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은 신호입니다. 그러나 괴로운 신호입니다. 우리의 아픔은 상처 때문일까요, 아니면 상처가 만들어낸 고통 때문일까요? 상처와 고통은 분리될 수 있다고 합니다. 힘들지 않았으면, 아프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었던 기억. 여러분도 있으신가요?
아픔이 삶의 과속을 막아준다는 것을 모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면 다 되는 줄 알았고, 못한다는 말, 어렵다는 말 따위는 패배자의 언어라고 생각하던 시절. 나약한 이들이 써먹기 좋은 핑곗거리로 여겼지요. '흥! 누군 아프고 힘들지 않아서 묵묵히 해내는 줄 알아?! 다 버티고 끙끙대면서 한 발자국씩 내딛는 것뿐이라고. 참아내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결국 승자와 패자가 되는 거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프고 힘든 것 따위 느끼고 싶지 않았습니다. 힘들다고 쉬는 건 인생의 열정이 사그라든 노년기에나 가능한 사치로 여겼지요. 어차피 고통에 반응해주지 못할 거라면, 맘 편히 누워 잠들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아프지나 않았으면. 그런 생각으로 살다 보니 어느덧 버티는 건 오랜 습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긴 세월 진실이라고 믿다 보면 누가 뭐라고 하건 간에 자신에게만큼은 완전한 진실이 되어버립니다. 그것이 정말 진실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되지요. 많은 사건 중 내가 믿는 진실에 부합하는 사건만을 선택적으로 기억의 카테고리에 반영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지나가는 사건으로 묻혀버립니다. 선별작업에 의해 폐기된 기억은 역사가 아닌 배경으로 자리 잡습니다. 실제 주인공이 누구였든 간에 남의 이야기로 변모합니다.
고통은 무시하고자 하면 어느 정도는 정말 그렇게 되어버립니다. 신경계통도 노동의 가치를 따져가며 일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신호를 생산해서 보내주었으면 그 신호가 적절히 사용되어 어떤 목적을 달성해주어야 '쓸모'라는 것을 느끼겠지요. 우리가 그렇듯, 몸과 마음도 쓸모없는 일에 에너지를 허비하는 것을 증오합니다.
'해석된 고통'은 그런 식으로 얕아질 수 있습니다.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서로 다른 세상의 장면을 인식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상처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삶은 갈등의 연속이고 몸과 마음에는 늘 생채기가 생겨납니다. 고통은 상처를 치료해달라는 울부짖음이며 회복과 휴식의 필요를 알려줍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지요. 몸과 마음은 계속해서 달릴 수 없습니다.
간혹 휴식이 낭비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경쟁이 일상화된 삶을 살아가다 보면 고통스럽고 힘든 감정이 거추장스럽고 사치스럽게 여겨집니다. 물론 당장 3km를 10분에 달리고자 한다면 터질 듯 쿵쾅거리는 심장과 폐부가 찢어질듯한 흉통, 그리고 가쁜 호흡과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고라도 달려야 하겠지요. 하지만 3km를 10분 만에 달린다고 해서 30km를 100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를 오래 지속하려면 자신만의 페이스를 찾아야 하고, 나에게 적절한 속도는 몸과 마음의 신호에 민감성을 가질 때 비로소 알아낼 수 있습니다.
잘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감각도 무시하다 보면 무뎌집니다. 스스로 쓸모없다고 여길수록 몸과 마음 역시 그것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재편됩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버려두었던 자신에 대한 '관심'입니다. 몸과 마음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방치되다시피 한 상처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지 않은 상처는 매일의 짧은 돌아봄과 휴식으로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연고를 발라주는 사소한 노력조차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계속 달리라며 채찍질을 가하는 것만큼 심각한 자기 학대는 없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다 보니 자신을 살필 작은 여유조차 없을 때가 많습니다. 삶의 흔적을 돌아보는 시간은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탐색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휩쓸리지 않도록 중심을 단단히 하고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태도입니다. 기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도, 절대 지지 말아야 할 상대도 없습니다. 그런 상대는 시장의 환호와 지극한 경쟁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지요. 인생은 레이스가 아닙니다. 세상 또한 경기장이 아니지요.
우리에게 참고 인내해야 한다고, 견뎌내며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속삭이는 것은 시장이라는 괴물입니다. 승리에 대한 강요는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집니다. 1등에게 주어지는 열렬한 환호가 나의 것이 아니라는 후회와 절망이 빗물처럼 마음 저변에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환호와 인정이 우리가 진정 원하던 것인지 아니면 어느덧 경기장의 주자로 내몰린 탓에 어쩔 수 없이 듣게 되고야 마는 함성소리인지 조금은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힘들다는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힘든 것은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귀담아들어야 할 신호입니다. 힘들 때는 참고 버티는 게 아니라 쉬어갈 차례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1등은 오로지 1명뿐이고, 우리 중 대부분은 1등이 될 수 없습니다. 애초에 모두가 1등이 될 수 있다는 희망 자체가 그릇된 것입니다. 승자와 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가 어째서 서로 등수를 비교해야 하고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야 하는지 이 사회에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더 준비해야 하는 순간은 지는 경기와 실패의 순간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