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체력의 3요소

독서, 공백, 운동

by 작가 전우형

독서


한 권의 책을 읽는 데는 수 일에서 수 주가 걸릴 수도 있지만 불과 몇 시간 만에 마지막 장을 덮는 것도 가능하다. 빨리, 많이 읽는 것은 우선순위에서 멀다. 타인과 경쟁하거나 자신의 독서량을 자랑하는 독서도 껍데기에 불과하다. 얄팍한 자존심보다는 목적이 중요하다. 목적지 없는 여행이라도 좋다. 그러나 어떤 행위의 목적은 행선지나 경로 따위를 구상하는 이상의 그 무엇이다. 독서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가? 나는 왜 독서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달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시작 전에 부담되지 않을 그날의 분량을 정하고, 독서가 끝나면 책을 읽는 동안 떠오른 생각들을 두서없이 써보면 좋다. 흐릿한 문구를 찾기 위해 다시 책을 펼치기보다는 그저 흐리면 흐린 대로 이번 독서에서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 차분히 확인해보는 마음으로. 그러다 보면 제이, 제삼의 무엇을 얻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이런 방법은 독서에 대한 집중을 높이는데 효과 만점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독서도 그렇다. 한번 지나간 것은 다시 볼 수 없다는 가벼운 부담으로 집중을 촉진할 수 있다.


공백


비움은 채움을 위함이고, 공백은 휴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서 말 그대로 비우는 행위를 의미한다. 속된 말로 '멍'을 때리는 것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잠깐 쉬는 동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뉴스 기사 따위를 검색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공백은 시간낭비가 아니며 취미활동도 아니다. 공백의 목적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틈이 생기면 새로운 재료가 채워지고, 이들이 신사고의 땔감이 된다.


공백은 난도가 높아서 온갖 잡다한 생각과 상상,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쩐지 안절부절못하기도 하며 조급한 마음에 시계만 바라보기도 하는데 그것은 너무나 많은 것을 이뤄내야 하는 사회를 살면서 각인된 어떤 강박 때문이다. 강박은 누구에게나 일정 수준은 존재하지만, 공백의 목적은 온갖 잡생각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있기도 하다.


하루 중 경험하는 수많은 일들 중에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몇 가지 중요하고도 급박한 일이 아니고서는 미뤄두거나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많다. 남은 찌꺼기들은 머리와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램을 비워주지 않으면 처리속도는 느려지기 마련. 잡생각을 문자로 유형화하다 보면 뜻밖의 수확을 얻을 때도 있다. 비우고 나면 내가 의도한 그 무엇을 구상하고 상상할 여력이 확보되며 한층 가뿐해진 뇌 역시 저항이 줄어들어 에너지 소모도 적다.


공백이 어려울 때 병행할 수 있는 것은 몸을 쓰는 활동이다. 필자의 경우 운전 중 라디오나 음악 등의 부가활동을 완전히 배제하고 운전 자체에만 집중하면 틈틈이 공백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특히 매번 오가는 길이면 더욱 효과가 좋다. 예컨대 익숙한 길의 경우 경로를 고민할 필요도 없고 습관으로 자리 잡은 탓에 운전에 대한 스트레스도 적다. 대략 20~25분 정도 걸리는 길을 아무 생각 없이 운전하다 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데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운전에 집중하다 보면 왠지 개운한 느낌이 들고 무언가를 새로이 써나갈 준비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다른 방법으로는 무언가를 깔끔하게 다듬는 활동이나 청소, 정리 등의 활동도 좋다. 깨끗한 절단면을 보거나 잘 정리된 공간 혹은 반짝반짝 광이 나는 무언가를 보면 약간의 성취감과 함께 공백도 만들어낼 수 있다.


운동


체력은 모든 활동의 근원이고 산책이나 조깅 등과 더불어 근력운동도 필수다. 근력이 저하되면 똑같은 무게도 더 무겁게 느껴지고 몸이 무거워지면 활동량은 줄어들기 마련. 줄어든 활동량은 몸을 실제로 더 무겁게 만든다. 글쓰기가 정적인 활동이긴 하나 최소 수 시간 이상을 앉아서 작업해야 하는데 이 시간 동안 몸이 무거우면 목이나 어깨가 처지고 허리는 구부정해져 늘어진 오징어처럼 된다. 손글씨든 타이핑이든 머리로만 생각하고 끝날 일은 아니고 적잖은 신체활동이 뒤따르기 마련인데 이런 활동은 분명한 노동이어서 체력을 갉아먹기는 쉬워도 다시 채우거나 강화시키는 기능은 전무하다.


어떤 작업공간이 구성되면 같은 공간을 맴돌기 마련인데 장소가 고정되면 생각도 유사해져서 다른 글을 써도 비슷해지고 새로움이 점차 메말라간다. 산책의 이점은 약소한 파격에 있다. 사고의 틀을 가볍게 흔들어주는 데는 산책과 여행만 한 것이 없고 그중 산책은 언제든 부담 없이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걷고 싶은 만큼'이라고 가벼운 타이틀을 걸어도 좋지만 현대인의 삶에서 걸음이 차지하는 비중에 점차 줄어드는 것으로 볼 때 단지 걷고 싶은 만큼만 걷기로 하면 단 한 걸음도 귀찮을 수 있어서 가급적이면 어느 정도 코스나 시간을 염두에 두는 것이 효과적이다. 개인적으로는 15분에서 30분 내외가 편하고 부담도 없었지만 간혹 두 시간여를 걸을 때도 있다. 막힌 도로를 청소하듯 새로운 공기가 불어오면 보이지 않던 길이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여전히 막막할 때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변화는 일어나고, 그 약간의 청량감이 막힌 숨구멍을 뚫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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