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계절의 숨소리가 희미해지고 달을 가리키던 숫자가 찰칵하고 넘어가려 할 때면 '세월이 참 빠르다'는 흔한 말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공백이 유난히 시렸던 오늘처럼, 틈새를 비집고 바람 같은 세월이 불어오면, '어느새'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정서가 가슴을 두드린다. 오늘은 어느새 어제를 앞두고, 이번 달은 어느새 지난달이 되려 하고 있으며, 올해 또한 어느새 작년의 문턱을 넘어갈 기세다. '어느새'라는 말 앞에 서면 문득 시간은 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나를 앞서가는 것만 같고 '난 그동안 뭘 했나?'라는 질문과 함께 미뤄두었던 허무와 후회가 고개를 든다.
철 지난 수첩을 한 장씩 넘겨본다. 하루 또 하루, 길고 짧은 이야기들이 나를 반긴다. 어떤 이야기는 다듬어져 브런치 원고가 되었고, 그중 일부만이 '발행'의 절차를 거쳤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은 여전히 수첩 안에 고이 잠들어 있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그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지난날의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는지가 고스란히 떠오르고, 나름의 충실을 담았을 그 순간의 기록들이 현재의 내게 위로를 건넨다.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과'인 줄 알던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라며 과정을 부인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내게 가장 큰 의미로 되어준 것은 순간의 치열한 '기록'들이었다. 그 순간들 없이 생생하게 숨 쉬는 '지금'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기록을 남기는 것은 순간을 보전하기 위함이다. 삶의 디테일은 '지나고 보면'이라는 말로 헐값에 후려치기 쉬워서, 기록하지 않은 수십 년의 시간은 몇 개의 커다란 사건이 전부인 것처럼 재구성되기도 한다. 순간은 단조롭거나 간단하지 않아서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지만 그중 대부분은 원래부터 없었던 일처럼 사라지고 만다. 삶의 기록은 지나온 시간의 질량을 보존하고, 현재의 고통으로 인한 '기억'의 왜곡을 막으며, 행복했던 순간과 삶의 의미들을 '과거'의 카테고리로부터 밀어내지 않도록 돕는다.
삶이 부질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지나온 삶의 기록이 낱장 하나만큼도 남아있지 않다면 그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기록되지 못한 순간은 그 지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희미해지기 마련이며 결국 보이지 않는 점이 되어 소실의 절차를 거친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은 순간은 시간이 흘러도 영원히 곁에 머문다. 기록은 삶의 질량을 채우는 일이다. 바늘과 실로 순간을 엮어 삶의 장면 하나를 한 장의 튼튼한 가죽으로 가공하고, 켜켜이 쌓인 삶의 무게가 때로 호흡을 짓누를 때 질긴 신발과 따뜻한 겉옷이 되어 거친 세월을 내딛을 용기를 준다.
하루를 살아갈 견고한 신념은 기록으로부터 나온다. 삶의 온기가 글씨에 묻어 구멍 난 자아를 보상하고 도드라진 햇빛의 문양을 선으로 만들어 나를 감싼다. 펜 촉에서 이어진 기다란 그림자가 하루의 마감을 알리더라도 손끝의 움직임은 멈춤이 없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손으로, 무한하고도 광활한 세상으로 연결되는 느낌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 짧은 순간의 영광이 밤길을 밝혀줄 등불이 되고 소중한 사람의 품으로 나를 안내한다. 감격이 손 끝을 맴돌고 고독에 손을 뻗어 공백을 따뜻한 기운으로 매운다. 그런 하루의 마무리가 어찌 볼품없을 수 있을까. 가치 없는 순간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안온의 그늘에서 나는 숨죽이지만 그럼에도 삶은 늘 뜨겁다. 오늘의 삶이 그윽한 향기로 남고 지나간 상처는 오늘의 기록으로 위로받는다. 좋은 사람의 인사처럼 스스로에게 안부를 묻고, 세상에 대한 관심과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공유하며, 하루의 욕심과 오만을 반성한다. 긴장 속에서 얼어있었을 어깨를 부드럽게 녹이며 내게 속삭인다. 생생한 현재에서 나의 숨소리를 확인한다.
그래. 오늘도. 어쩌면. 그래도. 잘했어. 이제 조금 쉬어도 돼. 삶을 사랑하는 나이길. 순간을 기록하는 나이길. 고맙다. 살아있어서. 이 순간을 기록할 수 있어서.