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간이 소중한 이유

같은 시간을 살 수 있다는 건

by 작가 전우형

삶은 어째서 이토록 바쁘고 여유가 없을까, 그런 고민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숨이 찰 때. 발이 지면에 닿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새로운 걸음을 이미 내디뎌야 할 만큼 압박의 거센 추격이 뒤를 쫓을 때. 허기나 고독, 외로움이 뒤섞인 그림자 더미에서 서로를 구분하거나 이름 붙이지 못하고 심장의 세찬 진동만이 나의 세상을 지배할 때.


힘들다는 느낌을 말 몇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힘든 게 아니다. 우주가 단지 광활하다거나 지극히 넓다는 말로 온전히 표현될 수 없는 것처럼. 한 없이 멀리 떨어진 제2, 제3의 우주에서 우리의 우주를 바라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고 상상해보기도 힘든. 그러니까 도무지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어서 그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다가도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 포기해버리고 마는. 그래서 우주가 얼마나 넓으냐고 물어도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은 끝을 알 수 없고. 단지 모르겠다는 무지의 인정보다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갈지 가늠할 수 없는 페인트에 절여진 머리카락처럼. 어느 방향을 봐도 같은 형태의 모래언덕밖에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에서처럼.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의 어느 좌표에 홀로 조난당했을 때처럼.


빛은 초속 30만 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데, 그 속도가 빠르다는 건 그렇구나 하면서도, 1초 동안 지구를 7바퀴 반 돌 수 있는 속도라는 게 얼마나 빠른 건지 짐작은 불가능하고, 그런 빛의 속도로 가깝게는 수년에서 멀리는 수억 년을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감조차 가늠할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는 그 무엇이 우리 눈이나 조금 발전해서는 우주 망원경 따위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할뿐더러, 그 모습이 지금 현재가 아니라 그곳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만큼 과거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더욱 아연해지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이라는 녀석의 속내는 내 것이든 네 것이든 미식별인 채로 남아 있다.


답답할 때면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하늘을 보고 있나 하면서도, 내가 지금 보는 별의 모습이 진정 수년에서 수억 년 전의 그것이라면 그곳의 존재는 지금으로 따지면 분명 나보다 그만큼의 시간이 더 흐른 미래에 살고 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시간의 속도가 서로 다르다는 상대성 이론의 끄트머리라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타임머신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 치부하는 것도 나와 세상의 무지나 아집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현재에 집중하는 것은 현재 말고는 달리 깊은 몰입에 다다를 수 있는 시점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세상, 그것이야말로 내가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 중 가장 쉽고 직관적이어서. 그럼에도 종종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꿈꾸는 까닭은 마주한 현실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의 관점으로 복귀하면 모든 것은 지극히 더디고 순차적으로 변해버려서 갑작스럽게 시간을 건너뛴다던가 빨리 감기, 되감기 따위는 불가능해지고, 호기심이나 경이로움, 신비감 따위를 느낄 겨를도 없이 그저 버티는 것도 벅차서, 과거의 순간에 미래를 상상하며 꿈꾸었던 순간이 지금보다 한참의 시간이 더 지난 후에도 도무지 현실의 문을 두드릴 것 같지 않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이나 가깝거나 먼 미래의 장면을 떠올려보는 것이 훨씬 더 즐겁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런 현실에 대한 절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힘들다'는 느낌은 몇 마디의 단어로 명쾌하게 설명될 수 없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셀 수 없고 그중 어느 것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특정할 수 없다. 그렇게 하루가 몰아칠 때면 나는 하늘을 본다. 대략 8분 20초 전의 태양을 보고 거의 현재에 가까운 달의 포커페이스를 본다. 그리고 어쩌면 이제는 사라지고 없을 과거의 빛무리를 본다. 여러 갈래의 시간이 교차하는 하늘 속에서 나는 잠깐이나마 현재의 고통을 잊을 수 있다. 힘든 순간으로부터 관심을 서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마치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별과 별 사이가 으레 그렇듯이. 별이 나보다 더 외로워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까. 그들의 외로움에 비하면 나는...


관심의 총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쪽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 만으로 지구 반대편에 숨을 수 있는 것 역시도. 그렇게 가까스로 현재의 시름을 딛고 또 다른 내일을, 이미 살아갔을 오늘을, 압축된 과거를 살아간다. 고작 100년도 살 수 없는 인간이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감각을 이어 붙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옆에 없는 시간을 정리하고 나면 남은 것은 오롯이 현재뿐. 서로의 시간에 오차가 없을 만큼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이들. 같은 시간 속에서 같은 빛을 보며 보통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럭저럭 소통할 수 있는 이들. 그들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고독할까. 현재를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감사할만한 일이다. 각자의 마음이 우주처럼 해석 불가능의 거리감을 때때로 제공하더라도 적어도 나와 너는 지금 '우리'의 시간 안에 머물고 있음을 늘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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