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눈을 감아보기로

그동안 몰랐던 세상

by 작가 전우형

물속은 온통 암흑으로 뒤덮여있다. 모든 것을 비출 것 같던 태양은 수심 20m의 벽을 넘지 못한다. 어떤 빛도 도달하지 못하는 어두컴컴한 바다는 그 자체로 신비롭고 따뜻하다.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은 특별한 행복을 선사한다. 바깥은 온갖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의미 없는 인사말과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대는 광고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모든 소리를 배경으로 만드는 상황적 요인들에 있다. 살아가는 한 어느 정도는 상황에 익숙해져야 하고, 그 익숙함은 '적응'과 '습관'의 이름으로 일상에 각인된다.


하루를 가만히 관조해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온종일 무언가를 보고 있다. 필요 이상으로 볼거리도 많고 의무적으로 보아야 할 것도 많다. 빛의 세상에서 나의 관심은 과도하리만치 시각에 집중되어 있다. 끊임없이 입력되는 시각정보를 해석하는데 지친 뇌는 고막을 통해 어떤 정보가 들어와도 진지하게 해석하고 뜯어볼 여력이 없다. 효율을 우선하는 뇌의 성향이 그런 측면을 일정 부분 심화시키기도 하겠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현대인의 삶에서 여유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때때로 진리처럼 받아들여진다. 눈은 왜곡되기 쉽고 '직선의 세상'만을 볼 수 있다는 한계를 망각한 채. 그 너머를 확인하려면 시선을 옮기거나 시야가 확보되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때로는 사물의 특성이 명확히 식별될 만큼, 그리고 오감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 그것이 탐험이고 여행이며, 현대인의 삶에서 점차 설 곳을 잃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쓰윽 훑어본 것 만으로는 제대로 알 수 없다. 표면적인 것을 세상의 전부라고 믿거나 어느 한 지점에 머문 채 그곳에서 볼 수 있는 것만을 전체로 착각하기도 한다. 시각신호에 대한 왜곡된 신봉은 그 정보가 식별하기 용이하고 가장 익숙한 형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비판적인 태도가 삶에 일반화되는 것은 무의식적인 시각 적응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내가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는 오만과 오로지 자신만이 선의 입장에 서 있다는 비틀어진 자기 확신과 결합되면 서로의 주관적 세상 간의 괴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눈을 통해 입력되는 정보가 가진 힘이 막강한 탓에 우리는 종종 세상을 눈으로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잠시 귀를 막아보길 권한다. 그 사소한 행위만으로도 시야가 제공하는 세상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 여실히 깨닫게 된다. 눈은 대략 정면으로부터 좌우 80도 정도까지의 세상을 본다. 그 160도의 영역도 완벽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략 시선을 기준으로 좌우 45도의 영역을 벗어나면 예상외의 움직임이나 감각을 자극할만한 극적인 변화를 식별할 수 있는 수준에 그친다.


이를 제외한 영역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귀를 통해 전달된다. 그래서 귀를 막으면 머리 위로 쌍발 치누크 헬리콥터가 지나가는 것도, 뒤통수에서 고양이가 사부작 거리며 풀밭을 해치고 지나가는 것도, 측후방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인도로 신나게 달려오는 것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거대한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거리를 걷다 보면 추월해오는 사람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부딪히거나 예측조차 할 수 없던 공간에서 갑작스럽게 누군가가 나타나 깜짝 놀라게 되는 이유다. 운전 중 이어폰 착용을 경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토록 청각에 의지한 채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소리의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잠시나마 무의식적인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면 나는 바다를 찾는다. 바다의 미풍을 느끼며 가만히 눈을 감는다. 눈으로부터 세상이 차단되면 이미 존재하고 있던 소리의 다양한 색깔이 심상의 도화지에 채색된다. 손으로 만져질 듯한 소리의 생생한 질감은 하루의 고된 일과를 끝마치고 침대를 뒹굴 때처럼 아늑하다. 그 잠깐의 분리 안에 머물다 보면 어느덧 깨닫게 된다. 소리가 친절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내게 그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할 여유와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라는 것을.


밤바다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헤아릴 수 없는 별빛이 나를 반기듯이,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귓전을 맴돌며 고막을 두드린다. 물살이 암초에 걸려 찢어지는 소리, 물고기가 공간의 틈을 비집고 나가는 미약한 파열음, 수면에서 해저로 뻗어있는 통발의 사슬이 차라락거리는 소리. 이처럼 다양한 소리들이 단지 인간의 청음 영역에 속한 극히 제한된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심해에서 주변 상황을 살필 유일한 센서는 청각이다. 물속에서 3배나 빨라지는 음파의 특성을 이용하면 수천 km 밖에서 시작된 소리도 바로 옆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올 때가 있다. 미칠듯한 시각의 염증을 치료하는 것은 언제나 곁에 머물던 '소리'였다. 같은 소리도 물속에서는 음색이 변화한다.


수면 아래는 소리로 가득한 세상이다. 램프가 밝힐 수 있는 영역은 고작해야 반경 10m. 그 좁고 제한된 공간 속에서 나를 가득 채우는 것은 나의 호흡소리와 심장의 진동음이다. 물속에서 증폭된 심장의 진동은 단지 울림이 아니라 거대한 포격이 되어 고막을 두드린다. 마치 콘서트장의 거대한 우퍼 스피커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그 약간의 긴장감과 카타르시스가 죽어 있던 나의 심장을 다시 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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