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마지막 단풍을 놓치지 않으려는 긴 행렬이 도로 곳곳에 펼쳐졌다. 그들은 이번 단풍이 마지막임을 눈치챘었는지도. 매서운 한파가 가을의 남은 미련을 남김없이 털어버렸다. 헐벗은 나뭇가지들은 찬 바람에 몸을 뉘었고 인도와 도로 바닥을 휩쓸었던 낙엽 세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진풍경이었다. 쓸어 담기 무섭게 새로운 낙엽이 거친 바람에 흩날리며 환경미화원의 이마를 주름 짓게 했고 영하의 날씨에도 구슬땀이 맺힐 만큼 애를 써도 동네는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어제는 24절기 중 얼음이 얼기 시작하고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이었다. 소설 즈음엔 바람이 심하고 날씨도 추워지며 이 무렵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손돌바람'은 고려 때 뱃사공이었던 '손돌'의 설화에서 유래되었는데, 뱃사공 손돌이 몽고에 쫓겨 강화도로 피신하는 왕을 모실 때 바가지 하나를 물에 띄우고, 그 바가지를 따라갈 것을 간언하나,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는 것으로 오해한 왕에게 참수를 당한다. 훗날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묘를 만들고 제사를 지냈으며 음력 10월 20일쯤 오는 추위를 죽은 손돌의 원혼이 바람과 추위를 몰고 온다고 하여 '손돌바람', '손돌추위'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어제와 오늘은 '소설'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는 날씨였다. 소낙눈이 가로로 몰아쳤고때때로 우박이 떨어졌으며 곳곳에 살얼음이 자리를 잡았다. 손돌의 원한처럼 매섭고 거친 바람이 행인의 옷깃을 여미게 했다. 장비와 기술이 지금보다 한참 부족했던 과거에도 계절의 변화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었음이 신비할 따름이다. 인간의 지혜와 관찰력은 '과학'이라는 절차로 증명하기 전에도 삶의 이로움을 도모하고 세상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던 것은 아닐까.
간혹 증명하고 확인할 수 있는 현상에 몰입해 그 외의 것은 허구나 틀린 것으로 치부되는 장면을 마주한다. 과학적 증명에 필요한 변인 통제는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어서,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인과관계를 특정지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연은 매 순간 변화하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정돈된 실험실 내부로 현상을 가져오는 방식에 익숙하다. 특정 조건에서 증명된 하나의 결괏값이 '참고자료'의 수준을 넘어 세상을 실제로 움직이고 구성하는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장면을 본다. '전문가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텍스트와 주장, 생각들은 그럴듯하다고 받아들여지지만 정작 사실이나 결과와 맞아떨어지지 않더라도 다시금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이론과 현실은 다소간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우리는 판단의 기로에 놓인다.
증명의 과정은 치밀하고 빈틈없는 검증을 거쳐 신뢰성을 확보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말에 묻어있는 오만과 독선에 신경이 쓰일 때가 있다. 연구결과의 누적과 지식의 축적이 이론의 불완전성을 보완할 수 있다고 해도 '겸손'과 동떨어진 태도는 '득'이라기보다는 '독'이다. 논리와 연구결과, 사례로 무장한 전문영역의 벽은 완고하고 높아서 그 분야에 오랜 시간 매진한 그들 스스로가 아니고서는 내부를 들여다볼 수도 없고 보여주지도 않는다. 겸손은 자신을 살피는 힘인 반면 오만과 독선, 아집은 성벽 뒤에 숨게 한다. 밖을 향해 차가운 냉소나 비난의 화살을 날릴 뿐 내부의 오류나 뒤틀림에는 눈을 돌리게 만든다.
합리적인 의심과 생각으로 세상에 떠도는 많은 의견들의 진위를 스스로 판단해보면 좋겠다. 계절의 변화가 그렇듯 우리 삶은 관측 가능한 범위에 늘 있어왔다. 인간에게는 세상의 진실과 진리를 관찰하는 능력이 존재했고 그 능력은 지식의 축적과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며 '무비판적으로'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과 판단이라는 중요한 능력을 포기하는 위험한 태도다.
너무 먼 곳에 존재하거나 너무 작아서 눈으로 볼 수 없거나 너무 많은 변수가 관계되어 있어서 예측할 수 없는 것들에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쉽고 평범한 곳에 존재하며 우리가 늘 보고 경험하는 삶 그 자체에 속해 있다. 우리가 그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가, 아니면 무관심 속에 그저 스쳐 지나는가에 따라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 작은 비틀림과 논리적 결함, 그리고 억지로 짜 맞춰진 인과관계를 꿰뚫어 보는 능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능력과 맞닿아있다. 주위에서 늘 벌어지는 일들을 유심히 살피면 세상에 나도는 가십거리나 가짜 뉴스에 속지 않을 수 있고 허위, 과장, 은폐, 왜곡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만의 필터를 통해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관심과 비판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