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이가 '공황'으로 힘들어한다면

공연히 옆에서 들쑤시지 않는 것만으로도

by 작가 전우형

공황 상태에서 호흡이 어렵다는 느낌은 예컨대 이런 것이다. 숨 참기 대결 중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버틴 다음 마지막으로 수 초의 시간을 벌기 위해 입속에 머금고 있던 약간의 공기와 침을 함께 삼키고 흉부의 압박감을 감소시키기 위해 콧구멍으로 숨을 조금씩 미세하게 불어내던 중 이제 정말 죽겠다 싶을 정도로 숨이 차올라서 '흐윽' 하고 숨을 들이켜려 할 때 누군가가 코와 입을 틀어막아버리고 놓아주지 않을 때의 느낌. 그러니까 호흡이 되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단순히 숨을 오래 참기 위해 버틸 때와 하나도 같지 않다. 진지한 죽음의 공포는 의지로 만들어낸 상황을 통해 느껴지는 것과는 완전히 달라서, 철저한 타의와 통제 불가능한,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제멋대로 돌아가는 극한의 상황에서만 느껴지는 것이며, 너무나 괴롭고 공포스러운 탓에 기억에도 남지 않지만 몸과 마음에는 분명한 자국을 남겨 이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공황 상태에 도달하기 전 만약 스스로 가능하다면 가급적 공황을 유발하는 어떤 신체증상이나 감각으로부터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방안을 찾는 것이 좋다. 호흡곤란이나 과호흡 등이 찾아왔을 때 호흡 그 자체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면 답답함이나 흉통, 압박감 등이 과도하게 해석되어 재앙처럼 여겨진다. 극심한 불안과 공포가 긴장을 가중시킨 탓에 오히려 호흡에 불편함을 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옆 사람이 호흡곤란이나 현기증, 답답함 등을 호소할 경우 함께 당황하거나 그 사람에게 왜 그런지를 묻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물론 그가 호흡이 아예 멈추거나 의식을 잃어버리는 등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119를 요청하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야겠지만 그것이 아니고서는 공연한 호기심의 발로나 스스로의 상황 파악을 위한 행위는 상대방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황과 같은 심리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이를 돕고 싶다면 일단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긴급할 경우 즉각적인 원조를 할 수 있는 거리에서 사태의 추이를 차분하게 지켜보는 것이 현명하다. 스스로도 자신에게 벌어진 사태로 극도로 놀라 있는 상태고, 이유를 차분히 생각할만한 심적 재원도 부족한 사람에게 이유를 묻는다 한들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긴장과 공포를 자극하는 꼴이 되고 만다. 누군가가 공황에 다다르는 데는 직접적인 원인이 있을 때도 있지만 없는 경우도 많다. 원인이 없다는 것의 의미는 실제로 아무런 원인이 없다기보다는 당장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즉각적으로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과 추후에도 당시의 기억에 접근하는데 어떠한 장벽이 발생함으로 인해 원인 파악이 제한될 수 있음을 말한다.


가능하다면, 상대를 차분하게 이끌고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것이 좋다. 가까운 사이라면 천천히 등을 쓸어내리거나 어깨를 가볍게 잡아주며 신체적 안정감을 지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황은 예전의 어떤 극심한 공포가 상황적 요인과 결합되어 부지불식간에 재현되거나, 특정 감각이 예민한 사람의 경우 그 감각에 어떠한 해석이 더해지면 자동적 사고를 통해 심리적 마비 상태 등이 유발되는 것이다. 당장의 어떤 상황적 요인이 공황의 트리거로 작용했는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무엇이건 현재의 공황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해당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도움이 되며, 무엇보다도 공간적 시각적 변화는 심리적 환기를 유도하는 부가적 효과도 있다. 개인적 성향이나 특성에 따라 개방감을 줄 수 있는 탁 트인 공간이나 한적하고 조용한 장소 중 보다 편안한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좋지만 일단 단기적으로는 당시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좋다.


일시적으로 안정을 되찾았다면 스스로 상황을 정리하고 심리적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조용한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황은 '죽을 것 같은 공포'처럼 극심한 심리적 공포나 불안과 긴장 등의 신체화 증상이 동반된 일시적 마비상태다. 모든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듯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람은 '당사자'다. 누구보다도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싶은 사람 역시 옆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다. 이미 본인 스스로 치열을 넘어 강박적인 수준으로 '내가 왜 그랬을까?'를 되풀이하는 사람에게 호기심 반 걱정 반은 물론이거니와 상대방에 대한 진지한 걱정의 발로라고 하더라도 이유를 묻는 주변인의 행위는 오히려 2차 문제만 발생시킬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원인을 찾아보려고 해도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공포는 너무나 괴로운 것이어서 무의식이 우선 차단하기 때문에 당장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원인을 찾는 것은 충분한 시간이 흐른 후 사후 검토나 자기 분석, 상담 등을 통해 가능하다. 그를 돕고 싶다면 그가 당시의 상황에 과몰입하지 않도록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려주는 것이 좋다. 인간의 관심은 방향과 용량이 제한되어 있어서 수도꼭지를 다른 쪽으로 틀면 관심의 대상을 바꿀 수 있다. 불필요한 과거의 자극보다는 그저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돕고, 그가 현실적 어려움에 대한 원조를 요청할 때 성심성의껏 도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약 대화를 필요로 한다면 차분히 경청하고, 이후에는 걱정의 눈초리보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대하는 것도 그의 자책과 불안을 경감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의 시간이 소중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