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지는 건 거지 같은 일이다
아침에는 동쪽을 바라보고, 해 질 녘이면 서쪽을 본다. 언제나 내가 가는 곳에는 해가 있다. 기다림의 끝을 스치는 재회의 순간은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짧다. 맛보는 순간 이미 녹아 없어지고 새로운 조각은 처음의 맛을 잃어버렸다. 하루는 마음을 흔든다. 감았다 뜰 때마다 하나의 아름다움이 사그라들고 익숙한 목소리는 환청이 되어 메아리친다. 한 살짜리의 그리움이란 동정과도 같다. 그 속에 묻은 건 길고도 짧은 속삭임. 하나의 응시. 귀밑머리를 넘기는 부드러움.
나의 기다림은 낮도 밤도 아닌 하나의 짧은 호흡일 뿐이다. 손 끝을 공전하는 등속의 온기. 찾아올 듯 사라지는 오후의 눈부심. 가만히 본다. 바깥도 안도 아닌 곳을. 스치는 길모퉁이가 하루의 끝을 돌려줄 것 같아서. 가리어진 그 지점에 다다르면 기다림의 끝이 보일까. 하지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펼쳐보지 못한 편지. 남은 희망마저 꺾어질까 하는 두려움과 묘한 흥분이 뒤섞인 기대감. 서랍 속에 넣어둔 미지의 언어.
나는 무언가를 예상하고 그 예상이 틀리기를 바란다. 이중성이 연주하는 불안의 멜로디가 마음의 열기를 자극하고 그것이 차가워질 때 즈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정지된 마음속의 움직일 수 없는 사진. 오래된 박제처럼 푸르고 메마른 하늘. 떠오르는 얼굴. 흩어지지 않는 구름. 호수의 고요를 질투하는 잔잔한 바람. 갸우뚱하는 나룻배. 노 젓는 사공. 그 땀방울과 건장한 팔 근육. 무던하면서도 끊임없는 노질. 흘러가는 시간. 결국 기댈 것은 시간뿐.
순간을 영원처럼 기다리는 무한한 정지 속에서 나는, 나는, 나는. 그리고 너는, 너는, 너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다른 꿈속에, 내가 있을 때 너는 없고, 또 네가 있을 때 나는 꿈에서 깬다. 이별이 시간을 되감고 사건의 시작은 다시 눈앞에. 그 기묘한 시간의 왜곡 속에 소리 내어 불러보지만 흐릿하게 번진 기억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나는 결국 없을 너를 기다린다. 초침의 속삭임이 화살처럼 날아와 귀에 박힌다. 째깍, 째깍, 째깍. 한 번에 1초. 명확할수록 무겁다. 길어지는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늘어지는 마음.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이 사랑을. 역시 길들여지는 건 거지 같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