들어갑니다.


만약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처럼 느껴진다면 마음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에게 집중하면 노력이 겉돌지 않습니다. 노력의 시간이 더디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시간을 다른 무언가에 못 박아두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본래 새처럼 자유롭고 어디로든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인과 비교하는 한 생각과 시간, 삶 그 모든 것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채 한 자리에 맴돌게 됩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을 거두기 어렵다면 상대방의 강점을 발견해주는데 노력을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가장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라는 거울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기실 우리가 상대를 볼 때 가장 꼼꼼히 확인하는 것은 바로 자신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상대방의 단점을 찾을수록 나의 단점이 부각되고, 상대방의 장점을 찾다 보면 나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상대를 보며 실제로는 나를 보는 인간관계의 고유한 특성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이가 상대방도 사랑할 수 있고, 좋은 관계는 부족한 사랑을 채워주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종잡을 수 없는 현실 속에 의지할 건 옆에 있는 사람뿐일지도 모릅니다. 노력은 나와 타인을 동시에 향하지만 타인을 비방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만큼 무의미하고 덧없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상대방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해'하기도 쉽지요. 어쩌면 '내로남불'은 그가 특별히 위선적이거나 도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어서 발생하는 현상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존재하는 충분한 이유를 얼마나 알아차릴 수 있는가, 그 정도의 차이가 내로남불을 만들어냅니다.


한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나와 관련된 일은 대개 충분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적절한 이유를 찾기 위해 당시를 곰곰이 되돌아보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 사건에 속한 순간들에 온전히 내가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은 조금, 아니 많이 다릅니다. 우리가 타인의 하루 중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온전히 알 수 있을까요? 가족과 같은 극소수를 제외한 타인의 시간에 대해 우리는 우주의 티끌만큼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타인의 문제는 충분한 이유를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작은 흠도 크고 심각한 것으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타인의 단점을 꾸짖기 쉬운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깊은 이해와 공감의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한 상대방의 잘못은 보편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것이 현실이지요. 그래서 타인에 대한 비방은 속 빈 강정이며 오해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오해가 아니더라도 차라리 오해라고 믿고 상대방의 잘못에 대한 가치판단은 내려놓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습니다. 글쎄요. 사람마다 숨기고픈 사생활이나 오랜 잘못 하나쯤은 있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저 또한 떳떳하지 못한지라 최근의 서릿발 같은 '검증'의 잣대들이 조금은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회의 대기가 조금이라도 맑아지려면 개인의 건강한 마음이 우선입니다. 조금은 구시대적인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서로의 흠을 가려주고 덮어주었으면 하는 마음마저 듭니다. 물론 '정도'라는 것은 존재하겠지요. 나름의 저울질을 해봅니다. 모두의 비리가 낱낱이 밝혀져 누구도 잘못을 저지를 수 없는 '1급수'의 사회. 그리고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과 완벽하지 못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2급수'의 사회. 저는 후자 쪽이 조금 더 끌립니다. 그곳에서는 완벽하지 못하고 잘못에 서툰 저도 숨 쉬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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