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
강박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무언가가 그 사람 안에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누구에게나 불편하거나 두렵고 가급적 피하고 싶은 상황이나 사람, 혹은 사물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강박은 그 불편함이나 두려움, 공포, 혐오 등의 수준이 도가 지나쳐서 생명을 위협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태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은 변수로 가득한 세상이 허용하지 않은 것이어서 '절대 만지면 안 돼, 절대 만나면 안 돼, 절대 헤어지면 안 돼, 절대 버려지면 안 돼'와 같이 '절대'로 시작하는 바람과 소망은 그 조건의 비현실성으로 말미암아 실현되기 어렵다. 이 같은 주문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키지만 강박을 가진 사람이 이 같은 주문을 되풀이하는 것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생명을 잃을 것 같거나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깊은 공포와 불안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불편함을 버티는 과정의 부산물이고 그러한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여러 행동들을 한다. 예컨대 일반적인, 그러나 약간은 서툰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볼 수 있는 행동은 수업시간에 다리를 달달 떠는 학생처럼 의미 없는 동작을 반복하거나, 기다리는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을 때 혹은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때와 같이 사소한 불안이 자극되는 경우 손톱이나 입술을 물어뜯는 정도다. 이처럼 일반적인 스트레스 반응 중 사소한 행위들은 대부분 자신 또는 타인에게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들이고, 문제시되지 않기에 특별히 부각되지도 않는다. 개인차가 존재하지만 어지간한 경우 이러한 행동은 성숙한 어른의 경우 의지로 조절 가능한 수준이며, 당시의 상황이나 조건, 관계 등을 고려해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행동을 중지하거나 적절한 다른 행동으로 대체도 가능하다. 때때로 그러한 스트레스 반응이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이 반응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지 모를 경우지만, 그 또한 타인의 환기나 주의를 통해 큰 스트레스나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고 멈출 수 있는 수준이다.
강박은 이러한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사소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자신 또는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도저히 그만둘 수 없으면 강박이 된다. 예컨대 손을 씻는 행위가 적절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무언가를 만졌을 때마다 손을 씻지 않고는 버틸 수 없다던가 공기 중의 오염물질 때문에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씩 손을 손세정제나 비누 등으로 박박 닦게 되는 것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또한 약속 장소에 늦거나 혹은 아직 약속한 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계속해서 상대방의 위치를 확인하는 전화나 문자를 참지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그런 행동을 상대가 불편하게 느낀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은 상대가 직접적으로 불편함을 호소해도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도 강박이 된다.
강박의 근저에는 극심한 불안이 있다. 오염에 대한 불안, 버림받는 것에 대한 불안, 원하는 상태에 도달하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 등이다. 이 같은 불안 역시 모두가 갖고 있지만 불안의 현실성이나 강도 측면에서 강박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손에 정말 지저분하고 위험한 것이 묻었을 때 빠르게 손을 씻어내는 것과 그저 손잡이를 한 번 잡은 것만으로도 손을 씻지 않고는 절대 버틸 수 없는 것의 차이다. 물론 강박을 가진 사람에게는 손잡이를 한 번 잡는 행위로 인해 지극히 지저분하고 위험한 물질에 오염된 것으로 느껴질 테지만 현실성이나 혹은 객관적인 위험도의 측면에서 강박을 가진 사람의 주관적 감각과 일반인이 느끼는 감각 사이에는 큰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 문제다.
유기 불안은 누구나 조금씩은 갖고 있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혹은 그것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안 되는 필수 정서에 해당하지만, 불안의 현실성 측면에서 일반적인 경우와 강박의 경우는 확연히 다르다. 연인이 약속시간에 다소 늦게 나타나거나 문자 확인이 늦는 것 정도로 유기 불안은 자극되지 않는다. 같은 상황이 단발성 사건 수준을 넘어 어떤 경향으로 이어진다면 불안이나 의구심이 자극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면 상대방에게 진지한 대화를 요청하고 자신이 느낀 바를 전달하는 등 적절하고 유연한 방법을 통해 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쳤음에도 접점이 찾아지지 않거나 평행선을 그린다면 사람과 사람이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헤어지면 그만이다. 그로 인해 가슴이 쿡쿡 쑤시거나 일시적인 식욕저하, 강제 다이어트 등이 나타나더라도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어하며 스스로 위안하거나 가까운 친구를 만나 억눌렀던 울음을 터트리는 등 그럭저럭 문제를 해결해나가면 그뿐이다. 이처럼 문제를 합리적인 사고로 분석하거나 불안을 객관화하고 현실성을 판단하는 과정을 통해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다면 감당할 수 없거나 극단적인 문제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과정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 그저 실수나 부주의로 넘길 수 있는 일도 굉장한 사건으로 여겨지고, 필요 이상으로 사소한 사건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지나친 의미부여는 상황을 차분하게 분석하거나 객관화할 수 없게 하고, 불안의 현실성을 오판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현실성이 결여된 불안임에도 마치 반드시 일어날 재앙처럼 크게 느껴지고, 이 같은 불안이 오히려 관계의 파탄을 가속화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누구나 실수는 저지르기 마련이고 사람에 따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관계의 삐그덕 소리가 반드시 다리가 절단날 징조는 아니며, 그의 삶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비중을 성급히 축소 재단할 만큼 이별의 시그널로서의 충분조건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이 클 경우 자신이 버림받는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사건이 되고 그 '절대'를 지켜내기 위해 내가 먼저 상대방을 밀어내기 위한 절차에 돌입한다. 예컨대 집요하리만치 그의 실수를 꼬투리 잡으며 불성실하고 나쁜, 관계 파탄의 빌미를 제공하기에 충분한 일로 해석하는 것이나, 필요 이상으로 어떤 면에 대하여 날 선 지적을 일삼는 언행, 상대방의 진심과 의도를 확인하는 절차를 건너뛰거나 혹은 상대방 입장에서 충분하다고 느낄만한 소명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것 등이다.
이들에게는 어떤 스위치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이 한 번 눌러지고 나면 붕괴의 진행을 되돌릴 수 없는데 이처럼 극심한 유기 불안으로 야기되는 강박의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도 그런 진행을 막을 수 없고 상대방에게 진지한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그 행동을 저지할 수 없는 것은 강박의 가장 큰 특징이고, 상대방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것은 유기 불안에서 기인한다. 유기 불안의 정점에는 나와 상대방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잠재되어 있다.
유기 불안을 자극하는 첫 번째 요소는 자신에 대한 깊은 불안과 불신이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의 사랑도 믿지 못한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는 아이디어를 수용하려면 내가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존재라는 확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확신이 부족하면 상대방의 사랑이 진심이라는 확신을 갖기 어렵다. 부족한 자기 확신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상대방이 거리감을 느끼는 원인이 된다. 거리감의 지속은 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상대방은 거리감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초기 판단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만 이상하게도 거리감이 줄어들지 않음을 느낀다. 결국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에 관계는 소원해지고 갈등이 불거진다.
유기 불안을 자극하는 두 번째 요소는 상대방에 대한, 즉 세상에 대한 깊은 불신이다. 이 같은 불신은 세상은 매우 위험한 곳이라는 아이디어에 불을 지핀다. '일반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을 만큼 악의적이거나 나쁜 경험이 이러한 불신의 주된 원인일 테지만 그러한 경험을 보상해줄 만한 긍정적인 경험을 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다. 예컨대 정말 믿고 따르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쉽게 믿지 못한다. 호의에는 마땅히 어떤 불순한 의도가 뒤따른다고 믿기 때문에 상대방을 의심하고 분석하고 확인하려 든다. 당연하게도 감시당하는 상황이 기꺼울 사람은 없다. 가까워질수록 의심의 눈초리 또한 커져서 깊은 불신으로 둘러싸인 이에게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결국 그러한 상황이 세상은 믿을만한 곳이 못 된다는 불신을 더욱 강화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유기 불안을 자극하는 세 번째 요소는 사랑받을 '자격'에 대한 아이디어다. 다분히 능력주의 사회와도 결부된 이러한 생각은 성장기 아동에 대한 부모의 일반적인 태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무언가를 해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느낌이 성장기 아이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이것이 성인이 되고 나서는 사랑받을 자격으로 이어진다. 즉 상대방에게 사랑받으려면, 혹은 버림받지 않으려면 상대방이 사랑할만한 자격을 스스로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며, 마찬가지로 상대방에게도 내가 사랑할만한 그 무엇을 갖추기를 원한다. 재력, 능력, 성격, 인성, 예의, 맵시 등 사람에 따라 자격요건은 다양해지겠지만 결국 '사랑받으려면 어떠한 자격에 도달해야 한다'는 기본 틀은 같다. 뒤집어 말하면 자격에 못 미치면 버림받아 마땅하다는 기준과 판단의 근거가 되며, 완벽주의나 경쟁심리를 자극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